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맑은 양평 ‘아련한 첫사랑’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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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맑은 양평 ‘아련한 첫사랑’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1.08.0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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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관 활성화 방안을 찾다 〈9〉
황순원 작가의 대표작 ‘소나기’의 수숫단을 형상화한 모양의 황순원문학관 전경.

부친 평양에서 교사생활, 3·1만세운동 때 독립선언서 배포·투옥한 독립지사
황순원, 1931년 ‘나의 꿈’ 등의 시를 ‘동광’에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1940년 단편소설집 ‘늪’간행 이후, 소설 창작에 주력 소설가로 이름을 알려
소설 ‘소나기’ 배경 양평에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제자들 건립 뜻 모아

 

황순원(1915~2000)의 단편소설 ‘소나기’의 무대를 재현한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이 지난 2009년 6월 13일 개장했다. 소나기마을은 황순원의 유품과 작품 등을 전시한 황순원문학관을 비롯해 징검다리와 개울, 수숫단 오솔길 등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 체험장 등을 갖췄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 341(서종면 소나기마을길24)에 위치한다. 북한강을 왼쪽으로 끼고 오르다가 문호리에서 지방도 352번을 타고 가다 보면 소나기 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작가가 교수로 재직했던 경희대학교와 양평군이 124억 원을 투입해 4만 7640㎡(약 1만 4000평)의 야산 부지에 3층짜리 문학관을 비롯해 황순원문학공원을 조성해 지난 2009년 9월부터 문을 열었다. 소나기마을에서 가장 먼저 봐야 할 곳은 역시 문학관이다. 황순원의 문학세계와 인생을 고스란히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 1953년 단편소설의 백미 ‘소나기’ 발표
최근에 들어 유명 문인이 작고하면 그의 제자들이나 고향 사람들이 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문학관을 건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인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선양하는 것은 물론 자기 고장을 홍보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러면 고향이 남한에 있지 않은 유명 문인이 작고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설가 황순원은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태어났다. 6세 때 가족이 평양으로 이사해 소학교와 오산중학교를 거쳐 숭실중학교로 전학했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 영문과에서 수학했다. 유학시절 부인 양정길 여사를 만나 결혼했다.

조상대대로 황고집으로 유명한 지주 집안 출신이었는데, 황순원에게 아버지 황찬영은 ‘별’이었다. 평양에서 교사로 일했던 황찬영은 3·1만세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다 일경에 체포돼 감옥살이한 독립지사였다. 부친은 1929년 열다섯 살이 된 아들을 정주의 오산중학교에 입학시켰다. 오산중학교는 도산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감동한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민족사학으로 김소월, 백석, 함석헌 같은 문인과 사상가를 길러냈다. 한 학기만 다니고 건강 때문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전학했지만 오산학교는 황순원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때 만난 남강 이승훈을 보고 “남자도 저렇게 늙을수록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황순원은 성장한 후에도 늙을수록 아름다운 한 사람의 남자를 발견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온 부친 황찬영이다. ‘마음의 두 별, 남강 이승훈과 부친 황찬영’을 소개하던 해설사가 황순원의 시 ‘아버지’를 들려준다. 황순원이 평생 견지한 자세는 바로 아버지에게서 내림 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황순원은 단편소설 104편과 시 104편을 남겼다. 황순원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작가의 고집은 작품을 구상하고 취재하는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황순원은 열일곱 살 때인 1931년 ‘나의 꿈’과 ‘아들아 무서워 말라’ 등의 시를 ‘동광’에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34년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소설도 함께 창작하기 시작했다. 1940년 단편집 ‘늪’을 간행한 이후 소설 창작에 주력하며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다. 아시아 자유문학상, 예술원상, 3·1문학상, 인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작품으로는 단편 ‘별’과 ‘목넘이 마을의 개’, ‘학’과 ‘독 짓는 늙은이’를 비롯해 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도시에서 온 소녀와 시골 소년의 순수한 사랑과 짧지만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담은 이야기인 단편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소나기’를 1953년 발표했으며, 장편소설 ‘카인의 후예’와 ‘나무들 비탈에 서다’, ‘일월’ 등의 작품이 있다. 소설가 황순원은 시 104편, 단편 104편, 중편 1편, 장편 7편을 남긴 대한민국의 대표적 작가다.
 

황순원문학관 내부에 있는 황순원의 서재.

■ 황순원,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준 작가
황순원은 6·25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했고, 서울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경희대학교 교수로 특별한 보직 없이 23년 6개월을 재직했다. 이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경기도 양평에 적을 둔 적은 없다. 2000년 9월 14일, 세상을 떠나 고향도 연고도 없이 천안의 병천공원묘지에 유택을 마련한 황순원을 기리며 경희대학교 제자들이 문학관 건립에 뜻을 모았다. 양평이 황순원문학관의 최적지가 된 이유는 바로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는 내용과 소년과 소녀가 만난 징검다리 등 소설의 배경과 닮은 곳이 바로 ‘양평’이었기 때문이다.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그날 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내일 소녀네가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허, 참 세상일도…….”> -황순원의 ‘소나기’ 중에서-

소년과 소녀가 함께 비를 피했다는 수숫단에 착안해 수숫단 모양으로 지은 황순원문학관은 제1전시관, 제2전시관, 카페테리아, 남폿불 영상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제1전시관과 제2전시관에서는 황순원의 유품과 육필원고, 작품 감상 공간 등을 살펴볼 수 있고, 옛 교실모형의 남폿불 영상실에서는 소설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볼 수가 있다. 세미나실과 휴게공간도 갖추고 있다. 마타리꽃 사랑방은 문학카페다. 3층에는 쪽빛구름쉼터와 갈밭머리쉼터가 있다. 과연 그때 소녀가 떠난 이후 소년은 어찌 됐을까. 짧지만 순수했던 첫사랑 소녀를 떠나보낸 소년은 무엇을 추억하며 살아갔을까. 상상의 나래를 더하는 애니메이션은 첫사랑 소녀와 소년이 재회하는 몽환적 스토리로 구성돼 이채롭다. 문학관 외부에는 수숫단이 가득한 소나기광장이다. 광장의 수숫단 오솔길은 소설에서 소년과 소녀가 만났던 장소로 꾸며졌다.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2020년 공립박물관·미술관 실감콘텐츠 제작 및 활용사업’ 공모에 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의 ‘인터랙티브 소나기 산책 실감콘텐츠 제작 및 활용 사업’(10억 원)이 선정됐고, 올해 다시 ‘스마트 박물관 구축사업(2억 원)에 선정됐다. 이를 계기로 첨단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콘텐츠 개발을 통해 관람객에게 색다른 문화체험을 제공한다. 문학촌은 10억 원의 사업비로 실감콘텐츠를 제작하고 체험프로그램과 스마트 박물관 구축 사업을 실행할 계획이다. 

앞으로 ‘소나기’를 8가지 테마로 나눠 관람객들이 이동하며 소설 ‘소나기’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가상현실세계를 체험하고, 앱을 매개로 한 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하게 될 예정이다. AI로봇, VR, 인터랙티브 미디어 등의 첨단 디지털 기술로 ‘소나기’의 감성과 정서를 관람객들에게 전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소나기마을은 연평균 10만여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국내 최고 수준의 문학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195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소나기’가 7080세대는 물론 오늘날 첨단기기에 익숙한 청소년들의 마음까지도 빼앗는 매력과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김종회 촌장은 이를 세 가지로 정리하는데 “첫째는 황순원과 소나기라는 이름이 갖는 힘이고, 둘째는 문학관의 위치 즉 근접성이며, 셋째는 우리 문학관만의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일 것”이라고.

황순원은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소설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한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평군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안내도.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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