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개마을 고샅길 담장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죽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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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개마을 고샅길 담장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죽담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한지윤·이정아 기자
  • 승인 2019.10.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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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돌담길의 재발견-19
한개마을 고택의 돌담은 토석담으로 황토와 자연석을 번갈아 정결하게 쌓은것이 특징이다.
한개마을 고택의 돌담은 토석담으로 황토와 자연석을 번갈아 정결하게 쌓은것이 특징이다.

마을 입구서 시작하는 돌담길, 네 갈래 모두 북쪽의 한주종택 향해
경상북도문화재지정 하회댁 등 한옥 빗장 채워지지 않은 열린 공간
한개마을 돌담, 막으면서 보여주고 나누면서 이어주는 이중적 역할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의 한개마을(대포리;大浦里)은 성산이씨(星山李氏)가 570여 년 동안 꾸준히 대를 이어 살아온 집성촌의 한옥마을이다. 지난 2007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이 곳은 조선 세종 때 벼슬을 지냈던 이우가 처음 내려와 터를 잡으며 시작된 마을이다. 270여 년 전에 지어진 하회댁을 비롯해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한개마을의 돌담길은 벼슬을 마다하고 은거한 선비처럼 강직하고 하회마을에서 갓 시집 온 새댁처럼 다소곳하다. 예전에 한개나루터가 있던 마을 주차장에 발을 디디면 추억의 돌담길이 속살을 드러낸다. 이곳의 돌담은 대부분 황토와 돌을 번갈아 쌓아 만든 토석담이 주를 이룬다. 세월의 훈장인 양 석화와 이끼가 핀 돌담 아래에는 연분홍색 연탄재가 차곡차곡 쌓여있어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한개마을은 풍수지리에서 흔히 말하는 배산임수, 명당의 기운을 지닌 마을이다. 마을의 뒤에는 영취산(331.7m)에서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좌청룡 우백호의 기운을 자랑하고 마을 앞에는 이천과 백천이 흐르고 있어 전국 최고의 길지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한개마을이라는 이름도 ‘이천과 백천이 만들어내는 물길에 커다란 나루터가 있어 크다’는 뜻의 옛 말인 ‘한’과 나루라는 뜻을 지닌 ‘개’가 합쳐진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니 당시에도 마을의 입지가 특출 난 구석이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한개마을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입지의 우수성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곳에 자리를 틀고 꿋꿋이 서 있는 고택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한층 흥미롭다. 각 지역의 고을에서 시집을 온 새색시들의 고향을 따라 지어진 교리댁, 하회댁, 월곡댁, 안동댁, 도동댁을 비롯해 민가와 반가의 중간 형식을 보여주는 북비고택처럼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맺혀있기 때문이다.

■ 올곧은 지조와 선비정신 그리고 돌담
한개마을의 돌담은 높지도 낮지도 않아서 어른이 발돋움하면 담 너머 풍경이 정겹게 다가온다. 허리가 구부정한 진사댁 종부가 텃밭에서 채소를 뽑고 조선시대의 선비를 연상시키는 교리댁 노 주인이 사랑채 대청마루에서 글을 읽는 모습은 한개마을 돌담 너머로 볼 수 있는 잊혀졌던 옛날의 풍경 그대로다. 마을 입구에서 시작하는 돌담길은 네 갈래로 나뉘지만 모두가 북쪽의 한주종택을 향한다. 사람들이 사는 정과 삶의 여유가 듬뿍 묻어나는 곡선형 돌담길을 거슬러 오르면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 ‘하회댁’이란 택호가 붙은 전통 한옥 등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한옥인 하회댁은 현재의 종부가 안동 하회마을에서 시집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개마을의 돌담은 철따라 시간 따라 표정을 바꾼다고 한다. 여름을 재촉하는 소낙비에 젖은 돌담은 학동의 총기 서린 눈동자처럼 반들거리고 거무죽죽하던 이끼는 파랗게 되살아나 돌담에 생명력을 더한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또한 하회댁을 비롯해 경상북도문화재로 지정된 7채의 전통 한옥은 대부분 빗장이 채워지지 않은 열린 공간이다. 전통 한옥은 안길에 면한 대문채를 들어서면 아담한 사랑채와 정원이 나타나고 돌담과 연결된 중문 안에는 안채가 숨어있는 구조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은 나그네가 조용하게 사랑채와 정원을 살펴보는 것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돌담은 바깥으로부터의 시선과 바람을 차단시켜 아늑한 생활공간을 만들어준다. 반면에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은 외부와 건물을 연결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이렇듯 한개마을의 돌담은 막으면서 보여주고 나누면서 이어주는 이중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개마을은 마을 뒷산인 영취산에 포근하게 안긴 경사지를 따라 조성된 마을이다. 따라서 돌담은 앞집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면서 앞집의 기와지붕 너머로 마을 전면에 위치한 안산의 경치를 공유한다. 일본의 정원처럼 인공적으로 자연을 축소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공간배치를 통해 자연의 풍경을 그대로 안방으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의 기법을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교리댁 사랑채에서 맞는 차경은 극적이다. 기후가 맞지 않아 탱자나무로 변했다는 수령 150여 년의 제주도산 감귤나무 한 그루와 말을 탈 때 딛고 일어서는 상마석이 보존된 마당은 그리 넓지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사랑채의 대청마루에 앉으면 돌담 너머로 안산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정경은 그만이다.

한개마을에서 돌담이 가장 멋스런 집은 영화 ‘춘향전’의 촬영장소로도 이용된 한주종택이다.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육중한 대문에 붙어있는 ‘반공’과 ‘방첩’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조그만 패찰조차 이곳에선 엄연히 살아있는 역사이며 문화다. 낙동강 전선의 후방에 위치해 6·25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꽤 많은 피해를 본 마을의 역사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사도세자의 뒤주에 돌을 얹으라는 어명을 거역하고 낙향한 북비댁의 돈재 이석문 등 수많은 과거 급제자를 내고도 벼슬을 헌신짝처럼 버린 선비들이 살다 간 마을이 바로 한개마을이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올곧은 지조의 삶은 서슬 퍼렀던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도 기어코 돌담을 헐어내지 않았던 한개마을 사람들의 선비기질이 돋보이는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돌담과 한옥 그 자체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한개마을의 한옥과 고택, 한옥과 초가집 사이로 이어지는 돌담길엔 옛 전통을 고수하는 올곧은 지조의 옛 선비정신이 오롯이 배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한개마을의 대감댁으로 불리는 응와종택은 ‘응와세가’란 편액과 함께 한옥과 조화를 이루는 토석담으로 잘 보존돼 문화재로써의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한개마을의 대감댁으로 불리는 응와종택은 ‘응와세가’란 편액과 함께 한옥과 조화를 이루는 토석담으로 잘 보존돼 문화재로써의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한개마을의 대감댁으로 불리는 응와종택은 ‘응와세가’란 편액과 함께 한옥과 조화를 이루는 토석담으로 잘 보존돼 문화재로써의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한개마을의 대감댁으로 불리는 응와종택은 ‘응와세가’란 편액과 함께 한옥과 조화를 이루는 토석담으로 잘 보존돼 문화재로써의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 구불구불 펼쳐진 3.3km의 돌담길
한개마을의 돌담길은 대부분 토석담장이며 극히 일부분이 돌담장이다. 토석담은 황토와 자연석을 번갈아 얹어 정결하게 쌓았으며, 비탈을 따라 구불구불 펼쳐진 담장의 전체 길이가 3.3km에 달한다고 한다. 바깥쪽 담은 마을의 가옥이 대부분 경사지에 지어져 산지와 면한 쪽과 가옥의 옆쪽 담은 높고, 가옥의 앞뒤 쪽 담은 낮다. 안쪽 담은 건물의 처마보다 낮다. 이 마을의 담장은 전통 한옥과 조화를 이루면서 잘 보존돼 있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듯 한개마을에는 70여 채의 한옥과 초가 등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마을이다. 대부분 현재까지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다. 이곳에는 북비고택과 교리댁, 하회댁 등 보존상태가 특히 뛰어난 집들이 꽤 많다. 이 점을 인정받아서 한개마을은 지난 2007년 12월 4일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개마을의 흙담길과 돌담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진흙과 돌을 혼합해 쌓은 옛 담장이 그대로 보존돼 남아있어서다. 그래서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을 따라 걷는 느낌이 좋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여유롭다. 마치 마음의 고향이라도 찾아가는 길 같은 푸근함이다. 이처럼 한개마을에는 마을의 역사와 함께 내력을 이어오는 고택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 고택보다도 더욱 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구불구불 이어지는 고샅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 고샅길의 담장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죽담이다. 황토흙 사이사이에 크기, 색깔, 모양이 제각각인 자연석을 군데군데 박아놓았다. 그래서 언뜻 무질서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현대적 감각으로는 감히 흉내조차 어려울 만큼 멋스럽고 자연미가 넘치며 지혜가 담겼다. 흙담에서 돌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무늬를 만들어 내는 역할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무릇 진흙과 모양이 변하지 않는 돌의 조화는 자연스런 우리네 삶의 미를 그대로 드러낸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돌담을 끼고 이리저리 골목길을 걷노라면, 가을걷이 한창일 무렵, 집과 집을 잇는 흙담길 골목에도 생기가 돌고 진정 노고의 결실을 수확하는 사람냄새가 두런두런 나고 그 체취를 맡을 수 있기 때문에 여유롭고 풍요로운 이유다.

그래서인지 한개마을에는 특이한 담장이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담장은 크게 외곽담과 내곽담으로 나눌 수 있다. 외곽담은 마을의 가옥이 대체로 경사지에 위치한 관계로 산지에 접한 담과 주거건물 쪽의 측면담은 높은 반면 앞뒤 주택의 영역을 구획하는 담은 낮게 쌓은 것이 특징이다. 내곽담은 주거건물의 처마보다 낮아 담 양측의 영역을 시각적으로 차단하거나 또는 연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마을 담장의 주류인 토석담은 전통 한옥들과 잘 어우러져 자연스런 마을의 동선을 유도하면서 아름다운 마을 속에 잘 동화돼 있다. 옛날을 살던 ‘우리’속에 속한 ‘나’라는 개개인들은 흙담이 보여주는 수용성(受用性)과 관용(寬容)을 그대로 수용해 ‘우리’라는 커뮤니티에 잘 스며들었던 삶을 살았다. 흙담이 그 당시의 사람들을 닮았던지 사람이 흙담을 닮았던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이런 것은 세월이 흐른 만큼 그렇게 오래 전의 것이 아니다. 또한 그 많던 흙담과 돌담을 흔히 볼 수 없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다만 요즘 한개마을 곳곳에는 고택과 흙담, 돌담장이 구석구석 무너져 정비 중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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