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어울림, 한옥마을 도시브랜드화 전략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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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의 어울림, 한옥마을 도시브랜드화 전략5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2.10.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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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마을, 자꾸 원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공공디자인은 도시의 이미지를 시각화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공공성을 발현하여 도시의 통합적 이미지 정립과 차별화된 정체성을 확립하고 전달하는 행위다. 새로운 도시브랜드를 구축하고 지속시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브랜드를 구축, 소통하기 위한 요소로서의 ‘한옥마을’을 통해 성공적인 도시브랜드로 거듭난 사례들을 분석, 시대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독특하고 차별화되고 특성화된 도시브랜드 구축의 중요성을 진단한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고유의 주거양식인 한옥을 미래자산으로 육성, ‘한옥 부흥시대’를 열 수 있는 가능성과 대안을 제시해 본다. 주거유형 다양화, 도시경관 회복, 문화경쟁력 강화라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기대하는 이유다. 특히 충남도청소재로서의 홍성, 천년홍주의 역사에 걸맞고 차별화 되도록 홍주성 복원과 맞물린 주변지역을 비롯한 옥암온천지구, 충남도청신도시 단독주택지구 등 홍성의 지속가능한 도시브랜드에 적용시킬 수 있는 방안 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새 충남도청소재지 홍성, 도시브랜드화 전략 이제는 차별화다’
 2.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 한옥, 서울시의 한옥선언
 3.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 한옥, 가능성과 차별화 전략
 4. 전통 보존이냐, 관광 상품화냐, 한옥마을 갈림길에 서다
 5. 전통 한옥마을에 자꾸 사람냄새가 사라져 가고 있다
 6. 한옥, 새로운 예술적 공간으로 탈바꿈 하다
 7. 옛것이 그리워 찾는 한옥, 민박 체험관광 소득도 짭짤하다
 8. 전남 행복마을 “한옥 열풍이 뜨겁다”
 9. 자연이 숨 쉬는 한옥, 화려하게 부활하다
 10 충남도청소재지 홍성, 천년홍주 역사의 상징 ‘한옥마을’







△성주 한개마을은 전통한옥과 자연석에 황토로 쌓은 토석담이 유려한 곡선을 이루며 전형적인 한국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 한옥의 구조도 특별해 안채, 사랑채, 새사랑채로 구성돼 있다. 새사랑채가 안채와 나란한 것도 특징이다. 복원에 따른 전통의 원형 훼손도 우려되고 있다.



■ 성주 한개마을 전통한옥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자리한 한개마을은 1450년경 진주 목사를 지낸 이우가 정착해 터를 잡은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마을 앞으로 낙동강 지류인 백천이 흐르는데 이곳에 큰 나루가 있었다고 해서 ‘한개마을’이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한개마을에는 70여 채의 한옥과 초가 등이 어우러져 있다. 몇 집을 제외하고는 현재까지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에는 북비고택과 교리댁, 하회댁 등 보존상태가 특히 뛰어난 집들이 많다. 마을의 건물들은 대부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건립됐다고 한다. 마을주민 이태구(84)옹에 의하면 “이곳의 한옥을 짓는데 사용된 목재와 돌 등은 북한의 해주에서 가져왔다”고 설명하고 “영축산 너머가 낙동강이고 그 건너가 왜관인데, 한국전쟁 때 이곳까지 포탄 공격이 가능했지, 그래서 많이 소실됐다”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의 한국 목수들은 이러한 한옥을 지을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설명했다.

한개마을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과 건물들이 있다.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의 호위 무관을 지낸 이석문과 북비고택이 그것이다. 북비고택은 이석문이 터를 잡았으며,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1762년 영조 20년,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려했다. 이때 사도세자의 호위 무관인 이석문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막으려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결국 그는 어명을 거역한 죄로 관직에서 쫓겨난다. 눈물을 훔치며 고향으로 돌아온 이석문은 남쪽으로 난 사랑채 문을 헐어 담으로 둘러치고, 북쪽 담을 헐어 작은 문을 달았다. 그리고는 매일 새벽 의관을 정제하고 비명에 죽어간 사도세자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북향사배를 했다고 한다. ‘북비(北扉)’라는 말은 북쪽으로 난 사립문이라는 뜻이다.

한개마을에는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의 호위 무관을 지낸 이석문, 조선 말의 유학자 이진상 등 많은 명현을 배출했다. 그 명성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판검사 5명, 의사 10명을 비롯해 대학교수들이 많이 배출됐다고 한다. 사촌인 이규석 국민대총장, 이방석 건국대학원장과 이진 성균관대 교수, 삼성그룹의 이진 사장 등이 이 마을 출신이라고 이태구 옹은 설명했다. 또 “한개마을에는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건조물과 민속자료 등이 많다”고 홍연옥 문화해설사는 밝혔다. 전통한옥들 사이로 자연석에 황토로 쌓아올린 토석담이 유려한 곡선을 이루며 전형적인 한국의 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옥의 구조 또한 아주 특별했다. 안채, 사랑채, 새사랑채로 구성돼 있다. 새사랑채가 안채와 나란히 앉아있는데 새사랑채를 안으로 들인 것도 드문 일이다. 안채는 여성의 공간이고 사랑채는 남성의 공간이어서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는 서로 간에 금역의 장소였다는 것이다. 진사댁은 여러 가지로 파격을 가져온 집이다. 특히 새사랑채는 별난 구조다. 누마루처럼 꾸민 마루 한 칸과 온돌방 한 칸, 창고로 구성돼 있다. 누마루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卍자 모양으로 멋을 낸 것도 특징이다.



△안동 하회마을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서애 류성룡의 후손인 풍산 류씨를 비롯해 광주 안씨, 김해 허씨 등의 종친들이 모여 살고 있다. 골목골목의 투박한 토담과 포장되지 않은 언덕길은 이 마을의 상징이다. 전통한옥마을에서 현대의 한옥이 충돌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전통한옥 보건소가 눈에 띤다.



■ 안동 하회마을 전통한옥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은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키고 가꾸는데 최선을 다해 국내외 관광객들로부터 사랑받는 관광명소로 만들어 가야한다”는 화두와 함께 지난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역사마을에 등재된 곳이다. 하지만 “하회마을에 한옥호텔이 들어서면 가장 한국적인 문화체험장으로 각광받을 것이다”와 “원형보존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세계문화유산에 호텔 건립은 안 될 일이다”가 충돌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회마을에서 1.3㎞ 가량 떨어진 입구에 1층짜리 전통 한옥호텔이 추진되면서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회마을에는 125세대 230여명이 살고 있으며, 37곳의 민박업소가 있다고 한다. 안동시는 날로 늘어나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하회마을관리사무소와 야외공연장 옆 9필지 6121㎡에 전통 한옥호텔을 2014년 완공을 목표로 건립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호텔은 6개동 14실 규모의 객실과 정자 등을 갖출 예정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안동시는 지난 2009년 문화재청의 국가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거쳐 (주)락고재에 땅을 매각했다는 것. 이에 대해 하회마을 주민들은 호텔건립이 마을의 원형을 훼손하고, 민박을 하고 있는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할 우려가 높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하회(河回), 말 그대로 물이 돌아간다는 뜻으로 낙동강 줄기가 마을을 휘감고 S자로 흐르며, 산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물도리동이라고도 불리는 하회마을은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으로 마치 연꽃이 물 위에서 꽃을 피운 듯한 형상이다.



△경주 양동마을은 종가일수록 높고 넓은 산등성이에 터를 잡았고, 양반들의 법도에 따라 전통 한옥구조의 집들이 배열돼 있다. 점차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서 일반 백성들의 서민가옥인 초가가 채워진 독특한 가옥구조와 전형적인 집성촌마을 형태의 특징이 있다.



■ 경주 양동마을 전통한옥
경주 양동마을은 경주에 속하지만, 포항과 거리가 더 가깝다. 마을로 들어서자 설창산의 구릉을 따라 자리 잡은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실제로 영화 ‘취화선’, ‘내 마음의 풍금’, ‘혈의 누’ 등의 영화 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다. 이곳처럼 150여 채의 다양한 가옥의 구성을 보여주는 곳도 드물다. 한국 최대 규모의 동성취락으로 수많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해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 호의 초가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무엇보다 옛 모습 그대로를 담고 살아가는 마을의 모습은 관광지라 불리는 다른 민속마을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 마을 가옥들의 위치를 살펴보면 당시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다. 종가일수록 높고 넓은 산등성이에 터를 잡았고, 양반들의 법도에 따라 집을 배열하고 있다. 점차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서 일반 백성의 가옥으로 채워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의 양 가문에 의해 형성된 토성마을로 5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마을이다. 우재 손중돈 선생, 회재 이언적 선생을 비롯하여 명공(名公)과 석학을 많이 배출했다고 전한다.
특히 양동마을은 기와와 전통 남부지방의 한옥구조를 기본으로 한 양반가옥과 초가형태의 서민 가옥구조가 그대로 보존돼 조선시대의 건축형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조선 중기 양반가의 솟을대문의 구조라던가, 남부지방의 일자형 가옥구조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가옥구조와 전형적인 집성촌마을 형태의 특징을 띠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전통 한옥마을의 공통된 과제는 자꾸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고 있다는 문제다. 또한 복원 등에 따른 전통의 훼손으로 인해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삶의 모습과 사람냄새가 자꾸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전통문화와 역사의 향기를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는 한옥마을의 원형 보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한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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