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 넓게 펼쳐진 논 그 사잇길로 들어서니 군데군데 자리한 주택들이 보인다. 32가구 51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농촌 마을. 평범한 듯 보이는 이 마을은 ‘에너지자립마을’이라 불린다. 생활에 필요한 전기, 난방 등 에너지를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해 낸다는 것. 32가구 전 세대에는 가정용 태양광 패널(3.5kWh)이 설치됐고, 13가구는 지열 난방을 사용한다. 그 외에 마을공동 태양광발전시설(500kWh)이 설치·운영될 예정이다. 2020년부터는 가축분뇨로 퇴비, 친환경 액비, 전력을 생산하는 원천에너지전환센터가 건립돼 필요한 에너지 자체 생산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공급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얼마 전에는 마을회관을 ‘패시브하우스(최소한의 냉난방으로 적절한 실내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게 설계된 주택)’로 리모델링했으니 앞으로 더욱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을 테다.
벌써 11회째, 매년 8월이면 ‘조롱박 축제’를 열어 마을에 손님을 초청하고 에너지 자립을 주제로 한 여러 체험활동을 통해 활력을 더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에너지 절약과 자체 생산, 에너지 생산을 통한 마을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원천마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축산농가 6곳, 뜻밖의 손님
‘대한민국 축산업 1번지’로 이름 붙을 정도로 축산농가가 많은 홍성군. 한우 6만여 두, 돼지 48만여 두를 사육하는 등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규모인데, 원천마을 역시 축산농가가 많은 편이다. 닭 6만 마리, 돼지 1만 마리, 소 2000두, 젖소 250두, 염소 100두. 현재 마을에서 축산에 종사하는 가구만 여섯 곳이니 농사와 함께 마을의 주 생업에 속하는 셈이다. 때문에 축사 분뇨 해결은 마을의 오래된 숙제였다. 그러나 가업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별달리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옛날부터 있던 축사고 다 같은 마을주민인데, 불편이 있어도 감수하고 살아가는 거죠. 가끔 얼굴 보면 ‘냄새 좀 덜 나게 했으면 좋겠다’ 이야기하는 정도예요.”(송영수 이장)
“어릴 적에는 지금처럼 축사가 크고 많지는 않았어요. 서울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죠. 아무래도 지금은 농사를 지어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이니, 갈수록 축산산업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죠.” (마을기업 머내협동조합 황선상 위원장)
그러던 어느 날 이곳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이도헌 씨다. 뉴욕 월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해외와 한국투자증권에 근무하며 생애 오랜 시간을 금융업에 종사해왔던 그가 원천마을에 들어와 돼지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양돈업을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농업회사법인 성우농장에 소액 투자자로 참여해 재무 관리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하는 것이 본래 계획이었죠. 그러다 가축 전염병 창궐로 농장이 어려워지면서 이곳을 떠맡게 됐습니다. 당시 성우농장은 돼지 4000마리를 사육하는 산업형 농장, 흔히 공장형 축산이라 하는 양돈농장이었죠.” (이도헌 대표)
예상치 못한 계기로 2012년 홍성에 이주, 돼지농장을 경영하게 된 이도헌 대표. 그의 등장과 함께 원천마을은 특별한 변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기후위기와 농촌
엉겁결에 오게 된 원천마을이지만, 이도헌 대표는 마을주민이 된 이상 마을 일에 관심을 가지고 발전에 보탬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축사 분뇨 냄새로 인한 피해가 있음을 인지한 뒤에는 분뇨처리 시설을 지하에 만들고, 환기시스템을 자동화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힘썼다. 마을 회의와 각종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마을을 알아가려는 노력도 계속됐다.
“외지인이라 경계하실 법한데 오히려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했죠. 농장을 직접 운영하며 축산이 마을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더욱 마을 발전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3~2014년 마을장기발전계획에서 ‘에너지 자립마을’을 마을발전비전으로 세우게 되었죠.” (이도헌 대표)
“함께 마을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농촌의 현실을 많이 나눴어요. 축사로 인한 피해가 있더라도, 이것을 없앨 수는 없는 일이고 앞으로 농업도 에너지를 점점 더 많이 필요로 할 거라는 전망을 이야기했죠. 함께 살아가려면 ‘에너지 자립’이 중요하다는 것에 합의했어요.” (마을기업 머내협동조합 황선상 위원장)
마을주민과 이도헌 대표는 의견을 공유하며 마을의 앞날을 그려나갔다. 그가 직접 농장을 운영하며 체감한 기후위기 심각성과 농촌의 현실이 녹아든 결과였다.
“만약 원천마을에 명산이나 관광명소로 내세울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비전을 세우지 못했을 겁니다. 원천마을을 알아가며 이곳에 황금개구리, 두꺼비, 반딧불이가 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이것이 친환경, 저탄소, 에너지 자립 등을 내세우는 큰 계기가 됐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한 농장 운영자로서 자연환경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