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탄광촌, 검은 땅의 흔적을 문화예술로 일으키다
상태바
옛 탄광촌, 검은 땅의 흔적을 문화예술로 일으키다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0.11.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년역사도시, 홍성도심재생 젊은 문화도시가 답이다 〈10〉
2001년 10월에 폐광된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를 재생한 ‘삼탄아트마인(대한민국 문화예술 광산 1호)’전경.
2001년 10월에 폐광된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를 재생한 ‘삼탄아트마인(대한민국 문화예술 광산 1호)’전경.

 정선의 사북·고한읍 문화예술과 감동이 있는 문화예술마을로 변신
‘고한 18번가’ 골목길, ‘삼탄아트마인’ 문화예술광산 1호로 재탄생
 1964~2001년까지 39년간 운영했던 정암광업소의 폐광시설을 재생
 탄광촌의 낡은 집과 상가를 새로 단장하고 마당과 골목길 변화시켜

 

한 지역에 한 가지 브랜드만 성공해도 관광지로 주목받는 시대에 보통 강원도 ‘정선군’ 하면 정선아리랑, 정선 오일장, 정선레일바이크, 민둥산, 카지노, 곤드레 등 여러 가지 이미지를 떠올리는 지역이다. 옛 탄광촌이자 아리랑의 고장으로 알려진 강원도 정선의 사북·고한읍이 문화예술과 감동이 있는 문화예술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고한주민들의 일상이 녹아 있던 시골장터는 세련되고 현대화된 매장들이 속속 들어서 신구 조화를 이뤄내고 있고, 다양한 체험거리와 먹을거리는 탄광촌의 이미지와 어울려 색다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곳은 탄광촌 숙사가 즐비했던 ‘고한 18번가’ 골목길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또 2001년 10월에 폐광된 옛 삼척탄좌의 줄임말인 ‘삼탄아트마인’은 대한민국 문화예술광산 1호로 ‘예술광산’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삼탄아트마인은 광부들의 흔적도, 공간도 훼손시키지 않은 채 잊혀가던 그들의 이야기를 캐내어 문화예술 공간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주목된다.
 

내부 전시실 모습.
내부 전시실 모습.

■ 삼탄아트마인, 대한민국 문화예술광산 1호
삼탄아트마인(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로 1455-44)은 지난 1964년부터 2001년까지 39년간 운영했던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의 폐광시설을 재생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한 곳이다. 삼탄아트마인은 ‘삼척탄좌’를 줄인 ‘삼탄(Samtan)’과 예술의 아트(art), 광산·탄광을 의미하는 마인(mine)을 합성해 ‘예술을 캐는 곳’이라는 의미로 재탄생한 곳이다. 멀리서 보면 문화예술 공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장처럼 느껴진다. 가까이 갈수록 거대한 철탑이 과거 탄광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정선탄정은 덩어리로 된 석탄인 괴탄(Lump coal, 塊炭)을 일컫는 말로 열량은 6300~6500Kcal/kg 정도로 분탄보다 높다. 규격에 따라 소괴(15~40㎜), 중괴(40~65㎜), 대괴(65㎜ 이상)로 분류된다. 한국의 석탄은 무연탄으로 주로 고생계 평안계 지층에서 만들어지는데, 정선탄전도 여기에 속한다.

삼척탄좌의 폐광시설을 문화예술단지로 되살린 곳인 이곳은 당시, 광원들이 이용했던 샤워실, 세화장은 물론 갱도 철로와 운전실, 수직갱 엘리베이터, 작업공간이었던 수평갱을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해, 광원들의 고단했던 삶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공간마다 탄광역사와 광원이야기를 문화예술 콘텐츠로 승화시킨 작품을 함께 만나 볼 수 있다. 삼탄아트마인이라는 옛 탄광에 예술 혼을 불어넣은 것은 고(故) 김민석 대표였다. 김 때표가 컬렉션한 세계 각지 희귀 미술품과 가구 등 소장품이 모여 있는 수장고와 현대미술관을 개방하고 있다. 또한, 예술가 레지던시가 있어 입주 작가들이예술체험관을 운영하며, 방문객에게 색다른 예술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강원도 정선의 함백산 자락에 있는 정암광업소는 1964년부터 운영되던 탄광이었다. 3000여명이 넘는 광부가 석탄을 캐던 이 곳은 2001년 10월 폐광되기 전까지 정선과 태백 등 주변 지역을 먹여 살린 삶의 터전이었다. 해발 800m가 넘는 곳에 있는 정암광업소는 2500여개의 갱도에서 연간 수십만 톤의 석탄을 생산하던 국내 최대 탄광이었다. 탄광을 찾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탄광이 문을 닫자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정암광업소 뿐 아니라 태백과 정선지역의 폐광들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결국 정부가 1995년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구제에 나섰다. 강원도 태백과 삼척, 정선, 영월, 경북 문경 등이 1996년 폐광지역 진흥지구로 정해졌다. 그중에서 삼탄아트마인은 폐광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훌륭하게 재생시킨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07년부터 5년여 기간의 준비를 거쳐 2013년 5월 개장했다. 국비와 군비 등 110억 원이 투입된 사업으로 총면적 23만㎡의 탄광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시키는 사업이었다.

넓은 부지에는 폐광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녹슨 시설과 깨진 창문들, 아직도 날리는 검은 석탄 가루, 석탄을 실어 나르던 기차 레일, 변질한 종이에 적힌 회의록과 월급명세서, 여전히 털어내지 못한 석탄 가루가 묻어있는 산소마스크와 헬멧, 작업복이 고됐던 광부들의 흔적이 모두 남아있다. 탄광이 있던 자리는 이제 박물관, 갤러리, 체험관, 카페, 레스토랑, 레지던스의 공간이 대신하고 있다. 갱도로 향하는 통로에 자리 잡은 레일바이 뮤지엄에는 석탄을 실었던 탄차와 인부를 나르던 인차, 레일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과거 탄광의 흔적과 현대 미술, 설치 미술, 각종 예술 수집품들이 만나 산업의 흔적과 예술문화의 아름다움이 섞인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 국내에서 가장 작은 초미니 마을호텔
삼탄아트마인에서 만나는 벽화 속 광부들의 뒷모습처럼 그들의 험난했던 인생이야기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검은 흙 위에 피어나는 붉은 열정’이라는 문장만으로도 삼척탄좌에 대한 절반의 설명은 됐을 것이다. 죽음이 빈번했던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무사히’란 기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을 극한 작업, 어떠한 문장으로도 광부들이 일분일초를 다투던 숨 막히는 상황과 심정을 표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광부들, 그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은 ‘아빠! 오늘도 무사히’란 말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랬던 옛 탄광촌으로 유명했던 정선 고한의 발전이 눈부시다. 삼탄아트마인과 함께 탄광촌 숙사가 즐비했던 ‘고한 18번가’ 골목길에도 변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고한읍민을 비롯해 정선군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골목재생사업에 팔을 걷어붙인 결과다. 탄광촌의 낡은 집과 상가를 새로 단장하고 마당과 골목길은 꽃길로 꾸며나갔다. 국토부와 강원도의 재생사업 지원으로 탄광 먼지 풀풀 날리던 골목길을 변화시켰다. 

고한읍 18번가에 마을호텔이 들어섰다. ‘마을호텔 18번가’도 엄연한 호텔이다. 그런데 모든 편의시설을 내부로 끌어들인 기존 호텔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의 호텔이다. 우선 방이 3개뿐이며, 최대 투숙 인원은 하루 10명, 웬만한 여관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내에서 가장 작은 초미니 호텔이다. 고한에서 제일 오래된 식당이었지만 오랫동안 문을 닫고 방치돼 있던 건물을 개조했다. 바로 옆에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수작’ 카페가 붙어 있다. 프런트, 객실, 카페, 컨벤션홀, 식당 등 보통 ‘호텔’에 가면 볼법한 시설은 다 있다. 마을기업은 호텔프런트 격이고, 정원은 테라스, 골목카페는 조식 레스토랑, 마을회관은 컨벤션홀이 됐다. 호텔이 수직으로 시설물을 배치했다면 ‘마을호텔 18번가’는 골목에 수평으로 늘어선 것이 이곳만의 특징이자 차이다. 

‘마을호텔18번가’는 협동조합에 가입돼 있는 14개 상가 주민들이 공동 운영한다. 코로나19가 재 확산하기 전까지만 해도 ‘마을호텔’은 전국에서 찾아든 투숙객들로 붐볐다고 한다. 호텔 투숙객이 객실에서 나오면 정원을 둘러보며 휴식할 수 있다. 마을호텔 협동조합에 가입돼 있는 인근 식당과 상점에서는 할인을 받고 식사를 하거나 물건을 산다. 그야말로 ‘골목 전체가 호텔’인 셈이다. 고한 18번가 마을호텔 운영모델은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장상과 국토부장관상, 강원도지사상을 받았다고 전한다.

‘마을호텔 18번가’는 미니 호텔이니 구성이 단순하다. 방 3개를 빼면 1층 안내데스크와 휴식 겸 책을 읽을 수 있는 로비 공간이 전부다. 이 호텔의 유일한 부대시설로, 역시 10년 넘게 방치돼 있던 폐가 공터를 개조했다. 답답한 벽면엔 정암사 수마노탑을 배경으로 별빛이 부서지는 그림이 장식돼 있다. 그림 한가운데에 조그맣게 ‘아름다움을 보고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마을’이라 쓰여 있다. 이렇게 골목경관이 바뀌자 젊은이들이 유입되면서 어두웠던 골목은 활기를 되찾았다. 고한읍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지금까지 스무 집 이상의 낡은 주택들이 리모델링을 거쳐 아름다운 문화예술 마을로 변해가고 있다. 20~30년 전에는 인구가 1만 명이 넘었던 고한읍, 지금은 4000명에 불과한 마을이지만 주민들은 마을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철거’와 ‘재개발’이 아닌 ‘재생’과 ‘삶’의 공간으로 ‘마을에 문화예술의 혼’을 불어넣고 있다.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