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의병정신 계승 ‘완주의병공원’ 의병 품은 ‘비봉포란(飛鳳抱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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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의병정신 계승 ‘완주의병공원’ 의병 품은 ‘비봉포란(飛鳳抱卵)’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3.08.1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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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병기념관, 충남의 항일·의병정신 어떻게 담을까 〈3〉
고흥 유씨 한 가문의 독립 유공자 9명을 추모하는 일문구의사 사적비.
고흥 유씨 한 가문의 독립 유공자 9명을 추모하는 일문구의사 사적비.

대둔산 전적지, 농민군 최후의 항전지 역사적 가치 높은 곳
병오창의, 1만 2000명 무명 농민 의병 결사 항전 승리 거둬
항일의병, 1895년부터 1915년 전후 20여 년 동안 무장투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일원 8850㎡에 기념공원 조성 예정돼

 

전라북도는 우리나라의 서남부에 위치한 8개도(道) 중 하나이다. 도청은 전라북도 전주에 있으며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있었던 수부이다. 또한 전라감영은 고부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이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해 동학 정신을 꽃피웠던 최초의 집강소이기도 하다.

전북 완주는 임진왜란 때의 이치·웅치 전투 전적비를 비롯해 동학농민혁명 기념지, 독립운동 추모공원 등 호국보훈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운주면의 이치와 소양면의 웅치에는 임진왜란(1952년·선조 25년) 당시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군과 맞서 싸워 전주성을 지키고, 호남 곡창지대를 왜군의 수탈로부터 막아내는 전과를 거둔 이치·웅치 전투 전적비가 있다. 당시 왜군은 주력부대를 둘로 나눠 한쪽은 금산을 점령한 후 이치(梨峙·베티제)를 거쳐 전주를 공략하고, 다른 쪽은 장수·진안을 지나 웅치(熊峙·곰치재)를 넘어 전주성으로 진격했다. 이에 맞서 1만 2000여 명의 무명 농민 의병이 참전해 관군과 함께 결사 항전으로 전쟁에 임해 승리를 거둠으로써, 임진왜란의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지난 2016년 3월 19일에는 이치 전투에서 순국한 무명의 농민 의병을 위한 추념비가 제막되기도 했다. 또 완주는 봉건 정부의 수탈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 반봉건과 반외세를 목적으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의 2차 봉기와 최후 항전지로 알려져 있다. 

2차 봉기는 폐정개혁이 아닌 항일투쟁의 성격을 띠는데, 삼례는 전봉준 장군이 동학군의 근거지로 삼은 곳이다. 특히 2차 봉기 당시 수많은 농민군이 삼례에 재집결했으며,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역사광장’과 기념탑이 당시 그들의 호국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대둔산 전적지는 농민군 최후 항전지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농민군이 대둔산의 험한 산세를 활용해 일본군에 끝까지 항전했던 곳으로, 지금도 돌담 등 당시의 유적이 남아 있다.

전북 완주군 경천면 용복리에는 ‘완주독립운동추모공원’인 ‘완주독립운동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이곳은 완주 출신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28위의 애국애족 정신과 위업을 기리고, 민족정기 선양을 위해 조성됐다. 총 1만 446㎡ 부지에 사당, 기념관, 관리사, 정각 등이 건립돼 있다. 공원에는 독립운동 기념탑과 6.25 참전 기념탑, 베트남 참전 기념탑 등이 건립돼 나라 사랑과 민족정기를 드높이고 있다.

 

완주독립운동추모공원인 완주독립기념관(완주 경천면 용복리).
완주독립운동추모공원인 완주독립기념관(완주 경천면 용복리).

■ 후기의병전쟁, 전국에서 가장 활발했던 곳
한말 의병 활동은 1895년을 전후해 시작됐다. 일본의 경복궁 침범(1894)과 명성왕후 시해사건(1895), 단발령(1895) 등이 직접적 계기였다. 당시 전북지역은 동학농민혁명 후유증으로 격동의 소용돌이를 겪은 심각한 상태여서 의병 봉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킬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면암 최익현과 고창의 고석진, 진안의 최제학 등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의병 활동의 시발이 된 정읍 태인 무성서원 결의는 전북의 혁명정신에 불을 붙인 불씨가 됐고, 역사 속에서 계속 칭송되고 있다. 조선 말기의 유학자이자 전북 최초의 의병을 주도한 군산 출신 임병찬은 호남에 대 흉년이 들자 자기 재산을 털어 백성을 구했다. 최익현과 함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전투하다 쓰시마 섬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후에 독립의군부를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시키고, 항일 의병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돼 단식으로 투쟁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전북 정읍은 임실과 더불어 독립운동의 성지로 꼽힌다. 임실에는 호남 최대 규모의 의병을 이끈 전해산이 있으며, 애국지사 이석용이 있다. 전해산은 이석용의 ‘창의동맹단’ 참모이다. 이석용 부대가 남원 사촌 전투에서 타격을 입자 ‘대동창의단’을 결성해 전라도 지방의 의병부대를 규합해 일본군과의 전투를 총지휘했다. 진안 마이산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했고, 임실에서 500명의 의병이 모집되자 의병대장으로 추대받아 ‘의병창의동맹’을 결성해 왜적과 수많은 전투를 했다.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임실에서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한 채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고창에는 최초의 의병인 정시해와 3·1운동의 대표적 인물 김승옥이 있다. 정시해는 면암 최익현의 문인으로 왜병을 물리치는데 앞장섰으나 진위대의 탄환에 맞아 순국했다. 민족의식의 계몽가 김승옥은 고창청년회 동지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벌이고 독립운동자금을 관리했으며, 민족의식을 키우는데 헌신했다. 

전국에서 확산되는 의병 때문에 일제는 당황스러웠을 것이고, 결국 1909년 호남의병대토벌작전을 감행하게 된다. 1910년 강제로 한일병탄이 체결되고, 1919년 3·1만세 운동이 있기까지 의병들은 산속 깊이 들어가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항일의병은 1895년부터 1915년 전후까지 20여 년 동안 무장투쟁을 전개했으며, 전북지역은 동학농민혁명의 영향으로 1907년 병오창의(최익현, 임병찬)를 시작으로 후기 의병 전쟁을 전국에서 가장 활발히 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호남평야를 지닌 전북지역은 한반도에서 가장 광활한 평야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의병에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는 특징이 있다. 

전주, 완주, 익산, 김제 출신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밝혀진 의병은 적으나 다른 지역의 의진에 합류한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익산 의병의 경우 1907~1914년까지 여산, 금마, 황등, 용안, 함라, 춘포 등 10여 곳에서 결성된 익산지역 의병들은 팔봉, 강경, 관동마을 일대에서 이규홍, 박이환을 중심으로 발대한 익산 의병은 천호산을 넘어 비봉면 불당구렁에 이르러 완주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완주, 무주 일대의 해산 의병을 모아 통합하니 1000여 명의 연합 의병으로 재편됐다.

 

완주독립기념관의 순국선열을 모신 충열사.
완주독립기념관의 순국선열을 모신 충열사.

■ 전북의병정신 계승 ‘호국의병공원’ 윤곽
전북지역 의병은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1895년의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봉기한 의병은 을사늑약 체결 직후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호남, 특히 전북지역은 동학농민혁명의 여파로 의병운동이 적었지만 1907년 고종 황제 강제 퇴위를 시작으로 한일신협약, 군대 해산으로 이어지는 혼란한 상황에서 수많은 의병이 일어나면서 호남은 의병운동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호남지역에서 의병운동이 처음 시작된 것은 을사늑약 체결 후 최익현을 중심으로 일어난 정읍 태인 의병이다. 태인 의병은 전북에서 일어난 최초의 항일의병이라는 의미를 갖고, 의병운동이 상소 운동에서 무장투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는 등 전국 의병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전북지역에서는 수많은 의병이 무력 투쟁을 전개했다. 한국독립운동사에 기록된 전북의 의병 수와 교전횟수는 1908년 219회 교전, 의병 수 9960명, 1909년 273회 교전, 의병 수 5576명, 1908년에는 전국의 4분의 1, 1909년에는 전국의 절반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전북지역의 의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완주군은 비봉면에 들어설 ‘호국 의병공원’의 윤곽을 드러냈다. 완주군은 지난해 12월 29일 ‘호국 의병공원 기본구상 최종 용역 보고회’를 열고 사업 범위와 조성 계획 등을 논의했다. 의병공원의 기본구상은 ‘의병을 품에 안은 비봉포란(飛鳳抱卵)’으로 정해졌다. 비봉포란은 ‘날아온 봉황이 알을 품은 명당’이라는 뜻이다.

‘완주의병공원’ 사업의 개요는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의 이야기를 담는 안이 제시됐다. 사업대상 지역(8850㎡)의 개발 방법도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일원에 의병 활동 체험공간, 전시시설, 추모의 벽 등을 설치하는 소규모 개발과 의병추모탑, 다목적 광장 등을 넣는 중규모 개발로 나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주군의 ‘완주호국의병공원’ 조성은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곳에는 현재 ‘비봉공원’과 ‘일문구의사 사적비’ 등이 조성돼 있다.
 

‘완주호국의병공원’ 조성 예정지인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일원.
‘완주호국의병공원’ 조성 예정지인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일원.

 

<이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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