
우리나라보다 앞서 인구감소의 영향을 경험한 곳이 이웃 나라 일본이다. 그 가운데 도쿄의 도시마구(豊島区)는 지난 2014년 ‘소멸가능성 있는 도시’로 지정돼 2030여성 감소 규모가 50.8%로 추산됐지만, 10년 뒤인 2024년 분석에서는 2.8%로 대폭 축소됐다.
현재 도시마구 인구는 29만 1600여 명으로 젊은 여성은 2600명 증가했다. 소멸 위기를 기회로 만든 도시마구의 비결은 ‘여성 친화’에 있다. 여성들이 살기 편한 도시를 만들어야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래서 20~39세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청취할 수 있는 회의와 이들로 구성된 긴급대책본부 ‘F1(Female One)을 만들어 해법을 찾았다.
■ 젊은 여성 목소리 정책에 직접 반영
2014년 일본창성회의가 발표한 ‘마스다 보고서’는 출생률이 최소 유지 수준인 2.07%로 회복되지 않으면 일본의 인구는 감소하고 지방은 소멸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을 보여줬다.
당시 일본의 인구감소 추세대로라면 2040년까지 일본의 절반인 896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사라진다는 암울한 경고를 담고 있어 지방소멸 위험성을 보여줬고 보고서의 기법을 차용해 소위 지방소멸 위험지수가 개발됐다.
여기에 따르면 한 지역의 가임여성(20~39세)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으로 0.5 미만이면 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인구의 유입·유출 등 다른 변수가 작용하지 않는 한, 이 수치에 미달한 곳은 30년 뒤에는 마을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전국에서 ‘소멸가능성 있는 도시’ 896곳을 지정했다.
도시마구의 중심지 이케부쿠로역은 5개의 지하철 노선이 지나고 연간 이용객이 270만 명에 이르는 신주쿠역과 시부야역 다음으로 이용객이 많은 곳이지만 도쿄의 23개 특별구 가운데 유일하게 소멸가능성 있는 도시에 포함됐다.
이런 불명예를 안게 된 이유는 20~39세 여성 인구의 급감 가능성으로 2010년 5만 136명인 도시마구의 20~39세 여성인구가 2040년 2만 4666명으로 50.8% 급감할 것으로 내다본 것.
도시마구는 이를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고 곧장 20~30대 여성 중심의 회의를 개최해 이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한 ‘여성친화적 마을 만들기’, ‘지방과의 공생’, ‘국제예술·문화도시 구축’, ‘고령화대응’이라는 4가지 방침을 중심으로 인구소멸대응과 지역활성화를 추진했다.
이를 견인할 수 있는 핵심 정책으로 여성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도시공간 정비를 추진했다.

■ 미나미이케부쿠로공원의 리모델링
이케부쿠로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미나미이케부쿠로공원’은 녹음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음습한 지역으로 텐트를 치고 사는 노숙자가 많고, 주말이면 무료급식소가 세워지던 곳으로 강력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해 ‘낮에도 여기에 오면 정말 위험하다’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장소로 유명했다.
깨끗한 분위기를 조성해 노숙자가 찾지 않는 지역이 될 수 있도록 지역주민들과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미나미이케부쿠로공원의 한쪽은 신사, 한쪽은 유흥가 등 각 방향마다 다른 특색을 지닌 지역으로 이어져 주민들의 의견 수렴이 어려웠지만 수십, 수차례의 설명회를 거치며 의견 조율을 했다.
노숙자들과 지원단체에서도 반발이 많아 비판적인 방송과 기사도 많았지만 다른 작은 공원과 복지시설로의 입소 권유를 통해 마찰을 줄여갔다.
이는 도보권 내에 안심할 수 있는 생활환경이 갖춰져 있어야 젊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다는 판단과 사람들이 모여 일, 주거, 돌봄, 배움, 문화활동, 교류 등 다양한 기능을 생활권 안에 둘 수 있는 장치로 만들기 위해 공원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마침내 공원의 리모델링을 위해 폐쇄를 하고 잔디공원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충당을 위해 잔디공원 아래 변전소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잔디공원 개방까지 6년이 걸렸지만 변전소를 이용하는 전력회사와 지하철 회사에서 내는 사용료가 도시마구청의 곳간을 불려줘 시민들은 부담 없이 천연잔디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공원에 카페와 레스토랑 등을 활용한 다양한 수익시설을 유치해 공원시설을 통한 수익금을 창출하고 수익금을 공원 유지관리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슬럼가와 노숙자로 골머리를 앓다 현재는 뉴요커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브라이언파크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브라이언파크의 상징인 검정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이전까지 일본에서 금지됐던 공원 내 카페와 레스토랑의 오픈은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2016년 4월 개방한 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출입이 허용되는 미나미이케부쿠로공원은 평균적으로 평일에는 4100여 명, 휴일에는 9100여 명의 시민이 찾아오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미나미이케부쿠로 공원이 만들어지고 난 후 주변 상권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이케부쿠로역 주변으로 고층건물이 들어섰고 세계에서 가장 큰 애니메이트가 들어서며 이케부쿠로역 인근의 상권은 더욱 성장하게 됐다.
도쿄신문은 “‘소멸 위기에서 문화·예술을 말할 때냐’란 비판도 있었지만 도시마구는 방문하고 싶고 살고 싶은 도시가 되면 전입자가 증가하고 그 세수를 복지나 교육에 충당해 한층 더 사람이 모이는 선순환을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4년 도시마구의 20~39세 여성인구는 4만 5000명이었으나 4년 후 4만 8000명으로 늘었다. 2022년 ‘닛케이 크로스우먼’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발표한 ‘일하면서 육아하기 좋은 도시’에서는 1위로 선정됐다.

■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에게 집중
공원 리모델링으로 인구의 흐름을 바꾼 도시마구청은 지역의 4개 공원을 특성화해 연계해 즐길 수 있도록 폭을 넓혔다. 빨간색 전기버스 IKEBUS가 미나미이케부쿠로공원, 나카이케부쿠로공원, 이케부쿠로니시구치공원, 이케 선파크를 순환하며 시민과 관광객들을 실어나른다.
미나미이케부쿠로 공원은 잔디공원으로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와 대학생 등 젊은 층이 돗자리를 깔고 일광욕을 즐기는 오아시스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2019년 9월에 오픈한 나카이케부쿠로공원은 만화·애니메이션 성지로 ‘애니메이트’ 등의 주변 기업과 연계해 애니메이션, 코스프레 이벤트 등을 전개한다. 이 공원은 이곳에 입주한 개발자들이 엘리마네 단체를 구성해 시설 사용료 등을 운영비로 이용한다.
2019년 11월에 오픈한 이케부쿠로니시구치공원은 클래식 연주 등이 가능한 야외극장으로 도쿄예술극장 등과 연계해 이벤트를 전개한다. 여기도 민간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 수익의 일부 등을 공원 운영비로 사용한다
2020년 7월에 오픈한 이케 선파크는 온갖 방재 기능을 가진 도시마구의 최대 면적의 공원으로 선샤인 시티와 연계한 이벤트, 민간 카페 운영, 마르쉐 운영을 통해 수익 창출과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어린이 전용 공원인 토시마키즈파크도 오픈해 누구나 함께 놀 수 있는 공원으로 이용한다.
이 공원들을 연계하는 이케버스(IKEBUS) 역시 민간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공원을 주민과 기업이 함께 키우고 가꾼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다.
도시마구에는 4개의 메인 공원 외에도 수많은 공원이 곳곳에 있고 20~30대 여성과 어머니들이 목소리를 낸 공공화장실 프로젝트를 통해 누구나 안심하고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로 개선시켰다.
도쿄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도시마구는 2014년 민간 연구단체가 발표한 소멸 가능성이 있는 도시로 도쿄도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것을 계기로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 만들기를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올해는 세계유엔회원국들이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합의한 17가지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는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의미하는데 도시마구청은 공원을 구심점으로 지속가능한 도시와 지역사회를 만들면 환경과 경제가 따라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일본 최초로 미래도시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도시마구청 공원녹지과 카타야마 유타카(片山 裕貴) 과장은 “그 핵심은 공원이라고 말한다. 공원을 연결시키자 환경,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가 연결이 됐다”며 “또 미나미이케부쿠로공원이 생기고 젊은 층이 도시마구로 전입을 해오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자 다른 도시에서도 잔디광장과 레스토랑, 카페가 있는 공원이 곳곳에 생겼다”고 말했다.
도시마구는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에게 집중했다. 인구유출 문제를 직면하자 빠르게 젊은 층의 목소리를 듣고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더 좋은 곳을 찾아 가는 것임을 파악했다.
떠나는 젊은이들을 붙잡기 위한 물질적인 유혹이나 정책을 남발하지 않고 남은 이들이 만족하고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고 이를 보완해 가다 보니 많은 사람이 돌아왔고 도시는 더욱 발전하게 된 것이다.
10년이 지난 현재 도시마구는 소멸 가능 지역이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었다. 일본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구전략회의’가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인구 추계를 분석해 일본 기초자치단체 1729개 중 744개가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는데 도시마구는 빠졌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