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곡면 광성3리 돌담마을

옛 돌담·돌담길, 살아있는 문화관광 자원으로 손색이 없다
국가유산청, 돌담길 2006년부터 문화재로 등록 관심 쏠려
홍성 장곡 광성3리돌담마을, 자연석 돌담 가치 인정받아야
지역의 자원과 생활 방식 자연스럽게 마을의 경관 만들어
우리의 일반적인 전통 가옥 구조는 대문은 없어도 담은 있어야 했다. 야트막한 돌담,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울타리가 있었다. 굳이 있어야 할 필요도 없으면서 있어야 했던 담은 도둑이나 짐승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너무 허전하기 때문에 금을 그어 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타고르가 말한 서구 문명은 ‘성벽(城壁)의 문명’이란 말에 비긴다면 우리의 문명은 ‘담의 문명’쯤 된다고나 할까.
도시인들에게 시골 돌담길은 고향의 정취와 추억을 되살려준다. 살아있는 문화관광 자원으로서 손색이 없다. 돌담길의 관광자원화는 전통문화를 보존하면서 농촌을 돕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돌담길은 오롯이 우리들의 옛 추억이다. 한적한 농촌이나 산골의 풍치와 어우러진 돌담길 한편으로 물동이를 이고 나르는 아낙네, 마실가는 촌로, 자치기를 하는 아이들의 정감 어린 모습이 아련하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시멘트와 벽돌에 밀려 이제는 그 흔적만이 옛 자취를 증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의 흔적을 송두리째 지울 수는 없는 법이다. 고택과 감나무, 담쟁이 넝쿨이 어우러져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해 주는 돌담길이 ‘추억의 명소’로 되살아나고 있다. 국가유산청이 돌담길을 지난 2006년부터 문화재로 등록하면서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옛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돌담이 이제야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돌담길, 오랜 세월 풍화로 깎이고 패였건만 보는 것만으로도 잊혀진 고향을 떠올리게 만든다. 문화재로 등록된 마을의 담장들은 대부분 자연석을 이용한 돌담이나 토석담 등이다.

■ 돌담마을, 장곡면 광성리와 오성리 일원
마을의 주택은 대부분 전통 한옥구조로, 초가지붕으로 돼 있던 것을 1970년대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후 점차 함석 등의 지붕으로 개량했다. 하지만 집을 감싼 돌담은 대부분 밭을 일구며 나온 자연석 돌이나 냇돌 등을 사용했고, 비교적 원형을 잘 지니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도 옛 돌담의 원형이 남아있는 돌담마을은 장곡면 광성리와 오성리 일원이 그곳이다. 오서산(烏棲山, 791m)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들이다. 오서산은 충남 서해안에 인접한 산 중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백두대간 차령산맥 끝자락인 금북정맥의 최고봉으로 홍성군(洪城郡)과 보령시(保寧市), 청양군(靑陽郡)에 걸쳐 3개 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울창한 숲과 깊고 맑은 물, 바위 등이 어우러져 천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정상에서 보면, 수채화처럼 펼쳐진 억새 물결과 운무(雲霧), 서해의 수평선과 낙조를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으로 성주산, 북으로는 가야산, 동으로는 칠갑산, 계룡산까지 관망할 수 있다. 특히 육·해·공의 풍광을 즐길 수 있고, 운무(雲霧)가 신비로운 조화를 보이는 소중하고 진귀한 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서산은 이름 그대로 까마귀와 까치가 많이 깃들어 사는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오(烏)는 ‘까마귀’, 서(棲)는 ‘거처해 살고 있다’의 뜻이다.
오서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廣城里)는 백제 때는 사시현(沙尸縣)에 속한 산골이었다. 신라 때는 결성군(潔城郡)의 영현(領縣)에 속했으며, 고려 초엽엔 여양현(驪陽縣)에 속했다가 뒤에 홍주에 속했다. 조선 초엽엔 홍주군(洪州郡)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홍주군(洪州郡) 오사면(烏史面)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성상리(城上里), 중촌(中村), 진방리(眞方里), 성중리(城中里), 성하리(城下里), 광제리(廣濟里), 죽하리(竹下里) 각 일부를 병합해 ‘광제(廣濟)’와 ‘성중리(城中里)’의 이름을 따서 ‘광성리(廣城里)’라 하고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에 편입됐다. 현재 광성리는 광성 1리, 광성 2리, 광성 3리의 행정리로 구성돼 있다. 광성리는 장곡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상을 간직한 곳이다.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여양 고을’이 자리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을 구석구석에는 천여 년 전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이 마을은 오서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 사이의 넓은 들 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며, 광천천의 상류 지역으로, 오서산 신풍리의 북·동쪽 금북정맥 마루금 바로 옆 계곡 바위틈은 삽교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이 물이 흘러 흘러 서해로 가는 최장의 물줄기가 된다. 따라서 광성리 지역은 물이 좋고 들이 넓어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에 좋은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 광성3리 돌담마을, 100여 년 돌담을 쌓다
홍성군 장곡면의 돌담마을인 광성3리는 면의 중심마을이었던 오사면이 있던 곳이다. 광성3리 자연마을 이름은 ‘광제(廣濟)’다. 광제는 사람들이 오서산을 가기 위해 넓은 냇가를 건넌다고 해서 부르게 됐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광제마을에 시유나무(쉬나무)가 많았는데, 주민들 입말에 의해 ‘시우나무골’ 혹은 ‘시나무골’로 부르게 됐다. 이렇듯 광성3리는 오서산이 끼치는 환경적 요인이 큰 곳이다. 오서산이 마을을 휘감고 있어 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로 농사짓기가 수월한 곳이다. 또한 땔감으로 사용할 목재도 많았으며, 마을 곳곳에 돌이 많아 자연스레 돌담을 쌓았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1990년대 초중반 무렵, 홍성군에서 ‘밭 기반정리 사업’을 실시했는데, 농지에 돌이 많아 경작에 어려움이 많아서였다. 이 사업으로 1만여 평의 밭에 흙이 공급됐으며, 광성3리를 비롯해 광성 1리, 오성리 등에 공급됐다.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파면 쟁기에 돌이 걸려 땅을 쉽게 갈 수가 없었다. 이 사업으로 옛날부터 돌이 많았던 광성3리는 돌을 모아 담을 쌓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밭을 일구는 과정에서 주변에 널린 돌을 사용해 집주변에 돌담을 만들었다. 이러한 연유로 광성3리 마을에는 1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집 담장인 돌담을 쌓았고 돌담길이 생겨났다.
광성리와 인근 지역은 비교적 돌이 많은 지형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일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돌이 나왔고, 이 돌들을 버리지 않고 유용하게 활용한 것이 바로 광성리 돌담이다. 광성리 돌담은 전통적인 자연석 쌓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지역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한 토착적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광성3리의 돌담은 돌로만 쌓은 강담으로 돌과 돌 사이에 흙을 채워 넣지 않고 돌의 모양에 맞춰 차곡차곡 겹담으로 쌓아 올린 돌담이다. 당연히 돌의 생김새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편편하고 넓적한 돌을 잘 골라 가장 하단에 자리를 잡아야 담이 무너지지 않고 튼튼하기 때문이다. 자연석(野石)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자르거나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돌을 사용했다. 논밭을 개간하면서 나온 돌들을 모아 쌓았기 때문에 돌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다. 쌓기방식도 돌을 끼워 맞추듯이 안정적으로 배치했다. 큰 돌을 아래쪽에, 작은 돌은 위쪽이나 빈틈을 채우는 데 사용했다. 흙을 사용하지 않고, 돌의 무게와 균형으로만 구조를 유지했다. 돌담의 형태는 완전히 수직이 아니라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쌓아 무너짐을 방지했다. 이는 오래된 민간 건축 지혜로, 구조적 안정감을 준다. 장마철에 무너지지 않도록 돌 사이 빈틈을 일부러 남겨 배수 기능도 갖췄다. 그래서 광성리의 돌담은 자연스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담길을 걷다 보면 담장의 기초나 사이로 꽃이나 풀도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마을의 정겨운 미학이자 전통 경관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광성3리에는 아직도 돌담이 남아있는 집들이 20여 곳에 이르며, 돌담을 복원하는 집들도 늘어나고 있다. 광성리 주민들은 이 돌담을 단순한 경계물이 아니라 조상들의 지혜와 손길이 담긴 문화유산으로 여기고, 유지·보수하며 그 가치를 이어오고 있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과 최근에는 주택 신축 등으로 인해 하나 둘 돌담과 돌담길이 사라져가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돌담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하면서 오히려 돌담과 돌담길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등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사라져가는 마을의 좁은 고샅길과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구불구불한 돌담과 돌담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관광지로 뜨거나 관광상품 등으로 개발하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광성리 돌담은 지역의 자원과 생활 방식이 자연스럽게 마을의 경관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제 돌담과 돌담길은 마을주민들이 스스로 세대를 이어가며 만들고 덧붙여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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