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동족상잔의 6.25전쟁 발발
상태바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동족상잔의 6.25전쟁 발발
  • 황규창<전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홍성군지회장>
  • 승인 2010.06.21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규창의 내가 겪은 6.25 ①

 

황규창 약력 : 1929년 구항면 공리 출생, 1943년 갈산초등학교 졸업 1949년 군 입대(보병 제9연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기습 남침으로 1연대에 편입 전투 참가, 1950년 10월 18일 함경도 원산지구 전투에서 부상, 1950년 10월 30일 부산3육군 병원 후송 입원, 1951년 10월 30일 퇴원 후 보병2사단 32연대 11중대에 편입, 1951년 2월 20일 태백산 일대 공비토벌작전에 참가 완전 소탕 후 북진, 1951년 4월 30일 38선 최전방(금화지구) 배치, 1951년 6월 천불산전투. 734(모택동고지), 633(김일성고지),424(무명고지), 1953년 7월 27일 휴전까지 저격능선ㆍ오송산전투ㆍ백마고지전투ㆍ방송고지ㆍ화살촉고지 전투 등 수많은 전투 참가, 1956년 4월 18일 보병30사단 91연대에서 특무상사로 명예 전역, 1974년~1982년 마을이장 및 면정화위원 역임, 2007년~2008년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홍성군지회장 역임. 

 

 

 

 

 


나는 1929년 7월 8일 충남 홍성군 구항면 공리 340번지에서 태어나 농사일에 전념하던 중 1949년 1월 25일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 후 보병 제7사단 9연대에 배치되어 경기도 포천지구 북방 38선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의 도발 징후가 있었던지 1950년 6월 17일 0시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발령되어 외출, 외박, 휴가가 금지되고 부대별 강훈련 및 경계 태세가 강화되었다. 그러던 중 동년 6월 24일(토요일)에 전군에 내려졌던 비상경계령이 해제되고 외출, 외박, 휴가 등이 허가되어 최전방 경계부대를 제외한 후방부대에서는 최소한의 경비병만 남겨둔 채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야간 경계근무를 마치고 얼마간 취침 후 화장실에 가기 위해 내무반을 나서니 어디선가 포성이 은근히 들려오고 있었다. 그때가 6월 25일(일요일)새벽으로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시나의 계급은 상등병 이였다. 그러나 얼마 후 영내 마이크와 나팔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북한 공산군이 전면전으로 남침하였으니 전투태세를 갖추고 5분 내로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명령이었다. 당시 얼마 남지 않는 장병들은 완전군장 후 군용 트럭에 승차하여 경기도 포천지역으로 출동하였으나 이미 포천 읍은 적의 포화에 처참하게 파괴되었고 일반 시민들은 피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피눈물 나는 후퇴 작전

우리부대는 포천 외곽에 방어진을 구축하고 적의 공격을 막아보려 했으나 탱크를 앞세운 공산군은 거침없이 아군진지를 무차별 공격해 왔다. 당시 아군의 무기는 60미리 및 81미리 박격포와 3.5인치 로켓포 등 재래식 무기로 적의 탱크를 막을 수가 없어 작전상 후퇴라는 미명아래 서울방향으로 후퇴를 하게 되었다. 6월 25일 오전부터 내리던 궂은비는 그칠 줄 모르고 후퇴하는 우리군의 속도를 느리게 했다. 우리 아군은 미아리 고개에 1차 방어진지를 구축한 후 반격을 하고 자 모든 병력을 집결하고 있었다. 6월 25일 아침식사도 못하고 출동하여 3일간 급식 지원을 받지 못한 채 6월 27일 18시에 방어진지에 도착하니 서울 시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에게 주먹밥을 나누어 주는 바람에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날 밤 적의 맹렬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적의 포탄이 서울 돈암동 한복판까지 떨어지는 등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우리군은 밤새 적과 교전하였다.

6월 28일 새벽 날이 밝으면서 사방이 조용해 졌다. 나는 진지에서 나와 주위 동정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 아군 병사는 보이지 않고 밤새 내린 비로 인접 참호에는 고인 물과 함께 몇몇 병사가 총구는 하늘로 머리는 땅에 박고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그 병사들을 불러 보니 갓 입대한 이병과 일병들이었다. 나는 병사들에게 빨리 진지를 탈출하지 않으면 적에게 포로가 되거나 죽으니 각자 헤어져 남쪽으로 가라하고 나는 민간 옷으로 갈아입고 남쪽으로 탈출하여 보니 서울 한복판에는 인민군 탱크가 질주하고 가끔 총성이 들리며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당시 계급이(하사)였으나 낙오병으로 갈 곳이 없었다. 나는 부대를 찾기 위해 계속 남쪽 방향으로 피난민과 함께 이동하여 6월 28일 21:00경 한강제방에 도착하여 보니 인민군이 제방에 진을 치고 저녁 식사 중이었다. 이 때를 틈타 적의 진지를 통과 후 강가에 도착하여 주위를 살펴보니 조그만 배 한척과 피난민 7~8명이 보였다. 나는 이들과 함께 무사히 한강을 건넜다. 나는 피난민과 함께 밥을 얻어먹으며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던 중 경기도 시흥(과거 보병학교)에서 후퇴하는 국군이 집결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 보니 총기와 군복을 지급하고 부대를 재편성하고 있었다. 지휘관이 누군지, 소대장, 중대장, 분대원이 누군지 모르는 채 오합지졸로 편성하여 한강이남 제방에 배치되었다. 그때서야 미 공군의 공중공격이 시작되어 서울 한복판에 폭탄 투하등 맹렬히 공격하니 적군이 잠시 주춤 하는 듯 했다. 그러나 적군은 비밀리에 탱크와 각종무기를 병력과 함께 야음을 틈타 도강하여 우리 군에게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여 왔다. 3~40여분동안 교전하는 동안 사상자는 부지기수로 늘어나 할 수 없이 후퇴하여 노량진 시가전을 강행하면서 안양에 도착하여 부대를 재편성하고 다시 방어전을 펼쳤으나 역부족으로 다시 수원까지 후퇴하였다.

 

 

 

 

 

 

 


7월 중순으로 기억한다. 유엔군이 참전했다는 소문이 간간히 들리고 우리부대도 어느 정도 지휘체계가 확립되어 부대를 재편성하고 계속 남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후퇴하는 과정에서 유엔군의 공습이 피아를 구별 못하고 계속되는 바람에 공습 시에는 야산으로 흩어졌다가 공습이 중단되면 다시 집결하여 목적지 안성에 도착하니 한밤 중이였다. 자세히 보니 이미 사단 병력이 집결한 상태로 수도사단장 김석원장군의 지휘 아래 충북 진천 지역에 방어진을 구축하기 위한 작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1연대 1대대)부대는 잠시 휴식 후 작전명령에 따라 남으로 남으로 행군을 계속하였다. 다음날 충주 뒷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나니 해는 지고 어둠이 시작되었다. 나는 긴장하여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데 적의 포탄이 우리 진지에 수십 발이 떨어지고 잠시 후 지휘관으로부터 사격 개시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우리는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고 결사항전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시켰으나 역부족 이였다. 다시 상부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고 청주를 지나 보은방향 8km지점 고개에 진지를 구축하고 만반의 전투 준비를 하고 있던 중 오후4시경 적인민군이 아군진지를 향해 공격을 개시해 왔다.

우리는 지형적으로 적의 목표를 뚜렷이 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다. 6.25전쟁 발발이후 처음으로 수많은 적군을 사살하고 진지를 방어하는 승리감을 맛보았다. 우리는 또 다시 명을 받고 보은을 거쳐 경상북도 상주방향으로 이동하는데 유엔군이 방어진을 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계속 행군하여 경상북도 안동시 뒷산에 집결진지를 구축하고 추격해 오는 적과 밤새도록 접전하다가 해뜰 무렵 다시 후퇴하여 낙동강을 건너던 중 적의 총탄이 좌측 상박 부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다. 나는 응급처치 후 경주를 거쳐 집결지인 안강에 도착하였다. 당시 사단장은 송요찬 장군으로 교체되었고 국군 모두가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며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서려야 물러 설 곳이 없다. 더 이상 물러가면 동해바다에 빠져 죽으니 싸우다 적탄에 죽자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피아간의 치열한 전투는 계속 되었고 낙동강이 피아간의 시체로 쌓여있고 강물도 핏물로 붉게 물들어 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처참한 전투였는지 피아간의 운명을 건 대결전이었다. 우리군은 결사 항전으로 최후의 방어선을 지켜냈으며 인천상륙작전으로 적군의 사기와 전투력은 극도로 저하되어 모든 전선에서 후퇴하게 되었으며 우리군은 부대를 정비후 재편성하여 북진의 계기가 되었고 북한 공산당은 불법 남침으로 인한 적화통일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당시 나의 계급은 이등중사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