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 폭우 속에서도 ‘참여형 축제’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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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 폭우 속에서도 ‘참여형 축제’ 완성
  • <공동취재단>
  • 승인 2025.10.16 07:01
  • 호수 912호 (2025년 10월 16일)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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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축제 포화시대, 지역성을 담은 축제로 변해야 한다⑦

지역축제를 둘러싼 논란과 비판은 해마다 반복된다. 과도한 상행위, 주민 동원, 유사 콘텐츠, 과장된 실적 등은 축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축제는 관광을 넘어 지역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는 공공의 장이어야 한다. 이에 홍주신문을 비롯한 5개 지역언론이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2025 공동주제심층보도지원 사업을 통해 국내·외 축제 현장을 공동 취재·보도함으로써 지역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한 외국인 관광객이 맥주잔 쌓기를 선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제13회 독일마을 맥주축제, ‘참여형 축제’의 완성형 보여줘
빗속에도 5만 5000여 명 방문… 동기간 총방문객 47% 차지
 독일 맥주와 소시지, 음악, 사람… 남해의 낮과 밤이 ‘들썩’

 

폭우 속에서도 서사로 완성되다
지역축제는 날씨에 크게 좌우되지만, 이야기와 매력이 있다면 비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제13회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그 사실을 증명했다.

10월 2~4일 사흘 동안 경남 남해군 독일마을에서 열린 이번 축제는 3일 삼동면에 81㎜ 폭우가 쏟아지며 현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지만, 관람객은 우산을 들고도 맥주잔을 놓지 않았고, 무대 위 공연자들은 악기를 덮지 않은 채 빗방울을 조명 삼아 공연을 이어갔다. 비가 그친 마지막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진입로가 차량으로 가득 찼다.

남해군 관광진흥과 집계에 따르면 사흘간 5만 4838명이 축제장을 찾았고, 같은 기간 남해군 총방문객 약 11만 8000명 중 47%를 차지했다. 비에도 지난 축제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방문이 이어지며, 남해는 ‘날씨가 좋아서 가는 행사’가 아니라 ‘비가 와도 가는 축제’로 진화했다.

이번 축제는 남해군 주최, 남해군관광문화재단·독일마을맥주축제기획단·독일마을운영회 공동 주관으로 열렸으며 총예산은 7억 원이다.
 

매일 밤 진행된 ‘옥토버나이트’에서는 맥주 빨리 마시기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다. 

‘맥주에 담긴 이야기’의 확장
올해 슬로건 ‘BEER-LOG, BEER-BOMB in 남해’는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었다. ‘맥주에 담긴 나의 이야기’라는 주제는 축제 전반을 관통했다. 관객은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군민은 운영자가 아닌 창작자로 변했다.

상징적 장면은 ‘제1회 홈브루잉 콘테스트’였다. 남해군관광문화재단과 남해대학 호텔조리제빵과 협업으로 열린 전국 수제 맥주 경연에 관람객이 시음·투표로 참여하며 현장은 즉흥적이면서도 따뜻한 경쟁의 장으로 바뀌었다.

또 ‘비어오픈마이크-랜덤플레이댄스-비어스타 경연대회’로 이어지는 연속형 프로그램은 누구나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는 오픈형 참여 구조를 구현, 남해 축제가 ‘보는 행사’에서 ‘함께 만드는 축제’로 전환했음을 분명히 했다. 이 변화는 지역의 산업·교육·문화가 결합한 ‘로컬 창의 산업형 축제’의 방향성을 보여줬다.
 

매일 오후 두 번씩 열린 ‘판타지 카니발 퍼레이드’는 독일의 전통적인 모습과 남해식 향토적인 모습이 어우러졌다.

퍼레이드와 전통, 정서를 잇다
매일 오후 1시와 5시에 열린 ‘판타지 카니발 퍼레이드’는 이번 축제의 핵심이었다. 독일마을 거리 전체가 화려한 무대로 변했고, 트랙터가 선두에 선 행렬을 따라 대형 인형, 브라스밴드, 불쇼, 브레이크댄스가 이어졌다. 남녀노소 군민과 외국인 참가자 등 220명이 함께 행진하며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도로로 나와 리듬에 몸을 맡겼다. 퍼레이드는 ‘남해의 축제는 주민이 만든다’는 메시지를 가장 생생하게 전했다.

독일 전통춤 ‘탄츠(Tanz)’ 클래스가 처음 도입돼 큰 호응을 얻었고, 독일 복장을 입은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밴드 ‘엔텐바흐’와 현지 퍼포머들이 요들송과 전통춤 무대를 선보였다. 개막식에서는 독일마을 주민 합창단의 〈환영의 노래〉와 함께 장충남 군수의 건배 제의, 오크통 개봉 퍼포먼스가 이어져 파독의 역사와 옥토버페스트 정서를 남해의 현재와 자연스럽게 잇는 장면이 연출됐다.

주민이 직접 운영한 먹거리 부스와 특산물 판매 코너도 ‘남해가 만든 축제’임을 재확인시켰고, 파독 1세대의 기억이 깃든 도이처 임비스와 벤츠 전시관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남해에서 진짜 독일을 느꼈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메인 텐트에 설치된 특별무대에서 흥겨운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br>
메인 텐트에 설치된 특별무대에서 흥겨운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밤의 리듬, 남해식 옥토버페스트
해가 지면 독일마을은 뮌헨 옥토버페스트를 떠올리게 했다. 매일 밤 8시부터 9시 30분까지 진행된 ‘옥토버나이트’에서 수천 명이 동시에 “Prost!”를 외치며 잔을 부딪히는 장면은 남해가 ‘로컬 버전의 옥토버페스트’를 자신만의 색으로 재해석한 순간이었다.

화려한 조명과 DJ, 라이브 밴드가 어우러진 무대는 유럽식 축제의 흥겨움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한국형 페스티벌로 완성됐다. 빗속에서도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음악과 웃음이 뒤섞인 독일마을 광장은 축제의 에너지를 증명했다.

올해 처음 도입된 360도 원형무대는 기존 빅텐트 구조 안에서 관객이 어느 방향에서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설계해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었다. 비어오픈마이크, 랜덤플레이댄스, 비어스타 경연대회 등 주요 참여형 프로그램이 이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빅텐트는 단순한 공연장을 넘어 ‘참여 광장’으로 변신했다.

한편 원예예술촌을 메인 동선에 연결해 가족 중심 휴식·체험형 프로그램을 확장했으며, ‘플라워 가드닝 클래스’, ‘컬러풀 화분 만들기’, ‘비어 플랜트 테라리움’ 등 체험과 ‘보태니컬 드로잉 워크숍’, ‘꽃과 음악이 있는 작은 콘서트’가 분위기를 더했다. ‘독일마을 앰배서더 서포터즈’의 현장 라이브 제작, 뷰티 인플루언서의 맞춤형 메이크업 프로그램, 청년 창업자의 ‘도르프 청년마켓’도 함께 운영돼 로컬 브랜드 홍보와 청년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다만 버스 승하차장과 주차장이 사이에 놓인 원예예술촌 구간은 분위기·사운드·조도의 급격한 전환으로 동선의 흐름이 다소 끊기는 인상이었다. 명확한 안내판과 포토존 홍보, 조도·사운드 연출을 보완하면 ‘체류형 관광’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올해 새롭게 리모델링된 파독전시관은 옛 시절 독일에서 땀 흘린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기록과 여운, 지역 모델로 나아가다
파독전시관 리모델링은 조명과 전시 동선을 새롭게 정비해 체험 몰입도를 끌어올렸고, 젊은 세대와 외국인 방문객이 ‘남해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상징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독일마을 전망대는 인기 포토존이 됐고, 빗속에서도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 이어졌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열기는 계속됐다. 추석 연휴(10월 7~9일) ‘고향에서 맥주 한 잔’ 행사로 향우와 관광객이 독일마을 광장을 가득 메웠고, 파독전시관은 개관 이래 보기 드문 대기 행렬을 이뤘다. 남해군 관광진흥과는 “2025년은 남해군 ‘고향사랑 방문의 해’로, 축제의 여운을 잇고자 다양한 볼거리·체험거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축제는 폭우 속에서도 운영의 안정성과 콘텐츠의 품격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뿌리는 20년이 넘은 독일마을과 옥토버페스트의 정체성에 닿아 있다. 파독 광부·간호사의 기억과 청년 세대의 창의성이 하나로 엮이며 남해만의 서사가 형성됐다.

비는 내렸지만 맥주와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옥토버나이트’의 무대는 뜨거워졌고, 독일 소시지를 손에 든 사람들은 함께 노래하고 춤췄다.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 세대와 국적을 초월한 음악, 방문객들의 건배 물결은 남해의 밤을 하나로 묶었다.

제13회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날씨를 넘어 지역이 문화를 생산하고 경제를 순환시키는 자생형 축제 모델로 나아가고 있다.
 

독일마을 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br>
독일마을 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퍼레이드는 축제기간 오후 2회씩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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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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