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만든 관광명소… 프랑스 예술마을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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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만든 관광명소… 프랑스 예술마을을 가다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4.07.1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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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7>

주민 참여·이해 바탕으로 관광명소 각광

 


◇지베르니
지베르니(Giverny)는 파리 서쪽으로 75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우리에게는 모네의 정원(Monet's Garden)이 그곳에 있어 잘 알려져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인상파의 거장 모네는 젊은 시절 노르망디를 여행하다가 그 지역의 한 작은 마을 베르농에서 지조르로 가는 기차를 탔다가 우연히 지베르니라는 작은 마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883년 지베르니로 거처를 옮긴 후 모네는 이 마을의 사과나무 과수원과 그 옆의 분홍빛 벽의 예쁘장한 건물을 구입하게 된다. 그후 모네는 이 과수원에 온갖 꽃을 심어 꽃의 계곡으로 변모시키고 만다. 이후 1893년에는 과수원 늪지대를 새롭게 사들여 큰 연못을 파게 하고 연못 양쪽을 연결해 주는 둥글게 굽은 일본식 다리도 설치했는데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모네의 걸작 '수련'의 배경이 된 곳이다. 모네는 1926년 12월 6일, 지베르니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지베르니에 모네가 살지 않았다면 프랑스 시골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마을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위대한 화가가 경영한 아름다운 정원은 전 세계 미술애호가와 화가들의 부러움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아 당대부터 오늘날까지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문화의 명소가 되었다. 지베르니가 처음부터 모네마을로 유명세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모네와 그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두 아들 중 큰아들도 사망하자 둘째아들인 미쉘은 모네의 집과 그의 유작을 파리 보자르미술학교에 기증했다. 르누아르, 세잔 등 동시대 유명작가의 작품 다수도 함께 기증됐다고 전해진다. 

 

지베르니(Giverny)는 파리 서쪽으로 75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우리에게는 모네의 정원(Monet's Garden)이 그곳에 있어 잘 알려져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인상파의 거장 모네는 젊은 시절 노르망디를 여행하다가 그 지역의 한 작은 마을 베르농에서 지조르로 가는 기차를 탔다가 우연히 지베르니라는 작은 마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883년 지베르니로 거처를 옮긴 후 모네는 이 마을의 사과나무 과수원과 그 옆의 분홍빛 벽의 예쁘장한 건물을 구입하게 된다. 그후 모네는 이 과수원에 온갖 꽃을 심어 꽃의 계곡으로 변모시키고 만다. 이후 1893년에는 과수원 늪지대를 새롭게 사들여 큰 연못을 파게 하고 연못 양쪽을 연결해 주는 둥글게 굽은 일본식 다리도 설치했는데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모네의 걸작 '수련'의 배경이 된 곳이다. 모네는 1926년 12월 6일, 지베르니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지베르니에 모네가 살지 않았다면 프랑스 시골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마을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위대한 화가가 경영한 아름다운 정원은 전 세계 미술애호가와 화가들의 부러움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아 당대부터 오늘날까지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문화의 명소가 되었다. 지베르니가 처음부터 모네마을로 유명세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모네와 그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두 아들 중 큰아들도 사망하자 둘째아들인 미쉘은 모네의 집과 그의 유작을 파리 보자르미술학교에 기증했다. 르누아르, 세잔 등 동시대 유명작가의 작품 다수도 함께 기증됐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후 1966년부터 1976년에 이르는 약 10여년의 세월 동안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은 관리되지 않아 방치되고 만다.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전 베르사이유 궁전 관장은 1976년 모네의 집 큐레이터로 동시에 임명받으며 복원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보자르미술학교의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미국인 메세나 여사의 도움을 받아 클로드 모네 재단을 창설하고 이후 3년간 모네의 집과 주변을 정비하는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였다. 당시 미국 정재계에서 유명인사로 꼽히던 메세나 여사는 클로드 모네 작품의 애호가였으며 당시 100만달러를 기부하며 재단 설립에 앞장섰다고 로렌 에슈바드(Laurent Echaubard) 클로드 모네 재단 팀장은 설명했다. 로렌 팀장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1980년 모네의 집과 정원이 일반에 공개되자 수많은 방문객들이 지베르니를 찾았고 지금도 그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며 “2013년 기준 한 해 동안 약 58만명의 관광객들이 지베르니를 찾았으며 이중 56%가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모네의 집과 뒤편의 아름다운 정원이 인기를 얻으면서 약 500여명이 모여 있는 지베르니 마을에는 관객들의 편의를 위한 민박시설, 레스토랑, 미술관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로렌 팀장에 따르면 주민들 중 50%는 인근 도시에서, 20%는 모네의 집 관련 관광업에 종사하며 나머지 30%는 민박집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결국 전체 주민 중 50%가 모네의 집과 관련한 관광·숙박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한 관리와 홍보에 힘입어 프랑스의 한 작은 시골마을 주민들은 여느 도시에서의 삶보다 윤택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보통 우리나라의 경우 관광명소로 알려지는 순간 카페, 술집 등으로 상업화되기 십상이지만 지베르니는 다르다. 낮 시간에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제외하곤 적막이 감돈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이 있지만 마을 전체의 경관을 해치지 않는 것은 물론 상업적인 경향을 띄는 위락시설은 없다. 이는 지베르니 모네의 집이 1년 중 5개월(동절기) 휴관을 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상업적 이익만을 위한 외지 투자자들이나 업자들에게 5개월 동안의 휴관은 큰 타격이다. 결국 모네의 집이 자리한 지베르니라는 마을을 사랑하는 보통 주민들의 삶의 공간으로 소박하게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르비종 
바르비종은 퐁텐블로 10km 근방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보기에는 평범한 시골 마을이지만 이곳 역시 오베르 쉬르 와즈(반 고흐 마을)와 같이 화가들로 유명해진 곳이다. 일명 ‘화가들의 마을(Village des Peintres)’로 불릴 정도로 약 80여 명의 화가들이 살던 곳이다. 밀레, 루소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을 마을의 이름을 따서 ‘바르비종파’로 부르기도 한다. 바르비종파는 마을의 소박한 풍경과 이곳에 살던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는 것을 즐겼다. 밀레의 대표작인 ‘만종’도 바로 이곳에서 그려졌다.
 

 


바르비종에는 밀레와 루소의 아틀리에를 비롯해 크고 작은 화랑들과 미술관, 숙박업소, 주민들이 운영하는 카페 등이 즐비하다. 마을 규모 면에서 지베르니보다 도시적인 면모를 띄고 있지만 역시 한적한 시골에 자리한 소도시이다. 바르비종은 지베르니 못지 않게 파리 근교의 예술마을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지금도 밀레 등 바르비종 화파의 양식을 추종하는 현대 화가들이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바르비종에서 눈 여겨 볼 곳은 밀레의 아틀리에다.

밀레 아틀리에 매니저 FARHAT Bachar 씨의 설명을 들으며 살펴본 아틀리에는 가난한 화가였던 밀레가 머물렀던 당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가 사망했던 시간에 멈춰있는 괘종시계를 비롯해 다양한 그의 유품들과 판화 작품 등이 빼곡히 아틀리에를 메우고 있다. FARHAT Bachar 씨는 “화가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도록 예전 아틀리에의 원형을 간직하려 애쓰고 있다”며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밀레를 더욱 잘 이해하고 친근감을 갖고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밀레 아틀리에와 더불어 바르비종의 또 다른 명소는 가난한 화가들을 지원했던 여인숙(Auberge du Pere Ganne)이다. 현재는 관광객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여인숙에는 밀레와 루소 등 바르비종 화파들과 친했던 화가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0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곳곳이 낡은 건물이지만 벽이나 바닥에 화가들의 습작이 남겨져 있어 과거 여인숙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이 여인숙은 밀레 아틀리에 못지 않게 바르비종의 또 다른 명물로 자리잡았다. 개발논리에 밀려 철저위기를 맞고 있는 국내 근대 문화유산들의 처지를 돌이켜 보게된다. 여인숙 관계자는 “작가의 아틀리에가 남아있다는 것도 큰 유산이지만 여인숙 같은 건물들이 있어 예술마을로써 바르비종이 더욱 풍성해진다”며 “밀레마을로써 바르비종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심도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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