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佛道)를 수행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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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佛道)를 수행 하는 것’
  • 유태헌 서울본부장
  • 승인 2011.04.2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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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28구간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홍성고 20회·손전화 010-3764-3344)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해 산행기를 연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1년 4월 16일~17일
구 간 : 댓재 - 두타산 - 박달령 - 청옥산 - 연칠성령 - 고적대 - 갈미봉 - 상월산 - 원방재 - 백봉령
도상거리 : 29.1km
산행시간 : 13시간 소요 


이번 대간길은 삼척의 댓재에서 출발, 오른쪽으로 동해를 바라보며 북쪽으로 올라간다. 날머리 백봉령은 정선군이고 강릉의 밑이다. 지리산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종주하는 것에 버금갈 만큼 길고 힘든 구간이다. 도상거리 29.1km, 12시간 이상 걸린다. 강화의 조덕자 님은 이번 구간을 준비하려고 아파트 20층을 하루에도 20번 이상 계단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단련한 덕분에 부군과 함께 무사히 구간을 종주할 수 있었다 한다. 특히 동해 바다 가까이 백두대간 능선이 흐르는 구간이다. 두타산 하면 무릉계곡을 품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번 구간은 1000~1400m급 웅장한 능선과 온갖 야생화와 약초가 가득한 곳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새벽 3시경 댓재에 도착했다. 서둘러 준비하고 댓재를 출발한다. 해발 810m의 댓재는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죽현(竹峴), 죽치령(竹峙靈)으로도 불렸다. 대나무 고개가 댓재로 된 것이다. 어둠속에 렌턴을 비추며 산신각 옆을 지나려고 하니 흰옷 입은 아가씨가 같이 가자고 하면 어쩌지 하는 부질없는 걱정을 하며 산에 오른다. 그렇지만 어두운 야간 대간길에도 세 가지 벗이 있으니 외롭지 않다. 그 하나는 하늘의 별과 달이요, 그 둘은 대간길에 묻어 있는 산객의 흔적이요, 그 셋은 대간길에 달아 놓은 백두대간 리본이다. 그러고 보니 딱 맞는 시귀가 생각난다.

月白雪白 天地白 (월백설백 천지백)
달도 눈도 천지가 하얀데
山深夜深 客愁深 (산심야심 객수심)
산도 밤도 산객의 수심도 깊더라.

이 셋만 있으면 밤이 아무리 깊어도 마음은 편안하다. 타박타박 걸으니 작은 봉우리 햇대등에 오른다. 햇대등 부근에는 유독 밑둥 굵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그득하다. 춘양에서 보았던 금강소나무처럼 미끈하지는 않지만 굵고 단단해 보인다. 사람이 관리하는 소나무에서 볼 수 없는 야성이 흘러넘친다.
햇대등에서 좌측으로 90도 꺾여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통골재다. 댓재와 두타산 중간지점으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댓재, 햇대등, 명주목이, 통골재... 그러고 보니 지나온 곳마다 이름이 예쁘다. 통골재 에서 두타산 전위봉 격인 1243봉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부침이 심하진 않지만 뚝뚝 땀을 흘리며 묵묵히 걸어야 한다.
 

 

 


두타산의 두타(頭陀)가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佛道)를 수행 하는 것’을 말하는 불교 용어라 그런지, 한걸음 한걸음이 고행처럼 느껴진다. 산행이 수행보다 좋은 점은 누구나가 땀을 흘리면 정상을 만난다는 점이다. 동해시의 아름다운 야간 불빛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면 잡목들이 한순간 사라지고 널찍한 두타산(頭陀山.1352m)정상에 오른다(05시50분). 불교용어로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지만, 산행인들 사이에는 골 때리게 힘들다 해서 두타(頭陀)라고 농하기도 한다. 북으로는 무릉계곡, 동으로는 고천계곡, 남으로는 태백산군, 서로는 중봉산 12당 골이 있다. 바람의 산이라 불릴 만큼 바람이 많은 산이며,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과 동해시 삼화동에 걸쳐 있으며, 삼척시와 동해시의 모산(母山)으로 신앙의 대상이며, 예술의 연원이라 하여, 오십정산제당(五十井山祭堂)이 있고, 예로부터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두타산과 서쪽의 청옥산을 잇는 의가등(衣架嶝)은 병풍을 펼쳐놓은 것 같은 가경(佳景)을 이룬다. 청옥산, 고적대와 함께 해동삼봉(海東三峰)이라 불리운다. 산정상은 그동안 답답한 시야를 보상이나 하듯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북쪽으로 청옥산의 넉넉한 품으로 달려가 안기고 싶고, 그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출렁이는 백두대간 능선은 참으로 통쾌하다. 백두대간 능선이 감싼 계곡이 무릉계곡이다.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면 아스라이 찰랑거리는 동해가 두타산 발길을 간지럽힌다. 정상에서 왼쪽이 대간길이고 오른쪽은 쉰음산(688m) 가는 길이다. 쉰음산은 정상에 웅덩이가 50개 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두타산의 산신이 여성이고 웅덩이는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하는데 옛날에 치성객이 많았다고 한다. 쉰음산 자락에는 두타산성이 있고 천은사(天恩寺)가 있다.

 

 

 

 

 

 

 

 

 


두타산성은 1414년 조선 태종 때 축성 했다고 전해지나 102년 신라 파사왕 때 처음 쌓았다고도 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穆祖)가 몽고군을 피해서 머물렀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빼어난 장소를 우리의 선인들이 그냥 놔둘 리없다. 고려 충렬왕 때 유학자 이승휴(李承休.1224~1300)가 제왕운기(帝王韻記)를 집필 했다는 곳이다. 제왕운기는 승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와 함께 우리나라 역사 기록에서 처음으로 단군신화를 기술한 책이다. 민족문화와 민족사의 독자성에 대한 자부심을 기록한 ‘제왕운기’의 한 대목을 읊어 본다. “처음에 어느 누가 나라를 열었던고, 석제의 손자 이름은 단군일세” 이승휴는 이곳에 은거하며 스스로 두타산거사(頭陀山居士)라 불렀다고 한다. 천은사는 신라 758년(경덕왕 17년) 인도에서 온 3명의 승려인 두타삼선(頭陀三仙)이 창건한 도량이다.

두타산에서 급경사를 내렸다가 완만한 산길을 걸으면 이내 청옥산(靑玉山.1402.7m)이다(07시20분).
두타산과 연결 되어 있는 해동삼봉(海東三峰)중의 하나로 ‘청옥이 발견되었다’ 해서 산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청옥은 금, 은, 수정, 적진주, 마노, 호박과 함께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의 일곱 가지 보석 중 하나다. 두타와 함께 이 부근에서 성했던 불교의 아주 깊은 인연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지명이다. 현재는 삼화사와 관음암, 청은사만 남아 있지만, 불교가 융성했던 시기에는 중대사, 상원사, 대승암, 성로암 등 십여 개의 사찰이 산속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동쪽으로 흐르는 계곡은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무릉계곡을 거쳐 진천으로 흘러들고, 서쪽을 흐르는 계곡은 골지천으로 유입된다. 무릉계곡(武陵溪谷)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계곡으로 호암소로부터 시작하여 약 4km 상류 용추폭포가 있는 곳까지를 말한다. 넓은 바위바닥과 바위사이를 흘러서 모인 넓은 연못이 볼거리며, 수백 명이 앉을 만한 무릉반석을 시작으로 삼화사, 학소대, 옥류동, 선녀탕을 지나 용추 폭포아래 위치한 쌍폭포는 수원(水原)이 마치 하늘로 착각할 정도로 높고 아름다우며, 용추폭포에서 내려오는 물과 박달계곡의 물이 이곳에서 만남은 마치 자연의 음양의 섭리와 순리를 나타내는 듯 하다.

청옥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가 상중하 3개의 항아리 모양의 깊은 바위 용소로 되어 있는 용추폭포에 이르기까지 숨막히게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다. 조선 4대 명필 중에 꼽히는 봉래 양사언은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大泉石 頭陀東天)’이라는 글씨를 남겼다. 신선이 놀던 무릉도원, 너른 암반과 샘이 솟는 바위, 번뇌조차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골짝’ 이란 뜻이다. 반석에 새겨진 양사언 글씨는 세월이 흐르면서 마모가 심해지자 1995년 이를 본뜬 석각을 금란정 옆에 따로 만들어 놓았다. 이밖에도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시가 1500여 평의 무릉반석에 새겨 있다. 무릉도원이라는 이름은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산수의 풍경이 중국 고사에 나오는 무릉도원과 같다하여 무릉계곡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199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 되었으며 2008년 명승 제37호로 지정 되었다.

한편 계곡 입구에 자리잡은 삼화사(三和寺)는 월정사의 말사로 , 642년(선덕여왕11)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절을 짓고 흑련대(黑蓮臺)라 하였다. 864년 범일 국사가 절을 다시 지어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던 것이 고려 태조 때 삼화사라 개칭하였다. 이때 ‘삼국을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 이라 하여 삼화사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1977년 이일대가 시멘트 공장의 채광지로 들어가자 중대사 옛터인 무릉계곡의 현 위치로 이전 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 약사전을 비롯하여, 문화재로 신라시대의 철불(鐵佛.보물 제1292호), 3층 석탑 및 대사들의 비와 부도가 있다. 두타와 청옥은 공통적으로 이름은 불교적이지만 산의 생김새는 매우 대조적이다. 두타산은 날렵하고, 청옥산은 완만하며 묵직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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