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읍성 복원은 고증에 따라 원형복원이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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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읍성 복원은 고증에 따라 원형복원이 이뤄져야”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10.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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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콘텐츠가 미래의 답이다-16
현재도 복원공사가 진행중인 경남 사천읍성 전경.
현재도 복원공사가 진행중인 경남 사천읍성 전경.

사천읍성은 사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의 중심지 역할 해
세종 24년(1442) 영의정 황희 정승이 주청해 돌로 성을 쌓기 시작
‘산성공원’지명을 ‘사천읍성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역사성 살려야
일본강점기 고을의 정체성을 말살키 위해 철저히 지역문화재 파괴


현재의 역사는 항상 우리의 머릿속을 맴돌다가 사라지듯 마음으로는 느끼지만 지난 과거사를 생각하며 되돌아보았을 때는 거기엔 분명 지리적, 환경적, 생태적인 문화가 항상 공존해 왔다.  그 문화를 향유하며 태생적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 온 것은 우리의 숙명이라면 숙명일 것이다. 그 숙명은 선대로부터 면면이 이어가는 순환의 역사를 간직해가고 있다. 고증과 사료, 문헌 등 그 역사성을 공인 받고도 ‘사천읍성’의 복원은 요원했던 것이다. 현재 지방에 산재돼 있는 읍성을 보면 보존이 양호한 읍성이 있는가 하면, 거의 훼손 돼 버린 읍성도 있다. 사천읍성은 보존상태와 복원미숙으로 매우 불량한 편이다. 그렇다고 계속 방치해 버린다면 사천읍성은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 위기에 있다. 더욱이 지금 살아 있는 시민들 중 허물어진 성의 일부 형태라도 기억하고 있는 시민이 있을 때, 또한 성에 대한 구전자료라도 얻을 수 있을 때 복원을 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에 주목할 일이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지역의 문화가 바뀌어 질 수 있다. 따라서 옛 문화유적을 보존하고 자자손손 계승해 가는 것이 살아있는 후손의 몫이기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 사천읍성 경상남도기념물 제144호로 지정
사천읍성은 1994년 9월 26일 경남도 지정기념물 144호로 지정됐다. 읍성은 선인리 580-2, 선인리 580-4, 정의리 212-1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화재 지정면적은 2만7943㎡이다. 과거 사천의 옛 지명이 사물(史勿), 사수(泗水), 동성(東城)등이었는데, 조선 태종 때부터 사천이라 했다. 사천읍성은 ‘경상도 속천지리지’에 “면적은 2만 8000여㎡이고 성 둘레는 910m이며, 성곽의 높이는 평지의 경우 4m, 높고 험한 지형은 3.5m로 적대가 15개소와 성문은 3곳, 성가퀴가 580개에 이른다. 성내 관아에는 동헌과 부경헌과 객관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사천읍성은 세종 24년(1442)에 영의정 황희 정승이 주청해 이곳에 돌로 성을 쌓기 시작해 3년 후인 1445년에 완성했다. 성의 둘레는 3015척, 치 2곳, 적대 15곳과 성문마다 옹성을 쌓았다. 이후 개축해 성의 둘레 5015척, 높이 15척을 쌓았고, 우물 4군데, 못 2군데가 있었다. 성문은 동문, 서문, 남문이 있었는데 재앙문, 숙금문, 주안문이라 했다. 성 안에는 동헌인 부경헌과 객관을 비롯해 제경루, 침오정 등 많은 공공건물들과 민가와 시장이 있었다. 이 읍성은 순조 때까지 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나 성벽과 시설물이 급격히 훼손돼 산이 있는 부분만 겨우 읍성 터로 남아 있게 됐다. 당시의 동문은 선인리, 서문은 정의리, 남문은 평화리에 위치했다. 사천읍성은 사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의 중심지였다. 읍성을 중심으로 사천현의 경계가 동쪽으로 23리, 서쪽으로 5리, 남쪽으로 25리, 북쪽으로 6리, 서울(한양)까지는 973리였다. 세종시대 인구는 370호 1817명이었다. 당시의 경제는 농업과 어업이 중심이어서 성안의 시장에 농수산물과 공산물, 인삼 등이 출하됐다.

사천읍성은 불행히도 무상한 세월 속에 성곽은 허물어져 그 흔적마저 찾아보기 어렵게 되자, 더 이상 살아있는 후손들이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시민들의 중지가 결합해 읍성복원을 숙원사업으로 선정하고, 지난 2004년 1월 14일 시정보고회에 건의해 예산편성과 동시에 발굴조사가 이뤄지게 됐다. 사천시는 지난 2004년 9월경 문화재 발굴지표조사를 (재)동아문화연구원에 용역을 줘 지표조사를 지난 2004년 9월경에 실시, 사천읍 선인리 580-2번지 일원 면적 12만 8165평을 조사해 2005년 1월경에 지표조사를 완료했다. 지표조사를 끝낸 당시 연구원들은 “이번에 조사한 사천읍성은 사천의 문화유적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사천읍성은 세종 때에 설치돼 읍치로 사용돼 오면서 근대까지 유지되다가 급격한 읍의 팽창과 더불어 서서히 해체됐고,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것은 사천읍성 체성 부분만 몇 군데 남아 있을 뿐 옹성, 치성, 문루, 적대 등은 거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고 밝혔다.

사천시는 또 지난 2006년 7월경에 동아문화연구원에 발굴조사 용역을 줘 같은 해 8월경에 발굴조사를 실시, 11월경에 읍성 동문지 발굴조사를 완료했다. 발굴조사 후 조사단은 “사천읍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읍성의 성격을 갖추고 있으며, 지표조사 결과 읍성의 형태와 규모, 역사적 성격 등을 알 수 있었다”며 “현재 사천읍성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된 읍성이 산성공원을 중심으로 좁게 지정돼 있는데 조사 결과를 근거로 체성과 해자로 추정되는 지역이 포함될 수 있게 현재보다 넓은 범위로 재 지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문제로 사료된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까지 훼손이 많이 진행돼 왔고 앞으로도 보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더 많은 훼손이 따를 것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지정범위가 조정돼야 남은 읍성이나마 잘 보존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문헌의 근거대로 원형복원 해야
사천읍성은 진주와 해안을 잇는 지역의 중심지며, 남해안을 통한 내륙진출의 중요한 거점이자 서부경남의 과거 군사적 요충지였다. 역사적 사료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사천해전과 읍성전투’ 등을 비롯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사천은 남해연안 산업발전의 축으로써 첨단산업, 공항도시, 물류유통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사천읍성의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머릿속에 훼자되고 있는 ‘산성공원’의 지명을 ‘사천읍성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역사성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읍성은 우리 선조들의 사랑과 애환이 담긴 문화적 유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읍성(邑城)은 그 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고을 백성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쌓은 성(城)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읍성은 행정, 문화, 예술의 전당이자 민중의 삶이 대대로 이어져 왔던 곳이다. 성(城)은 또한 건축물이기 이전에 우리의 선대들이 오랫동안 살았던 삶과 문화의 공간이었으며, 성에는 관청, 민가, 학교, 시장 등 우리 조상들의 혼이 살아 깃든 유서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역사성을 가진 문화재적 유산을 복원해야 하는 것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의무이자 필연인 것이다.

현재 시민들의 입에 훼자되고 있는 ‘산성공원’의 지명은 일본강점기 문화말살 정책으로 고을의 정체성을 말살키 위해 철저하고 계획적으로 지역의 문화재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사천읍성도 예외 없이 지대가 높은 곳은 공원을 조성한다는 미명으로 성(城)을 허물었고, 낮은 지대는 민가와 학교를 들어서게 해 ‘산성공원’이라는 지명으로 둔갑시켜 읍성에 배어있는 고을의 정체성을 감추고 고래(古來)부터 면면히 흐르고 있는 사천 주민들의 혼을 단절시켜 구심점과 정체성을 말살했던 것이다. 이제 그 구심점과 정체성을 찾아야하기 때문에 옛 지명인 ‘사천읍성’을 ‘사천읍성공원’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시민들의 주장이다.

변윤수 사천읍성 복원추진위원장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사천읍성은 사천의 영욕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증언대이며 자랑”이라며 “작금의 현실로 볼 때 역사성을 보존하고 있는 지방자치 단체들은 하나같이 그 지역의 역사적 사료와 고증 등에 근거해 발굴조사를 통한 성곽과 동헌 등을 완공 지역관광자원화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사천읍성을 사료와 같이 완전 복원은 힘들지 몰라도 동문과 서문, 일부 성곽만이라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역사적인 산 교육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창선대교와 삼천포대교, 백천사 등과  더불어 새로운 사천의 관광명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행정에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사천읍성이라는 지명도 찾았고 지표·발굴조사까지 모두 마쳤기 때문에 다음 대안으로는 현재까지 발굴조사 추정지역을 근거로 문헌에 있는 대로 원형으로 복원하는 일만 남았다는  게 시민들의 주장이다. 사천읍성은 현재도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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