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옛 해동주조장, 문화예술 빚는 ‘해동문화예술촌’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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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옛 해동주조장, 문화예술 빚는 ‘해동문화예술촌’ 변신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3.11.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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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정미소·양조장에 문화예술이 꽃피다 〈5〉
담양의 옛 해동주조장이 복합문화공간인 해동문화예술촌으로 변신했다.
담양의 옛 해동주조장이 복합문화공간인 해동문화예술촌으로 변신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에게 양조장만큼 삶의 애환이 깃든 공간도 드물 것이다. 양조장이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20세기 초였다. 조선 시대에는 집에서 술을 빚었으나 1916년 주세령의 시행으로 가양주(家釀酒)가 금지됐다. 이후 모든 술은 허가받은 양조장에서만 생산해야 했다. 그렇게 양조장은 우리의 일상이 됐다. 1970~1980년대 읍이나 면 단위의 중심 지역엔 어김없이 양조장이 한두 개씩은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주변에 있던 양조장도 이런저런 부침이 있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양조장은 우리 곁에 있다. 2019년 국립민속박물관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막걸리 양조장은 660여 곳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수제맥주, 와인, 전통주의 양조장도 있으니,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조장의 상황이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100여 년의 역사를 이어가는 양조장도 있고, 최근에 갓 태어난 양조장도 있다.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양조장도 있고, 문화예술 등의 전시공간을 갖춘 양조장도 있다. 물론 폐허가 된 양조장도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에는 막걸리가 다시 인기를 끌면서 양조장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최근에는 양조장을 탐방하고 즐기는 문화도 생겼고, 양조장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원도심 활성화’
담양 원도심에 자리한 해동주조장은 1950년대 말 고(故)조인훈 대표가 ‘선궁(仙宮)소주’를 인수해 현재 해동주조장 문간채에서 해동 막걸리로 사업을 시작하며 출발했다. 당시 담양중학교 인근에서 유류 판매업을 하던 조인훈은 선궁소주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소주 판매가 활성화되자 1966년경부터 양조 시설을 확충했다. 사업이 번창해지자 주변의 땅을 매입하고 규모를 키워나갔고, 누룩창고, 가옥, 관리사, 농기구 창고 등 주조 관련 시설을 건립하면서 규모도 확대됐다. 

1970년부터는 해동 막걸리, 해동 동동주를 생산해 지역주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양조장이다. 막걸리와 탁주를 만들던 담양에서 가장 큰 양조장이었던 해동주조장은 1970년대 고도성장기에 막걸리는 국내 주류 판매량의 75%를 차지하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 이후 맥주와 소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막걸리는 사양 산업이 됐다. 막걸리 소비가 줄어들면서 주조장들도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담양에서 제일 잘 나갔던 해동주조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급기야 현대적인 생산방식을 도입한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지난 2010년 해동주조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해동주조장이 복합문화공간인 해동문화예술촌으로 다시 탄생한 건 2019년 6월이다. 담양군이 원도심내 역사·문화적 가치를 간직한 해동주조장을 문화거점시설로 재조성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디자인공예문화진흥원이 주최한 ‘2016 산업단지·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공모해 선정됐고 이후 리모델링을 통해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1500여 평(5222㎡)에 창고 10동, 주택 4동으로 조성된 공간에는 갤러리, 아카이브실, 교육실 등 다양한 시설들이 꾸며져 있다. 술을 빚던 주조장은 아카이브실로, 누룩창고는 전시실로 활용하는 등 기존의 산업시설을 리모델링 한 공간의 역사성이 돋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건물의 노후화가 가장 심한 지역이라 전체를 재건축했다고 전한다.

이 과정에서 해동문화예술촌은 여러 차례 상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한국건축가협회가 주관한 ‘2019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우수상을 비롯해 2019 지역문화대표브랜드 최우수상, 2019 매니페스토 지역문화부문’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해동문화예술촌의 매력은 막걸리 주조장의 정체성을 생생하게 살린 독특한 전시 구성과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해동주조장의 역사를 전시해 놓은 곳.
해동주조장의 역사를 전시해 놓은 곳.

■ 해동주조장에서 탈바꿈한 해동문화예술촌
해동주조장의 나지막한 담 너머로는 오래된 옛스런 건물에 현대감각으로 리모델링한 건물들에 눈길이 끌린다. 정문과 함께 건물 왼편의 문은 언제나 개방돼 있어 탐방객을 맞는다고 한다. 정기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언제라도 가면 입장료 없이 편안하게 전시공간을 관람할 수 있는 열린 힐링 공간이 되고 있다는 반응이다. 특히 국민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죽녹원,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프로방스까지 그리 멀지 않은 데다가 주변 먹거리까지 갖추고 있어 인기 관광지로도 꼽힌다.

해동주조장의 정문 오른쪽 시멘트벽에 그려진 벽화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전 세대를 아우르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전원일기’의 주인공 김혜자·최불암 씨가 연기하는 모습이 벽화로 꾸며져 있어서다.

해동주조장에서 탈바꿈한 해동문화예술촌은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을 기반으로 한 문화복합공간으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크게 세 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옛 해동주조장과 담양읍교회, 담양의원으로 이뤄졌다. 정문 길 건너편 한옥 건물은 ‘추자혜(秋子兮)’라고 불린다. 백제 시대 때 담양의 명칭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옛 담양의원의 안채였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는 담양군문화재단의 사무실로 사용 중이지만 예술가들을 위한 가사문학관과 게스트하우스로도 운영된다. 과거 주조장에서 일했던 직원들의 숙소는 현재 멕시코 음식점 ‘치도’로 운영 중이다. 이곳은 담양청년창업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담양군과 담양군문화재단이 협력해서 청년창업의 디딤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반시설과 용품, 임대료 감면 등 전폭적으로 지원이 들어간 곳이란다. 치도는 맥시코 음식을 주메뉴로 담양에 새로운 음식문화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 해동주조장 대표 일가가 1990년대까지 생활하던 한옥 안채는 북 카페로 단장했다. 넓은 마당에는 정원과 우물이 있다. 건물은 남향을 향하고 있어 마루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쬘 수 있다. 과거에는 마당을 바라보는 전면부가 전부 창으로 이뤄져 채광에 신경을 많이 쓴 공간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일꾼들의 취사도 가능했었다고 한다. 뒤로 보이는 큰 ‘ㄱ’자의 건물은 해동주조장의 옛 역사를 담은 아카이브관이다. 안타깝게도 옛스런 현장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해동주조장의 옛 물품과 함께 옛터를 보존하고 있어서 막걸리의 주조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커다란 기름통은 해동주조장에서 사용한 연료통으로 쌀을 찌는 가열시설과 누룩 제조, 막걸리 발효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난방시설에 사용한 등유를 보관한 연료통이다. 원재료 가공실에서는 찐 쌀을 냉각시키던 터를 그대로 보존 중이다. 옆에 보이는 뒤주도 당시 쌀을 보관하는 데 쓰였다.

발효실에서는 막걸리의 발효과정을 색과 소리로 표현하고 있다. 술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발효실과 숙성실이었던 터를 지나면 ‘제성실’이 나온다. 제성실에서는 숙성 후 물을 섞어 희석하고 첨가물을 추가해 포장, 반출하는 곳이었다.

우물터도 해동문화예술촌의 볼거리다. 깊이가 무려 22m로 아파트 7층 높이와 맞먹는 굉장히 깊은 우물이다. 현재 순환이 되도록 분수를 설치해 놓았다. 지금도 비가 오면 우물이 차오르지만 넘치진 않고 잘 순환되고 있다고 한다. 왼쪽의 작은 붉은 벽돌 건물은 유류고로 초기 해동주조장 대표가 기름 판매업을 시작으로 영업을 해 주조장과 동시에 운영됐다고 한다.

‘오색동’은 옛 담양읍교회를 새롭게 재단장해 포럼과 공연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게 특징이다. 지난 2018년에는 담양으로 불린 지 1000년이 되는 해를 맞이해 ‘천년담양-생태와 인문학으로 디자인하다’라는 슬로건으로 전국 최초로 12개의 각 읍·면을 대표하는 문장을 개발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담양군은 해동주조장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옛 담양읍교회 건물, 옛 담양의원의 안채 건물을 매입해 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해동주조장 일대는 지난 2019년 6월 복합문화공간인 해동문화예술촌으로 다시 태어났다. 해동주조장에서 탈바꿈한 해동문화예술촌은 예술로 문화를 빗는 곳, 예술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가치를 갖고 운영하고 있다. 해동문화예술촌은 담양지역 원도심 활성화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결실 가운데 하나로 주목할만한 곳이다.
 

해동주조장의 막걸리를 담아 짐발이 자전거에 실어 배달하던 말통.
해동주조장의 막걸리를 담아 짐발이 자전거에 실어 배달하던 말통.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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