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떠난 광주, 낡은 도심골목 ‘젊은 문화인들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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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떠난 광주, 낡은 도심골목 ‘젊은 문화인들 모이다’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0.10.2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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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역사도시, 홍성도심재생 젊은 문화도시가 답이다 〈9〉
5·18민주화운동 당시 총 245발의 헬기사격 탄흔이 발견된 광주 금남로 245의 ‘전일빌딩245’.
5·18민주화운동 당시 총 245발의 헬기사격 탄흔이 발견된 광주 금남로 245의 ‘전일빌딩245’.

전일빌딩245, 빌딩에서 발견된 탄흔의 개수와 빌딩의 주소 의미
광주 동구, 광주·호남의 경제·행정중심지, 도심공동화 현상나타나
낡은 동명동의 공·폐가재생 동네정비, 젊은 예술가들 모이기 시작
발산마을, 광주 대표적 달동네 도시재생사업 통해 명소로 탈바꿈

 

광주 금남로의 전일빌딩에는 삶과 역사가 깃들어 있다. 이 빌딩에는 신문사, 방송국, 다방, 도서관, 미술관 등 광주의 세월과 사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철거 위기를 겪은 전일빌딩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흔적이 발견되면서 4년 남짓 리모델링을 거쳐 2020년 5월, ‘전일빌딩245’로 다시 태어났다. ‘245’는 빌딩에서 발견된 탄흔의 개수와 빌딩의 주소(동구 금남로 245)를 뜻하는 이름이다. 전일빌딩245 로고 정중앙에 있는 원도 탄흔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옛 전남도청 건너편에 자리한 전일빌딩245는 5·18민주화운동 현장의 중심에서 광주의 세월을 보듬고 있다. 전일빌딩이 들어선 금남로1가 1번지는 일제강점기에는 인쇄소가 있던 곳이며, 이후 호남신문과 광주일보 등 호남지역 언론사 5개가 태동한 공간이기도 하다. 1968년 건립한 전일빌딩은 신문사 외에도 방송국, 미술관, 도서관, 다방 등이 들어서며 광주시민과 함께 추억을 공유했던 곳이다.
 

■‘전일빌딩245’ 과거 보듬고 미래를 지향해
광주의 구도심이 쇠퇴하며 지난 2011년 경매로 나온 전일빌딩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부설주차장으로 활용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2016~2017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탄흔 245개를 발견하며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비롯해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는 현장으로 부각한다. 4년여 남짓 진행한 리모델링은 단순한 건물 복원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의미가 있다. 건물 안팎에는 당시 총탄 흔적을 선명하게 표시했다. 지난해 12월 전두환 사자 명예훼손 재판 시 탄흔 25개를 추가로 발견했으며, 헬기 사격 관련 사항은 현재 진상 규명 중이다. 

총 10층인 ‘전일빌딩245’는 과거를 보듬고 현재와 미래를 지향하는 공간으로 채워진다. 1층 ‘전일아카이브’에는 전일빌딩의 역사를 담은 사진과 모형이 전시되며, AR 영상으로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다. 1층 안팎 천장을 잇는 ‘캔버스245’는 다시 태어나는 광주를 테마로 한 미디어아트 영상이다. 전일빌딩245 탐방은 위층부터 역순으로 살펴보는 동선이 짜임새 있다. 전망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정원 ‘전일마루’에 오르면 무등산과 금남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옥상정원에는 광주를 상징하는 타이포 조형물, 버스킹이 가능한 간이 무대가 있다. 전일마루는 새로운 야경 감상 스폿이기도 하다. 10층과 9층은 빌딩의 대표 공간 ‘19800518’이다. 10층 입구에 들어서면 245개 탄흔을 형상화한 작품 ‘검은 하늘 그날’과 ‘민주의 탄환’이 분위기를 이끈다. 이어지는 헬기 탄흔 원형 보존 공간에서는 기둥의 총탄 자국과 증거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헬기 사격 멀티 영상은 공중에 매달린 모형 헬기와 금남로 일대의 축소 모형을 배경으로 재현된다. VR 가상 체험 존, 헬기 사격의 진실과 거짓을 소개하는 코너도 있다. 이밖에 남겨진 문장, 왜곡의 역사, 가짜 뉴스, 진실의 역사 등 5·18민주화운동을 되새기는 공간이 이어진다. 19800518은 하루 5회(11:00, 13:00, 14:30, 16:00, 17:30) 해설을 진행하며, 5월 영령을 추모하는 에필로그 영상 ‘뼈와 꽃’을 관람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9층 기획전시실에서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언론의 실상을 알리는 ‘묻고, 묻는다’가 지난 4일까지 전시됐다. 8층은 과거 전일방송(VOC)이 있던 자리로 ‘카페 245’와 ‘VOC라운지’ 등 휴식 공간이 마련됐다. 라운지는 굴뚝정원과 외부 전망 계단을 통해 옥상정원 전일마루로 연결된다. 리모델링 과정에 가장 공을 들인 이 공간은 무등산을 배경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5·18민주광장 등이 보인다. 5~7층 광주콘텐츠허브에는 문화콘텐츠 기업이 입주해,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다. 2~4층은 광주의 현주소를 만나는 무대다. 2층 남도관광센터에서는 광주·전남의 여행지와 축제, 음식 등을 디지털 테이블과 VR로 체험한다. 3층에는 전일도서관과 전일미술관이 있던 추억을 되살려 동영상 관람이 가능한 디지털정보도서관, 자유 전시공간 시민갤러리를 오픈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YWCA 교전과 언론 탄압을 전시한 ‘5·18과 언론’ 코너도 있다. 4층에는 유튜브 영상 제작하기를 비롯해 생활 문화를 배우는 전일생활문화센터가 있다. 

지하에서 마지막 추억의 공간과 조우한다. 기자와 시민의 사랑방 역할을 한 전일다방을 뉴트로로 재해석한 ‘245살롱’이다. 소파에 앉아 1980년대 광주의 골목 사진을 감상하며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전일빌딩245 이용 시간은 오전 9시~오후 7시(19800518은 오전 10시 오픈, 8층 라운지와 옥상은 오후 10시까지), 1월 1일과 명절 당일은 쉰다. 
 

■ 예술과 문화의 자양분으로 지켜낸 청년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광주광역시 동구는 광주는 물론 호남의 경제·행정 중심지였다. 5·18민주화운동의 성지인 전남도청과 광주광역시청이 있었고, 광주역과 광주버스터미널 등 큰 저택들이 모인 부촌으로도 유명했다. 그러나 광주역을 시작으로 광주버스터미널, 광주시청, 전남도청이 이전하면서 사람들도 동구를 빠져나갔고 각종 기관들도 떠나는 도심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1970년대만 해도 30만 명이 넘던 동구 인구가 10만 명 아래도 떨어지기 직전으로 줄어들었다. 동구청 자료에 따르면 고령인 65세 이상 인구 비율도 가장 높다. 원도심 지역의 건물 71%가 지은 지 30년이 넘은 낡은 건축물이고, 공·폐가 비율도 4%가 넘는다. 3.3㎡당 400만 원이 넘던 땅값도 이젠 200만 원 수준으로 반토막이 났다고 전해진다.

저물어가던 동네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폐철로를 따라 조성한 푸른 길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옛 경전선은 도심을 통해 차량 정체와 인명사고의 주범으로 꼽혔다. 2000년 경전선 도심 구간을 없앤 뒤 광주시는 282억 원의 자금과 12년의 준공 시간을 들여 이 폐선로를 따라 7.9km 길이의 푸른 길공원을 만들었다. 2002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으니 2014년까지 총 12년이 걸린 셈이다. 동구 동명동 옆을 지나는 광주역과 조선대 정문 구간은 2010년에 준공됐다. 

푸른 길을 따라 오가던 광주사람들은 공동화 현상으로 사람이 빠져나가는 낡은 집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폐선이 숲길로 바뀌면서 기찻길을 따라 지어졌던 낡은 집들도 변하기 시작했다.그 주인공으로 대인예술시장 총감독을 지낸 박성현 ‘신시와’ 대표는 2012년 푸른 길 옆 낡은 한옥을 고친 뒤 갤러리 카페 ‘신시와(瓦)’를 열었다. 박 대표는 “철길이 있을 때부터 있던 집들이라 다들 문이 철길 반대 방향으로 나 있다”며 “집을 사들인 뒤 푸른 길 쪽으로 문을 내는 등 리모델링을 거쳐 카페로 개점했다”고 말했다. 

특히 전남도청 자리에 정부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지으면서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광주시에서도 2013년 낡은 동명동 공·폐가를 사들여 길을 내고 주차장이나 텃밭, 주민들이나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드는 ‘공·폐가 매입 정비 사업’에 들어갔다. 동네가 정비되고 문화인들도 모여들면서 동네 주민도 마을 가꾸기에 나섰다. 골목길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2013년에 마련된 주민커뮤니티센터에는 도서관을 꾸미기도 했다. 지역 주민과 작가, 예술가들이 모여 생활에 필요한 예술품을 직접 만들고 배우는 공방 프로그램을 열기도 했다. 동구 일대를 예술과 문화라는 자양분으로 지켜낸 결과 ‘광주의 인사동’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광주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전남도청이 있던 자리에 총 사업비 8000억 원을 들인 광주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문을 열면서 아시아문화전당과 맞닿아 있는 동명동 일대도 주목을 받고 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총면적 16만 1237㎡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13만 7000㎡)이나 예술의전당(12만 8000㎡)보다 큰 국내 최대 규모의 문화시설이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광주 동구는 지난 2014년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도시재생 선도지역에 선정됐다. 정부 지원을 받아 낙후한 도심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2017년까지 총 200억 원의 국비를 지원받았다. 지자체와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 일궈낸 도시재생사업으로 도시가 되살아나면서 입주 상인들 사이에서는 임대료가 상승해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날 것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하는 형편이 됐다고 하소연한다. 도시재생으로 지역상권이 살아나면서 혜택을 봐야 할 주민들이 쫓겨나는 일이 없도록 오히려 정부기관과 지자체의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광주 청춘발산마을, 주민과 청년이 공존하는 마을
 

2014년 마을 미술프로젝트 사업과 2015~2018년 새뜰마을사업으로 활기를 되찾은 ‘청춘발산마을’.
2014년 마을 미술프로젝트 사업과 2015~2018년 새뜰마을사업으로 활기를 되찾은 ‘청춘발산마을’.

발산마을은 광주의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하나였다. 비탈진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 슬레이트 지붕과 초가지붕, 좁디좁은 골목, 띄엄띄엄 눈에 띄는 밭 등 손에 돈 몇 푼이라도 쥐고 있다면 절대로 찾아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이 땅에는 가진 것 없고,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6·25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형성됐고, 1970년대에는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청춘들로 인해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왜, 수많은 청춘들이 이곳 발산마을로 모여들었을까. 마을 앞에 전남방직(현 전방) 등 방직공장이 있어서였다. 방직산업은 당시 유망 직종이었다. 가진 것 없으니 싼값에 셋방을 얻어야 했고, 그러자니 자연스레 언덕 위로 올라갔다. 힘들고 배고파도 크게 창피하지 않았다. 다들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따뜻함은 있었다. 그들은 인정을 베푸는 게 사람 사는 재미라는 걸 알았기에 말이다. 여공들로 북적이던 발산마을은 서서히 쇠락해 갔다. 방직산업이 쇠퇴하면서 그들의 일자리가 사라진 탓이다. 사람들은 하나둘 정든 동네를 떠났다. 청춘이 떠나간 마을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빈집은 늘어가고 동네는 황폐화됐다. 

광주의 도시화·산업화 과정을 오롯이 품고 있는 공간은 그렇게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야박하지 않았다. 발산마을은 지난 2014년 마을미술프로젝트 사업을 시작으로 2015~2018년 도시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새뜰마을사업)으로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었다. 현대차그룹의 민관 협력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된 것도 행운이었다. 청년과 예술가들이 들어와 변화하기 시작한 발산마을은 광주시와 광주 서구청, 사회적기업 ‘공공프리즘’이 협업해 청춘발산마을로 다시 태어나면서 활기를 찾아갔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5년부터 광주 발산마을에서 광주시, 광주 서구청,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사회적기업 공공미술프리즘,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협업해 국내 최대 규모의 민관 협력 도시재생사업을 벌였다. 도시재생사업이란 마을의 기존 모습을 유지하면서 낙후된 도시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청춘발산마을은 사업 전 2232가구 가운데 1인 가구가 740가구에 달하고 폐·공가가 28채, 40%의 주민이 취약계층인 낙후지역이었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광주의 대표 명소이자 살기 좋은 마을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은 디자인, 사람, 문화 등 3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마을을 새로 단장했다. 마을 전체를 도색하고 마을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굴해 주민들과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벌였다. 1970년대 발산마을 여공들의 꿈과 희망을 현 세대의 꿈으로 재해석한 마을 텍스트와 폐·공가 정리 등으로 마을의 풍경을 바꿨던 것이다.

사람 측면에서는 마을 주민의 경제력 개선을 위해 마을 텃밭 농작물을 판매하고 주민 사진가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광주 서구청은 폐·공가 매입과 연계해 청년기업 입주 지원사업 등으로 다양한 업종의 청년들이 마을에 입주할 수 있도록 했다. 문화 차원에서는 청춘빌리지를 개설해 마을 주민들과 창업한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을 마련해 주민·청년 협업공동체를 위해 반상회를 조직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청춘발산마을은 포털 사이트와 SNS 등에 광주 가볼 만한 곳, 사진 찍기 좋은 마을, 주민과 청년이 공존하는 마을로 유명해졌다.

월평균 방문객은 사업 시작 전보다 40배 많은 6000여명으로 늘었고, 마을의 주택 공실률은 사업 전보다 36%나 감소했다. 식당·카페·미술관·예술작업공간 등 다양한 업종의 청년기업 12곳이 입주했다. 과거의 발산마을은 세상 속에서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다. 삶의 형태는 달라도 각각의 청춘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마음을 기대어 청춘발산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기에 과거의 청춘과 현재의 청춘이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하나가 돼 서로를 가슴에 담는다. 청춘이 더불어 여는 세상은 언제 어디서 만나도 빛나는 아침의 햇살이다. 과거의 모습 위에 현재의 것을 더해 발전하는 청춘발산마을에서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닌 더 큰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재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가 있듯, 과거의 삶도 살아내야 했던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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