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골짜기, 하동 지리산 자락의 ‘이병주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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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골짜기, 하동 지리산 자락의 ‘이병주문학관’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1.08.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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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관 활성화 방안을 찾다 〈10〉
경남 하동은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의 고향이다. 사진은 이병주문학관 전경.

이병주, 빨치산의 삶을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낸 분단문학의 원점
대표작 ‘지리산’ 일제 말기부터 휴전협정까지 이어지는 역사 배경
이병주문학관에 마련된 창작실, 우리에 던지는 메시지 참으로 커
홍성문학인들에게 공간 마련되면 문화 환경 변화시키는 가치창출

 

경상남도 하동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이자, 한국의 발자크로 불리는 언론인이자 소설가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1921~1992)의 고향이다.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232(이명골길 14-28), 이명산 자락에 위치한 이병주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은 1005번 지방도로에서 문학관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펜끝을 형상화한 지주간판이 이병주문학관이 있음을 알려준다. 이명산쪽으로 2km 정도 들어가면 문학관과 너른 앞마당이 한눈에 펼쳐진다. 삼각형을 두개 붙인 것 같은 문학관 건물은 배경이 되고 있는 뒷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장면은 좌우 기둥위에 빛나는 황금색 펜촉이다. 이병주가 마흔네 살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1992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27년이라는 세월동안 한 달 평균 1000여 매의 원고를 집필했다는 초인적인 힘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 같은 펜촉이다. 이곳에 건립된 이병주문학관은 언론인이며 소설가였던 작가를 기리기 위해 하동군과 이병주기념사업회가 2008년 4월 25일에 개장한 생가형·단독형 문학관이라는 설명이다. 문학관의 규모는 부지면적 2992m²(905.08평)에 연면적 504.24m²(152.53평), 지상 2층 규모로 건축됐다.
 

■ 빨치산의 삶,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내다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이병주(李炳注)의 호는 나림(那林)이며, 경상남도 하동(河東) 출생이다. 1941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문예과를 졸업한 후 1944년 와세다대학 불문과 재학 중 학병으로 동원됐다. 진주농과대학과 해인대학 교수를 지냈고, 국제신보 주필과 편집국장으로 언론인 활동을 한 것으로 적혀 있다. 또 1961년 5·16 필화사건으로 2년 7개월 복역하다 출감해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했다. 1965년 마흔 네 살의 나이에 중편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7년 동안 80여 편의 작품을 남기는 초인적 작가로서의 역량을 보였다고 적고 있다. 문학관의 공간 한가운데에는 만년필 형태의 대형 펜이 조형물로 조성돼 있고, 주변에는 이병주의 대하소설들이 주제별로 케이스 안에 진열돼 있다. 이병주는 ‘매화나무의 인과’와 ‘마술사’ 등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했다. 

광복 이후 ‘월간중앙’에 진주(晉州)를 중심으로 한 일본 유학생들의 사회 활동을 민족의 수난과 개인의 애환을 통해 선명히 부각시킨 ‘관부연락선’을 연재해 주목을 받았다. 이병주의 작품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질돼 가는 인간상과 가치관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한편, 역사 대 사회, 인간 대 양심의 문제로의 귀착과 휴머니즘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점 등이 독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75년 장편소설 ‘지리산’과 ‘산하’를 비롯해 ‘행복어사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수필집 ‘백지의 유혹’등이 있다. 이병주는 1977년 장편 ‘낙엽’과 중편 ‘밍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1976년 한국창작문학상을, 1984년 장편 ‘비창’으로 한국펜문학상을 받았다. 특히 이병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편소설 ‘지리산’은 집필을 시작한 지 10여 년 만에 완성했다. ‘지리산’은 1933년부터 6·25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 7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전통적인 지주계급으로 신분의 제 약속에서 인간미를 드러내는 하영근과 이규, 소시민적 지식인으로서 무력감에 빠져 회의주의자가 돼야 했던 권창혁, 공산주의를 신봉하면서도 당의 무모하고 획일적인 명령체계에서 갈등을 겪는 하준규·박태영, 시류에 따라 변화하는 좌익·우익의 여러 인물들이 난세에 대처해 가는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다. 

이병주는 빨치산의 삶을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분단문학의 원점으로 한국문단에서 현대문학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다. 소설 ‘지리산’은 이병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편 대하소설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문학관 한가운데 조성된 만년필 형태의 조형물.

■ 이병주의 삶과 작품의 생동감 더 하다
이병주문학관 측면 벽에는 “나폴레옹 앞에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에는 발자크가 있다”라는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인 발자크를 뛰어 넘고자한 작가의 비장함이 묻어있는 문구다. zone 1의 ‘냉전시대의 자유인 그 삶과 문학’이라는 테마가 붙여진 전시공간에는 작가의 일대기를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일본 유학중 학병으로 동원됐던 당시의 모습,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하기 전에 연재했던 최초의 소설 ‘내일 없는 그날’과 함께 언론인 이병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연속해 zone 2의 전시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zone 2에는 ‘한국의 발자크, 지리산을 품다’라는 주제가 붙어 있다. 이병주의 고향 하동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 ‘지리산’은 일제 말기부터 해방과 6·25한국전쟁 이후 휴전협정까지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이다. 이병주는 지리산을 통해 소설가로서의 큰 꿈을 이루고자 한 것은 아닐까.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는 zone 2입구의 문구는 역사와 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병주는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다. 5·16 필화사건은 역사 기록자로서의 문학인이었기에 겪은 고초였다. zone 2에서는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 작품 소설 ‘알렉산드리아’와 민족적 좌절의 기록을 담고 있는 ‘관부 연락선’ 그리고 ‘새로운 매혹의 세계’와 같은 초기 단편들의 성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zone 3의 ‘끝나지 않은 역사, 산하에 새긴 작가 혼’이라는 주제가 붙은 전시실 초입에는 대하소설 ‘산하’ 말미에 나오는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유명한 문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작가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문장인 듯싶다. 또 이병주의 소설 ‘그해 5월’과 ‘산하’와 ‘행복어사전’ 등을 통해 한국현대사와 당시의 세태를 느낄 수 있으며, 언론에 비친 인간 이병주와 그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평가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살아서 집필활동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을 재현한 서재공간에서는 이병주의 삶과 작품에 대한 생동감을 더 하고 있다. 서재를 복원한 공간을 지나면 zone 4의 ‘끝나지 않은 월광이야기’라는 주제가 붙은 전시공간과 마주하게 되는데, 작가 이병주는 떠났으나 그를 기리고 추모하는 열기는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병주 하동국제문학제에서는 국제문학상 시상을 비롯해 국제문학심포지움, 전국학생백일장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나림 이병주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이병주의 삶과 문학에 대해 안내해주는 테마전시공간.
이병주의 삶과 문학에 대해 안내해주는 테마전시공간.

이병주문학관의 중앙홀에는 거대한 만년필과 함께 지리산의 한 장면이 모형으로 재현돼 있다. 하얀 눈밭에서의 전투 장면은 아픈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지며 찡하다. 전시실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장면은 모형 위쪽에 걸려있는 원고지들이다. 1만 6500매의 엄청난 원고지를 쌓아 전시하고 있던 태백산맥문학관의 감동이 재연되는 것 같다. 한 달에 평균 1000매 정도의 원고를 집필했다는 작가의 초인적인 힘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강당 2층에는 제1, 2 창작실이 마련돼 있어 작품에 몰두하고 싶은 작가들이 자연과 벗하면서 편안히 작품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외부광장에는 이병주의 동상과 책 읽는 모습, 어록비를 비롯해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는 이병주문학비 등이 관람객들을 반긴다.

이병주문학관에 마련된 창작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참으로 크다는 생각이다. 작가들에게 수준 있는 문학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작가들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울 의무가 있는 곳이 바로 문학관이 아닐까. 홍성의 문학인들에게도 이러한 공간이 마련됐으면 하는 생각은 문학담론의 형성과 문화콘텐츠 생산 거점으로의 기능면에서 문화 환경을 변화시키는 문학관의 사회적 가치창출이 아닐까 싶은 희망사항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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