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의 시작이자 순교의 땅, 홍주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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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의 시작이자 순교의 땅, 홍주순교성지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6.12.1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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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15>
▲ 천주교 홍주순교공원에서 지난 10월 ‘십자가의 길14처 축복식’을 거행했다. 홍주성지성당 최교성 신부와 대전교구장 유홍식 주교

1000여명 순교자 배출한 홍주 땅에 2008년 ‘순교비’ 세워져
홍주성지,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천주교순교자 배출한 곳
천주교홍주순교성지 순교자 생매장터 십자가의 길 14처 축복
홍주순교성지 순례객들을 위한 홍주성지의 성당 마련 시급해


충청도 내포지역의 중심지인 홍주는 감영 터를 비롯한 순교성지가 많다. 천주교 관련 유적지가 집중돼 있는 연유는 이곳이 ‘한국 천주교회사의 못자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처음에 서울과 경기도로 전파되다가, 이존창에 의해 현재의 충남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 지역은 초기 천주교 신앙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혹한 박해의 피해지가 되기도 했다. 1839년 기해박해에서 1866년 최대, 최후의 병인박해까지 베르뇌, 페레올, 다블뤼, 오메트르, 위앵 등 파리외방전교회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머물면서 선교의 중심지가 됐던 곳이다.

■홍주 천주교순교사 종교의 영역 초월
홍주는 이존창 등에 의해 복음이 전파돼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있던 곳이다. 기록상으로 홍주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으며, 지금도 잘 보존된 홍주성 동문인 조양문을 비롯한 4대문 안으로 끌려 온 천주교 신자들은 심한 문초를 받아 죽거나 옥에서 굶어죽기도 했으며,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한꺼번에 구덩이에 묻힌 것으로 기록된 곳이다. 지난 1984년 로마교황청의 심사를 거친 103명이 성인으로 공표됐고, 2000년 2차 순교자 124명 중 충청출신이 51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가 23명으로 다음이었다. 충청도출신 중에서도 홍주출신이 16명으로 가장 많았고, 덕산 12명, 예산 6명, 청양 5명 등인 점으로 볼 때 내포지역의 천주교 박해실태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 지역 순교자들에 대해서는 일부 성지 안내서와 교구사를 통해 살펴보면 1866년과 그 후 2년간에 걸쳐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고, ‘치명일기’에만도 80여 명의 명단이 전해지지만 전체적으로 명확한 숫자나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이밖에도 무명의 순교자들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실제로 현재의 ‘천주교 홍주순교성지’비가 세워진 합수머리의 생매장 터와 북문교 밖의 참수터 근처 등에 묻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주의사총’은 900여구의 유골이 묻혀 있는 곳으로 다분히 홍주의병과 홍주천주교 신자들의 뼈가 함께 묻혔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록상으로 홍주지방에서의 첫 순교자는 1793년 원 베드로이다. 1797년에 박해가 발생 이듬해 원 야고보, 배 프란치스코, 방 프란치스코 등이 잡혀 방 프란치스코는 이곳에서 순교하고 나머지는 청주로 이송돼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홍주’의 관할지역의 범위와 지리적 위치 등을 고려할 때 상당수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혹독한 탄압을 일삼았던 흥선대원군이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에서 승리하고, 그 해 서울 종로와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가 홍성에도 있기 때문에 박해의 정도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상징물이다. 교회 순교록에는 홍주에서의 순교자가 모두 115명(무명 순교자 11명을 포함해 1866년 51명, 1867년 19명, 1868년 27명, 1869년 2명, 연도미상 16명)으로 수록돼 있고, 관변 측 기록에는 1868년 4~7월까지 4개월 동안의 순교자만 모두 102명이 수록돼 있다. 따라서 홍주의 순교자는 초기 8명을 포함해 중기 4명, 병인박해 당시 200명을 합하면 처형된 신자가 무려 212명에 이르며, 무명 순교자를 포함하면 실제 순교자수는 1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내포지역에서의 순교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할 일이며, 문서의 기록 등에서도 수정이 불가피한 사항이다. 기록상 210여명의 순교자와 1000여명의 무명순교자 숫자로 볼 때 한국 천주교 신앙의 뿌리인 내포지역, 특히 천주교 홍주순교성지는 새로운 성역으로 재탄생해야 하는 당위성이 그래서 있다. 이제 홍주의 천주교 순교사는 종교의 영역을 초월한 지역역사의 흐름이고, 승화시켜야 할 시대정신의 핵심사상이다. 민초들이 주체가 돼 형성된 민중공동체의 삶의 진리인 것이다.
 

▲ 지난 2008년 ‘천주교 홍주순교성지비’제막식.

■천주교 홍주순교비, 홍주 얼 견고히 해
내포지방 최초의 순교자 원시장(베드로)을 비롯해 212명의 유명(有名) 순교자와 800여명의 무명 순교자를 배출한 홍주 땅에 ‘천주교 홍주순교비’가 지난 2008년 3월 15일에 세워졌다. 지난 2004년 홍성성당과 홍성군에 의해 지역의 천주교 순교사가 공론화되고 순교성지 발굴이 본격적화 된 지 4년 만에 순교의 역사를 상징하는 순교비가 세워짐으로써 홍주순교사 연구와 홍주순교 터의 성역화 계기가 됐다. 당시 홍성본당의 나기순 주임신부는 홍주순교공원에서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순교자현양 미사 및 홍주순교성지비 제막식’ 미사 강론에서 “순교비 제막은 홍주의 순교사가 음지에서 양지로 떠오른 지 만 4년 만에 이뤄진 쾌거로 감개무량하고 감회가 새롭다”며 “군관민이 하나로 뜻을 모아 이룩한 이 비석이 겨자씨가 돼 앞으로 홍주순교성지가 순례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령의 큰 결실을 맺는 곳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홍성군은 3000만 원의 예산 지원을 통해 제작된 ‘천주교 홍주순교비’는 가로 1.2m, 세로 0.8m, 높이 5m 크기로 ‘홍주 순교성지 공원’이 조성될 홍성천과 월계천의  합수머리 부근의 하천 옆 1983㎡ 부지에 조성했다. 이곳은 홍주성 북문 밖을 흐르는 월계천과 조양문 밖을 흐르는 홍성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지점으로 1868년 생매장으로 순교한 최법상(베드로), 김조이(루치아), 김조이(마리아), 원 아나타시아 등을 비롯해 박해시대 홍주성 안에서 옥사나 교수형으로 순교한 순교자들의 시신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여서 의미를 더했다.
하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순교비 앞면에는 ‘천주교 홍주순교비’, 뒷면에는 ‘이곳 홍주골은 믿음을 지킨 성지로 충청 최초 순교자가 승천한 곳 이 숭고한 넋은 평화의 빛이 되리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아울러 순교비 옆 표지석에는 ‘이곳은 순교의 정신으로 내 나라 내 고장 홍주의 얼을 견고히 하는 거멀못이 될 것임에 삼가 순교자를 현양하는 마음으로 이 비를 세운다’고 적었다. 순교비에 담긴 글은 시인 구재기가 짓고, 글씨는 심응섭 서예가가 썼다. 당시 제막식에서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홍주의 순교사를 되살리고자 수고하신 본당 주임신부님과 군 관계자, 군민들에게 죄송스럽고 또 감사한 마음”이라고 인사를 전하며 “이번 순교비 제막을 계기로 우리 신앙인 모두가 순교자들의 삶을 닮은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순례객 위한 홍주성지성당 마련 시급해
한편 홍주순교성지성당(담당 최교성 신부)은 지난 10월 22일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의 주례로 ‘천주교 홍주순교공원’에서 ‘십자가의 길 14처 축복식’을 거행했다. 유흥식 주교는 이날 축복식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사랑뿐만 아니라 신앙 선조들의 삶을 본받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우리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어가자”고 말했다. 최교성 신부도 인사말을 통해 “홍주성지는 해미순교성지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한 곳”이라며 “순교한 것으로 확인된 이만 212명, 무명 순교자까지 포함하면 1000명이 넘는 순교자를 배출한 땅”이라고 말했다. 홍주순교성지의 순교터 중 한 곳인 홍주순교공원의 생매장터에 설치된 14처는, 고영환(토마스·56)조각가가 3년여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다. 이렇듯 홍주순교성지는 박해 초기(1792년)부터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수많은 순교자들이 스러져간 곳으로 6곳의 순교터가 자리하고 있다. 고문 때문에 피로 얼룩진 홍주목사와 진영장의 동헌, 첫 순교 터이자 113명이 순교한 홍주감옥 터, 순교자들이 조리돌림을 당했던 저잣거리, 그리고 참수 터와 순교자 생매장터 등이 1.5㎞의 거리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순교한 원시장 베드로, 방 프란치스코, 박취득 라우렌시오, 황일광 시몬 등 4명의 순교자들은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이처럼 교회사적으로나 순교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성지임에도 불구하고, 홍주순교성지는 성당 등 순례객들을 맞이할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현재 순례객들을 위해 홍주성 인근의 건물을 임대해 20평 남짓한 공간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때문에 많은 순례객들이 방문하면, 군청의 강당을 빌리거나 안회당 인근의 잔디밭에서 야외 미사를 봉헌하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홍주성지성당이 입주해 미사를 봉헌하는 건물도 2017년이면 홍주성 복원계획에 따라 철거될 예정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홍주순교성지 순례객을 위한 성당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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