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최대 원삼국시대 ‘석택리 환호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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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최대 원삼국시대 ‘석택리 환호유적’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0.05.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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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관우의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9〉
홍북 석택리 환호유적지.

현재 충남도청내포신도시를 안고 있는 홍북읍 석택리는 천년홍주(千年洪州) 역사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삼한시대(三韓時代) 월산에 ‘월지국(목지국)’이 있었다면 마한의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의 수도는 석택리 일원이었다’고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한의 건국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와 있지 않으나, 조선시대까지는 기원전 2세기 초에 ‘기자조선’의 준왕(準王)이 위만(衛滿)을 피해 바닷길로 달아나 ‘월지국(月支國)’에 세운 나라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목지국’이라고도 한다. 목지국의 우두머리는 마한의 우두머리이며, 또한 진왕으로 추대돼 삼한(三韓)의 최고 우두머리였다. 석택리에서 발굴된 유적의 특징으로 볼 때 원주민들은 기원전 3세기 이전부터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반도 서남부를 중심으로 정치집단을 이뤘고, 목지국을 중심으로 한 소국연맹의 형태를 유지했다고 여겨진다. 

발굴 당시 환호유적지 현장 모습.

백제가 체제를 정비하고 고대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고이왕(古爾王) 시기부터 마한의 중심 세력이 목지국에서 백제로 이동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후에도 마한의 잔존 세력은 해안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근초고왕 때 마한이 완전히 멸망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주(洪州)도 삼한시대(三韓時代)에는 마한의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이었으며 백제시대(百濟時代)에는 ‘고막부리현’으로 불렸고,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에는 ‘지심주(支尋州)’라 해 9개현을 관할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고려시대(高麗時代) 927년(태조 10)에 ‘운주(運州)’라는 기록과 함께 ‘홍주(洪州)’라 고친 기록이 나온다. 일부 사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월산(月山) 또는 백월산(白月山)’에 마한의 최대강국인 ‘월지국’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따라서 홍주의 진산인 월산에 ‘월지국(목지국)’이 있었다면 석택리에는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이 있었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현재 석택리에는 충남도청내포신도시 주 진입도로인 ‘충남대로’가 가로 지르고 있다. 이곳 충남도청내포신도시 주 진입도로의 홍북읍 석택리 구간에는 ‘홍북터널’이 있다. 홍북터널 구간인 석택리 일원에서 도로건설공사를 위한 문화재발굴과정에서 원삼국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다량 발굴되면서 도로공사를 터널방식으로 바꾸면서 ‘홍북터널’이 생겼다. 홍북터널 위를 포함한 주변지역이 역사적,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문화재보존지역이 된 까닭이다. 

특히 이곳에서 발굴된 유적과 유물이 동아시아에서는 최대 규모라고 한다. 또 환호취락 유적 주변에서 청동기시대~백제시대(시대 미상 포함)에 이르는 주거지와 묘지, 발형토기 등 다량의 유구(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가 추가로 발굴됐기 때문에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다. 

특히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장방형의 평면 형태에 무시설식(특별한 시설이나 구덩 시설 없이 바닥에 바로 사용한 형태)의 노지를 조성한 형태이며, 내부에서 발형토기(편평한 바닥을 가지고 있고 목이 없으며, 바닥의 지름보다 아가리의 지름이 큰 토기를 말함. ‘바리모양토기’라고도 함)가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들은 “홍북 석택리 주변의 환호유적에 대해 마한 54개 소국 중 석택리 일대는 목지국과 감계비리국의 수도였거나 집단주거지였음이 분명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청동기시대부터 물과 인접한 구릉지에 거주를 시작하면서 원삼국시대까지 집단주거지를 이룬 곳”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따라서 홍북 석택리 환호유적 주변 일대에 매장문화재가 널리 분포돼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에 주변을 포함한 사적지공원 조성과 함께 박물관 등을 설립해 문화재 및 발굴 유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이유다. 

충청남도와 홍성군은 문화재청 심의를 통해 국가 사적지 지정과 환호유적 일대에 대한 확대 추가발굴을 통해 사적지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이를 통해 충남도청이 이전한 내포신도시와 홍성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지역을 상징할 수 있는 브랜드화 하는 방안 등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란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 철기시대 이후에 등장하는 시기로 고구려·백제·신라 형성기인 300년까지의 약 3세기를 말한다. 이 시기는 선사시대에서 진정한 의미의 역사시대로 전환돼가는 과도기적 시기로서 역사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며, 문화사적으로도 청동기의 실효성이 소멸되고 철기 생산과 보급이 확대되면서 벼농사가 발전하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다. 

따라서 시대적으로 이러한 가치가 있는 유적과 유물이 홍북에서 발굴되면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충남도청 주 진입도로 공사를 위한 문화재발굴과정에서 유적과 유물이 다량 발굴되면서 동아시아에서는 최대 규모의 원삼국시대 유물유적지라고 전문가들이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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