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문화숲길역사인물길, 홍성·예산 역사인물 ‘참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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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문화숲길역사인물길, 홍성·예산 역사인물 ‘참 많네’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2.07.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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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숲길에서 내포문화숲길의 역사와 문화를 묻다 〈8〉
⑤내포문화숲길 내포역사인물길
결성면 만해마을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선사 생가지 사당인 만해사.

고려 말기의 큰스님 보우국사, 최영 장군, 성삼문 선생 등 홍주출신
조선의 문신 남구만, 순국지사 이설·임득의, 독립운동가 김복한 배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펼친 홍성 출신의 대표적 인물 백야, 만해
예산출신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 추사 김정희 등 역사인물 즐비해

 

내포문화숲길은, 가야산 주변 내포지역 중 4개 시군(서산·당진·예산·홍성)의 10개 고을에 걸쳐 불교, 천주교, 동학, 백제부흥운동, 내포역사인물 등 5개 테마를 역사와 문화의 흔적에 따라 옛길, 마을길, 숲길, 들길로 연결한 320km를 걷는 충청남도를 대표하는 숲길이다.

특히 내포문화숲길 역사인물길 코스인 충남도청소재지 홍성과 예산은 역사 속의 위인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고려 말기의 큰스님 보우국사, 고려 말기의 명장이자 재상 최영(1316~1388) 장군, 세종대왕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한 조선시대 문신이자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1418~1456) 선생은 홍북읍 노은리에서 태어났다. 조선 후기의 문신 남구만, 조선 말기의 순국지사 이설, 독립운동가 김복한 선생 등이 홍성 출신이다. 선조 29년(1596) 이몽학이 충청도 홍산에서 반란을 일으켜 인접한 임천·정산·청양·대흥 등을 함락하고 홍주성을 침범하자 홍주목사 홍가신을 도와 난을 평정한 조선 중기의 무신인 임득의 장군의 묘와 사당(정충사;靖忠祠)이 서부면 판교리 청룡산에 있다. 이 공로로 1604년 청난공신 3등에 기록되고 평성군으로 봉해졌으며, 이후 충청수우후를 거쳐 광해군 1년(1609)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됐다.

묘소에는 1917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는데, 비문은 지산 김복한이 지은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펼친 홍성 출신의 대표적 인물로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는 결성이고 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백야 김좌진(1889~1930) 장군은 갈산면 행산리 태생이다. 조선 선조 때 한시의 대가인 이달(1539~1612)도 손꼽히는 홍성의 역사인물이다. 최근의 인물로는 고암 이응노 화백이 있다. 내포문화숲길 역사인물길 제1코스의 출발점인 예산 덕산의 매헌 윤봉길 의사의 사당인 충의사와 기념관, 고즈넉한 매력이 가득한 백제시대의 사찰인 예산 덕숭산의 수덕사와 추사고택 주변에서 만나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흔적들은 내포문화숲길의 역사인물길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삶의 역사문화적 자산들이다.


■내포문화숲길역사인물길, 절의정신의 길
내포문화숲길 역사인물길은 5코스로 구성됐다. 제1코스는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 의사 사당인 예산 충의사에서 출발해 덕숭산 수덕사, 이응로 화백의 사적지인 수덕여관과 암각화, 선미술관 등을 둘러보고, 예산과 홍성의 경계인 뫼넘이고개~용봉산~홍북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용봉사~용봉산 아래 마을길을 따라 고암 이응노 화백의 생가·기념관에 도달하게 된다. 제2코스는 고암 이응노 화백의 생가와 작품 등이 전시된 이응노 생가기념관에서 출발해 홍성의 진산 백월산(394m)~남산산림욕장~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에 도착하는 코스다. 제3코스는 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에서 출발해 금북정맥 봉수지맥을 타고 가는 숲길로 그림 같은 수목원~광천 토굴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읍~3km 벚나무길을 따라가면 오서산 상담마을에 이르는 코스다. 제4코스는 결성동헌에서 출발해 청룡산~임득의 장군 사당 정충사~만해 한용운 선사 생가와 만해문학관~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와 기념관에 도착하는 코스다. 제5코스는 고려 명장 최영 장군 사당과 조선시대 사육신 성삼문 선생의 유허지가 있는 홍북읍 한솔기마을 코스다. 

특히, 내포역사인물길 5코스는 별도의 독립코스로 성삼문 선생 유허지에서 출발해 마을 길을 따라 최영 장군 사당에 도착하고, 사당 뒤로 이어진 닭제산 산길을 올라, 다시 성삼문 선생 유허지로 도착하는 2.3km의 거리로, 2시간이면 여유롭고 넉넉하게 둘러볼 수 있는 원점회귀 코스다. 여기서 살펴볼 유허지(遺墟地)란, 선현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을 말하며, 유허비(遺墟碑)는 자취가 남은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세우는 비를 뜻한다.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는 비문이 적힌 성삼문 유허비에는 비문을 쓰게 된 동기, 성삼문의 약력과 절의정신을 칭송했고, 사육신의 훌륭한 정신이 후대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뒤로 좌측엔 노은단과 우측에 충문사가 수리봉 아래 나란히 자리한다.

또한, 유허비 맞은 편으로 최영 장군이 마셨다는 우물이 있는데, 성삼문 선생도 이 우물을 마셨으리라. 왜냐하면 이 마을은 두 분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충문사는 훈민정음 창제에 바쳤던 성삼문의 공덕을 기려 내삼문(충절문)과 사당, 현판이 모두 한글로 돼 있다. 노은단은 단종 폐위에 반해 굳은 절개를 지키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위패가 묻힌 곳이며, 사육신의 절개를 기리어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노은단 아래에는 성삼문 선생의 일대기와 단심가(丹心歌)가 비(碑)에 새겨져 있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읽어 볼 수 있다. 아래쪽에 엄찬고택으로 알려져 있던 이 고택은 새로운 고증에 따라 성삼문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추정해 홍성 노은리고택으로 명칭을 바꿨다.

여기서 마을길을 따라 최영 장군의 사당인 기봉사로 향한다. 최영 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이 ‘기봉사’이다. 고려 말 무신인 최영 장군은 고구려 땅 만주 벌판을 되찾는데 노력했으며, 홍건적과 왜구를 섬멸하고 1376년 홍산대첩 등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명나라가 고려의 북쪽이 자기 땅이라 우기기에 팔도통도사가 돼 요동정벌에 나섰으나, 이성계의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끝까지 고려에 충절을 지키다 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매헌 윤봉길 의사 사당인 덕산의 충의사.
매헌 윤봉길 의사 사당인 덕산의 충의사.
갈산면 행산리의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

■홍성·예산에 역사인물 참으로 많다
내포문화숲길의 역사인물길 4코스에서는 백야 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 선사, 임득의 장군 등을 만날 수 있는 코스다.
결성읍성에서 출발한 4코스의 시작은 임득의 장군의 묘와 사당인 정충사를 둘러보고 걷다보면 만해 한용운 선사의 생가와 기념관에 이른다. 승려이자 시인이요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의 만해문학체험관에는 동상과 초상화를 비롯해 만해의 문학과 철학을 반영하는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유천(만해의 아호)이 서당에서 공부하던 모습, 서당에서 한학을 가르치는 모습, 글 읽기에 정신이 팔려 참새가 벼를 다 먹어 치운 장면, 만주에서 마취 없이 총탄 제거 수술을 받는 장면, 딸 영숙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모습 등 만해의 일생이 자그마한 인형으로 재현돼 있어 만해의 삶을 친근하게 배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설악산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장면을 재현한 방이 압권이다. 12폭의 병풍을 뒤에 두르고 단정하게 앉은 만해는 호롱불에 의지한 채 붓으로 ‘님의 침묵’을 써 내려가는 모습이다. 생가지 주변의 산비탈에는 민족시비공원이 조성돼 숲길을 차분하게 산책하며 시를 감상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 선사의 생가지에서 갈산방면을 향해 길을 걷다 보면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에 이른다. 순간 김좌진 장군 생가 대문에 붙은 ‘김좌진’ 문패 글씨가 선명해서 더욱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지난 1998년 문을 연 백야기념관으로 이동하면 장군의 흉상을 비롯해 독립운동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볼 수 있다. 특히 청산리대첩 모형이 눈길을 끈다.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청산리계곡으로 유인·초토화하는 장면이다. 김좌진(1889∼1930) 장군은 1911년 군자금 모금 활동으로 투옥됐고, 1915년 독립운동 자금 모금 중 체포돼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1917년에는 만주로 가서 독립군을 조직하고 항일 무장투쟁을 펼쳤으며, 특히 청산리대첩은 일제강점기에 기록적인 성과를 거둔 전투로 기록된다. 

역사인물길 1코스는 예산 덕산의 매헌 윤봉길 의사의 사당인 충의사에서 홍성 홍북의 고암 이응노 생가 코스인데, 고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수덕사를 들러 수덕여관과 고암 암각화, 선 미술관 등을 둘러보기로 한다. 수덕사 일주문 옆에 위치한 수덕여관은 이응노 화백이 1945년 3월, 일본 패망을 앞두고 징용을 피해 수덕사 인근 비구니가 쓰던 절집을 손수 구입한 곳이다.

이후 이응노 화백의 부인(妻) 박귀희 여사(1909~2001)가 이곳을 여관으로 운영하며 프랑스로 떠나버린 남편을 기다리면서 자식을 길러냈다. 지금도 수덕여관 주변에는 이응노 화백이 동백림사건의 옥고를 치른 후 이곳에 머물면서 손으로 직접 새긴 문자 추상 암각화가 곳곳에 남아 있다. 예산에는 추사 김정희 고택도 자리하고 있다. 내포문화숲길의 역사인물길을 걷다 보면 홍성·예산에는 손으로 꼽는 역사인물들이 참으로 많다는데 공감할 수 있다. 애국충절의 고향답게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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