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주체 되어 지역을 활력있게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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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주체 되어 지역을 활력있게 만들어야”
  • 김현선 기자
  • 승인 2014.09.0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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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통합진보당 유성구위원회 주무늬 부위원장

 


“구의원은 주민의 삶 가까이에서 민생을 살펴야 합니다. 유성에 10만 청년 대학생이 있고 이들을 위한 공공주택 확대, 긴급생활안전자금 지원 등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낡은 정치 버리고 민생 위하는 정치 새롭게 하겠습니다”

지난 6·4지방선거에 나선 청년 후보의 당찬 목소리다. 홍동면 출신의 주무늬(28)씨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전 유성구 가선거구(온천1·2동, 진잠동, 원신흥동)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했다. 대전지역 최연소 후보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출마하게 된 이유는 청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국회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장하나 의원,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의원 등 청년의원들이 있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지역에서도 청년의 정치참여로 구태의연한 정치현실을 건강하게 바꿔나가고 싶었다. 충남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충청지역대학생문화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주무늬씨는 지역
도 청년층의 목소리를 낼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전 유성구에만 6개의 대학이 있어요.

6·4 지방선거에 대전지역 최연소 후보로 출마
풀무고 졸업…충남대에서 충대신문 편집국장도
지역에서 청년이 정치·문화 주체되는 방안 고민 


대전을 통틀어서는 15개의 대학이 있고요. 대전의 청년 비율은 30%나 되죠. 그러나 이들을 위한 예산은 5%도 되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은 삼포세대(취업, 결혼, 출산포기)로 불릴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특히 지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2년 대학졸업을 앞둔 대학생의 평균 빚이 13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금 부담과 장기간 취업 대기상태에서 월세 등의 지출로 신용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있다. 가중되는 경제적 부담에 대학생, 청년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가 없다. “한 번은 친구가 저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활 할 수가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싫다고요. 이런 상황이 비단 이 친구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닐겁니다”

주 씨는 청년들의 부담을 덜 수 있는 공약을 공약집에 넣었다. 공공주택을 통한 청년주거문제 해결과 ‘청년층 신용회복 및 긴급생활안정 자금 이자부담금 지원’이 그것이다. “진보당 김재연 의원실 연구에 따르면 청년들 50% 이상이 가장 우선적 지원이 필요한 청년 정책을 ‘주거’라고 꼽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별 전체 공공임대 주택비율을 20%로 확대하고 대학가주변, 청년세대 밀집지역의 경우 1인 가구용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공약을 내놨습니다” 청년층의 신용회복을 위해서는 서울시에서 실행하고 있는 제도를 유성구에서도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서울시에서는 이미 ‘청년층 신용회복 및 긴급생활안정 자금 이자부담금 지원’을 실시하고 있어요. 유성에서도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청년층이 소액채무로 인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일을 막고 청년층의 건전한 경제기반을 만들기 위해 이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처음 그가 정치에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된 계기는 2009년 대전에서 있었던 ‘학자금이자지원조례’ 제정을 위한 청구인 명부를 받으러 다니면서다. 당시 대전지역의 시민단체와 진보정당 등이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주민조례 청원서를 대전시에 제출했다. 당시 대전시민 1만 6276명이 서명한 조례안이 결국 대전시에 만들어지게 됐다.

“‘조례’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됐습니다. 그 경험이 바탕이 돼 대학원 자치행정학과를 수료했습니다”

남들이 나서지 않는 일에 책임감을 갖고 나서는 성격 때문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생활관 여학생장을 맡아 일하는 등 과 외 활동과 동아리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탓에 생활관 여학생장을 맡았을 당시에는 후배들이 자신을 많이 무서워하기도 했다고.

“전교생이 생활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생활관에 여학생장, 남학생장이 있었어요. 아이들 깨우고, 공부시키고, 청소 당번도 짜는 역할을 했습니다. 건의 사항이 생기면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당시 제가 생활관 수칙을 어기는 것에 대해 굉장히 엄격해서 후

배들이 저를 많이 무서워했죠. 하하”

충남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충대신문에서 활동하며 편집국장까지 맡았다. 공동체에 책임을 지고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던 주 씨에게 학보사는 딱 맞는 일이었다. “학교에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충대신문을 보게 됐어요. 쌀 개방 관련 집회에서 농민과 전경이 대치하고 있는 사진과 함께 ‘부모같은 우리에게 왜 그러냐, 아들같은 우리에게 왜 그러냐’는 제목이 달려있더라고요.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계기가 되어 학보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주 씨가 학보사에 들어가 처음 쓰게 된 기사는 대전지역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기사였다. 선배따라 취재나갔던 첫 기사를 시작으로 이후 학술면, 대학지면, 기획면 등을 맡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는 대학 법인화 기사를 꼽았다. “대학 법인화 문제는 굉장한 이슈였어요. 여기저기 취재를 많이 갔죠. 국회의원실도 찾아가고, 학우들도 만나며 여러 의견을 들었어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기억이 남네요” 기사를 놓고 학보사 담당교수와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등록금과 관련된 칼럼은 지면에 나가지 못한 적도 있었어요. 기사에서 한 줄의 문장이 빠진적도 있습니다” 학보사 활동이 힘든 탓에 많이들 울고 나갔지만 주 씨는 끝까지 남아 학보사를 지켰다. 책임감때문이었다. “하나를 시작하면 어떤 일이든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6·4지방선거가 끝나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첫 출마였기에 목표는 득표율보다는 지역정치계에 청년정치의 화두를 던지는 것에 있었다. “득표율은 막연하게 10% 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득표율보다는 지방선거에서 청년 후보가 나옴으로 해서 ‘청년도 정치에 나설 수 있구나’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청년들의 이야기, 문제를 정치 이슈로 내세워 청년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고요” 지방선거 이후에도 여전히 그는 지역에서 청년들과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대학생, 청년들이 이제는 소비주체가 아닌 문화적, 정치적 측면에서 생산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청년과 지역을 어떻게 연계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대전에 대학교가 많이 있다지만 학교를 졸업하면 다시 서울 등지로 떠나버립니다. 스쳐지나가는 곳이라 생각하다보니 지역에서 대학생이 주체로 발돋움하기 힘들어요. 어떻게 젊은 층의 참여를 이끌어내 지역에서 청년들이 주체로서 지역을 활력있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주무늬는 누구?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졸업 △충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충남대학교 대학원 자치행정학과 수료 △충청지역대학생문화연대 대표 △통합진보당 유성구위원회 부위원장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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