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약한자에게 용기와 힘을, 강한자에게 겸허함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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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약한자에게 용기와 힘을, 강한자에게 겸허함을 가르친다"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홍성고 20회)
  • 승인 2011.02.2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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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 유태헌의 전국 100대 명산 산행기 관악산 ①

홍주신문은 국토의 등뼈를 밟아가는 산꾼 유태헌(홍주신문 서울총괄본부장홍동출신홍성고 20회손전화 010-3764-3344)의 전국의 100대 명산 산행기를 연재하고 있다. 홍주신문 독자들과 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편집자 주>

 

 

관악산 삼막사

 

 


산행일자 : 2011년 2월 13일
구 간 : 관악산정문 - 234봉 - 칼바위- 장군봉 - 깃대봉 - 삼막사- 삼성산 - 상불암 - 무너미고개- 8봉능선 - 연주암 - 관악산정상- 마당바위 - 관음사 - 사당동
산행거리 : 13.7km
산행시간 : 7시간 30분 소요


관악산(冠岳山ㆍ631m)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경기도 안양시, 관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북한산 남한산 등과 함께 서울 분지를 이중으로 둘러싼 자연의 방벽으로 옛 서울의 요새를 이뤘다. 지난 1968년 건설부 고시 제34호에 따라 도시 자연공원으로 지정 됐으며, 1973년 관악구가 영등포구에서 분구되면서 산 이름이 구의 명칭이 됐다. 관악산은 서울의 조산(祖山)이다. 내룡(來龍)은 백두대간에서 이어진 태백산, 소백산, 새재, 희양산을 거쳐 속리산이 중조(中祖)가 되어 한남금북정맥을 이루고, 북으로 치달아 칠현산, 광교산, 청계산을 이어, 관악, 금지산, 남태령에서 한강을 경계선으로 강남의 서쪽 벌판에 우뚝 솟아 강북의 삼각산과 마주하고 있다. 관악산은 청계산, 삼성산과 함께 옛 금천의 진산(鎭山)인 금지산경(衿芝山經)을 이루는데, 이 산경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불과 같아 풍수적으로 화산이 된다. 관악산은 일찍부터 불기운이 드세다고 알려져 왔다.

 

 

 

 

 

관악산 등산코스

 

 


어깨쭉지로부터 정수리로 향하여 치어 오르는 암봉들의 모양새가 흡사 한창 피어오르는 불꽃으로 비치는 산이다. 즉, 그것이 풍수의 '산의 모양새는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방불하게 하는 것'이라는 유물(類物)신앙과 맞아 떨어져서는 산형오성관(山形五星觀)으로 쭈빗거리는 첨(尖)을 이른바 화(火)이니, 마침내 관악산 산채를 오행(五行)중 그 화기(火氣)의 발현이라고 인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산을 용으로 보는 풍수지리에서 산세를 살피는 일마저 간룡법(看龍法)이라 이르지만, 관악산은 더구나 불 가운데에서도 활활 타오르는 불꽃,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화룡(火龍. Fire drake)이었던 것이다. 이 산의 화기를 진압하고자 태종의 둘째아들이요, 세종의 중형인 효령대군에 의한 연주암 중수다. 그는 연주대에 나한전을 세우고 약사여래석상과 미륵석상, 그리고 5층 석탑을 조성함으로써 관악산 화기에 대한 도읍 안녕의 비보사탑(裨補寺塔)으로 삼은 것이다. 또한 구체적인 방책의 하나가 경북궁 처마위에 해치를 얹은 것이다. 또 남대문의 숭례문 현판을 세로로 써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상징하게 했다. 결국 그 숭(崇)자가 이미 불꽃 모양인데다가 오행으로 예(禮)자가 또 화에 해당함으로 즉, 그것으로 마주보이는 관악산 화기에 맞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남대문이 방화로 손실되면서 종합청사가 원인모를 화재가 난 것도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관악산 안내표지판

 

 


그러나 관악산은 빼어난 수십 개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많고 오래된 나무와 온갖 풀이 바위와 어우러져 철따라 변하는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하여 소금강,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이라고도 한다. 곳곳에 드러난 암봉들이 깊은 골짜기와 어울려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며, 숲과 맑은 공기, 확 트인 조망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산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 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고 했다.

관악산은 옛날부터 개성 송악산, 가평 화악산, 파주 감악산, 포천 운악산과 함께 경기도 오악(五岳)의 하나다. 관악산은 그 북쪽 기슭 낙성대에서 출생한 고려의 강감찬 장군과 관련한 전설도 많다. 그가 하늘의 벼락방망이를 없애려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벼락방망이 대신 이 산의 칡을 모두 뿌리 채 뽑아 없앴다는 전설도 있고, 작은 체구인 강감찬이지만 몸무게가 몹시 무거워 바위를 오르는 곳마다 발자국이 깊게 패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 전설들을 뒷받침해 주듯 관악산에서는 칡덩굴을 별로 볼 수 없고, 곳곳의 바위에 아기 발자국 같은 타원형 발자국들이 보인다.

암릉길 산행을 좋아하는 나는 오늘도 관악산 8봉 능선을 오르기 위해 관악산 정문을 지나 500여 미터 진행을 하면 우측으로 경로구간이라는 이정목 표시가 되어 있는 코스를 따라 오른다. 좌측에 있는 쉼터 정자를 뒤로 하고 곧 바로 치고 오르는 등로는 잠시 숨고를 틈도 주지 않고 가파르게 암릉길로 이어지는데, 이 암릉 구간이 군데군데 얼어 있어 몸도 풀리기 전 긴장을 하게한다. 힘겹게 비탈진 암릉을 오르고 나니 나즈막한 능선이 나타나고, 오늘따라 날씨가 맑아 하늘은 파랗고 멀리 삼각산 일대가 시야에 들어오고 도심의 빌딩 숲도 섬세한 모습으로 조망된다. 또한 가야할 연주대 방향은 군데군데 눈 덮인 모습이 한 폭의 산수화다. 암릉을 지나면 부드러운 육산의 능선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른다.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오르는지 궁금하다. 산은 즐기는 대상이 아니다. 산은 사랑의 대상이다.

산 은 그 모습 자체가 교훈이다. 산은 약한 자에게는 용기와 힘을 주고 강한 자에게는 겸허함을 가르친다. 산행을 하면서 우리가 접하는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에서 무한한 자연의 섭리를 깨닫게 한다. 그래서 산은 감히 줄기는 대상이 아니다. 사랑하고, 느끼고 대화하면서 자연으로 용해될 때 산과 사람은 하나가 될 수 있고 비로소 무한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나 또한 경지에 이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아끼며 사랑하자. 잠시 생각을 떨치면 금세 암릉 길이 기다린다. 칼바위 능선을 넘고 장군봉을 지나 돌산 깃대봉에 오른다. 칼바위 능선을 통과할 때는 암릉 산행이 많은 경험자라도 힘들어 한다. 아무리 경험자라도 무엇보다도 안전산행이 제일이다. 낮은 4거리 안부에서 국기봉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잠시 후 삼막사(三幕寺)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경내를 둘러본다.

삼막사는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창건 됐다고 전한다. 신라의 원효와 의상 두 고승과 윤필거사 등 세분이 이곳에 띠집을 엮어 수행처를 마련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는 1771년 설암이 작성한[삼성산삼막사사적]에 기록돼 있다. 한편[범우고]의 금천조에는 고려 말에 지공․나웅․무학이 삼막사를 창건 했다고 돼있다. 여하튼 이 지역 일대의 다른 사찰에서도 원효․의상․윤필거사, 또는 지공․나웅․무학 등과 얽힌 설화가 널리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은 삼성산이라는 역사․지리적 배경이 관계된 것이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삼막사는 창건 후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잡초만 무성하던 빈 터에 사찰을 중건하고 관음사라 이름하였다가, 후에 도선국사의 문도들이 삼막사라 불렀다.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나웅선사가 이 곳으로 거처를 옮겨 머물렀다. 충정왕 1년(1349)에는 중국에 있던 지공스님이 제자인 나웅을 만나기 위해 이 곳에 찾아온 이후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선풍(禪風)이 크게 일어났다. 조선 태조 때 나웅의 제자인 무학대사가 동서남북의 각 방향에서 서울을 외호하는 4개 사찰을 선정할 때 삼막사는 남쪽에 해당하는 사찰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사찰이 거의 불에 탔으나 대웅전만 소실을 면하였다. 그후 중건, 중수가 계속 됐으나, 1990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이 전소되고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되던 범종을 비롯하여 불상. 불화 등도 모두 소실 됐으며, 이후 계속 중창불사를 일으켜 규모를 갖추어 가고 있다.

삼막사 경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700미터 거리에 칠성전이 세워져 있으며, 칠성전의 내부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인 마애삼불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삼존불은 1763년이라는 조성연대가 뚜렷하여 조선후기의 불상 및 조각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기도 하다. 칠성전 서북 편에는 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된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어 출산과 관련된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삼막사를 지나 잠시 후 삼성산(三聖山․481m)에 오른다. 삼성산은 금천현의 관아가 있는 지금의 서울시 금천구 시흥2동에서 동쪽으로 10리 지점에 있는 산으로 금천현의 진산(鎭山)이며, 관악산은 지금의 과천시 관문동 소재 온온사가 있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5리 지점에 있는 과천현의 진산이어서 두 산이 별개의 산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 두 산은 각 고을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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