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젓갈·토굴새우젓, 강경젓갈시장에서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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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젓갈·토굴새우젓, 강경젓갈시장에서 배워야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5.06.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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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젓갈의 생존전략 공생이 답이다<4>

한국젓갈의 기원, 발효에서 시작되다

 

강경시장은 조선시대 평양시장·대구시장과 3대 시장으로 꼽혔다. 내륙에 위치하지만 금강하구와 가까워 신선한 젓갈을 사러 전국의 사람들이 몰렸다.

강경의 옛 명성 되찾기 부활의 신호탄은 강경젓갈축제
근·현대가 공존하는 전국 유일의 관광·젓갈도시로 부활

1997년 보령방조제 물막이 공사로 인하여 더 이상 독배마을로 배가 들어 올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새우젓이나 젓갈의 호황기도 주춤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국도변에 자리 잡은 광천독배마을의 상권을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고, 광천토굴새우젓의 매출도 급격히 떨어지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원래 광천은 주변 섬마을 사람들과 인근 주민들이 배를 타고 물품을 사고 팔기위해 모여들었던 곳이다. 당시 옹암리는 옹암포 또는 옹암포구라고 불리던 자그만 항구가 있던 교역의 중심지였다. 천수만 방조제가 건설 된 이후 해수면이 낮아져 더 이상 포구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왕성한 그때의 교역이 소문나고 토굴로 이어지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장항선 열차를 타고 광천역에서 내리면 젓갈의 명소답게 상당한 규모의 젓갈시장이 눈앞에 보인다. 5일장으로, 광천 장이 서는 날은 4일과 9일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젓갈의 산지로는 강경, 속초, 곰소 등 유명한 곳이 많지만 광천은 토굴이 있어 숙성시키는 환경적 요인으로 뛰어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강경젓갈시장은 평양시장, 대구시장과 더불어 1930년대까지 국내 3대 시장 중 하나로 최대의 성시를 이뤘다. 강경은 내륙 깊숙이에 위치하면서도 금강하구와 가까워 해상과 육상교통의 요충지로 각종 수산물 거래가 활발하며, 전국적으로 신선하고 다양한 젓갈을 공급하고 있다. 강경은 ‘한국 젓갈의 고향’이라 불리며, 강경맛깔젓갈은 한국 젓갈의 원조라고 자부하고 있다. 논산시는 강경젓갈시장의 명성을 되찾고자 강경전통맛깔젓을 강경지방의 특산물로 내세우면 이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1990년대부터 강경읍 일원에 복원을 시작했다. 현재 강경젓갈시장의 젓갈류 생산‧유통업체는 200여개에 이른다. 옛 부둣가인 강경읍 태평리 일원에 젓갈백화점들이 즐비한데 모두 50평 이상의 대형 토굴형 저장고를 갖추고 있다. 2014년 기준 강경젓갈시장의 젓갈 생산‧판매량은 전국 젓갈시장의 60%를 상회하고 있다. 점차 위축되고 있는 광천젓갈과는 달리 국내 젓갈시장의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강경젓갈의 생존전략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광천의 상인들 사이에서 높은 실정이다.

 

강경발효젓갈은 10~15도 온도로 토굴이나 저온창고에서 100일 이상의 숙성기간을 두고 저염도로 담가 덜 짜고 독특한 맛을 낸다.

강경맛깔젓갈시장 젓갈류 생산·유통업체 200여개 넘어
2014 강경발효젓갈축제, 지역경제 파급효과 351억 원
강경, 젓갈 생산·판매량 전국 젓갈시장의 60%를 상회
김장철엔 하루에 관광객 2만여명 젓갈골목 가득 메워

‘강경장이 서면 강경포구에는 금강 하류에서 싱싱한 해물을 가득 실은 고깃배와 여러 지방의 특산물을 실은 장삿배들이 줄을 지어 몰려들었다. 하루 40~50척의 크고 작은 배가 늘 정박해 강이 비좁을 정도로 빼곡하게 차 있었는데, 어떤 배는 2~3일이 걸려도 물건을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수산물을 사러 온 서울, 대구, 대전, 청주 등 전국 각지 상인들과 봇짐장수나 등짐장수, 우마차를 끌고 모여든 농부들로 강경포구는 시끌벅적했다. 선창가는 뱃사람들로 북적였고 북옥동 양쪽으로 죽 늘어섰던 100여 군데의 색주가(色酒家)엔 술집마다 10여 명의 여자가 대기했으며, 100~200원이면 막걸리에 푸짐한 해물, 나물 안주를 곁들여 걸쭉하게 놀 수 있었다. 명월관과 대성관 등 유명한 요정도 항상 60~70명의 기생이 들끓었다고 전한다. 조그만 동네에 늘 1만~2만 명은 오가고 했으니 발 디딜 틈이 없었다’며 강경을 지켜온 80대의 옛 강경상인들은 광복 전후까지 전국에서 가장 생기 넘치던 강경포구의 옛 모습을 이렇게 회고했다. 조선시대 평양시장, 대구시장과 함께 3대 시장으로 손꼽혔던 강경시장. 최고 번성기였던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는 해마다 성어기인 3~6월 4개월 동안 강경은 하루 100여 척의 배가 강경포구에 생선을 산더미같이 부렸고 충남을 비롯한 충북, 전북은 물론 경기 등지에서 몰려든 상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시기 군산항에 들어오는 물건의 80%가 강경장을 통해 팔려나갔다고 한다. 강경 최대 인구 3만 명에 상인 등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10만 명이 북적댔다. 논산·호남평야를 낀 곡창지대의 젖줄인 강경은 군산 바다에서 금강 뱃길(42㎞)을 따라 내륙으로 연결되는 농수산물 교역 요충지로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인구의 집결은 상대적으로 문화시설의 보급도 빨라지게 했다. 1920년대 충남도내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고, 상하수도가 놓였으며 화력발전소도 세워졌다. 주요 관공서와 은행 등도 일찍부터 강경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내륙의 교통이 발달하면서 해상로에 의존하던 강경은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1905년 개통된 경부선 철도가 강경을 비켜가자 청주와 공주 등이 강경상권에서 이탈했고,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급기야 군청마저 논산으로 옮겨갔다. 강경이 눈에 띄게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 호남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교통의 발달과 어선의 대형화, 각종 통신시설 발달로 영해를 벗어난 원양어업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결국 1960년대 중반 2만6430명(1966년)이던 인구가 1990년대 후반에는 1만5311명(1996년)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강경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퇴보도시’의 상징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이런 강경이 지금, 젓갈과 근대 건축물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개의 키워드로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부활의 신호탄은 젓갈축제였다. 지난 1997년 “200년 역사 강경의 자랑인 젓갈부터 살려보자”며 젓갈축제를 제안해 10월 11일부터 이틀 동안 제1회 젓갈축제가 열렸다. 서해의 각종 해산물이 다 모여드는 곳이었으니 팔고 남은 막대한 양의 해산물을 처리하기 위한 염장기술 노하우를 살리면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철도청의 협조로 젓갈열차가 운행되면서 성공을 예고했다. 그 결과 1998년에는 3만5000여 명이 참가, 3억 원의 수익을 올리면서 성공가능성을 보였다. 지난해 2014년 10월 15일부터 19일까지 강경포구 일원에서 개최한 2014 강경발효젓갈축제는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350억7100만원으로 분석돼 눈부신 실적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강경읍 할미젓집 최근영 대표는 “강경젓갈은 10~15도 온도로 토굴이나 저온창고에서 100일 이상의 숙성기간을 두고 저염도로 담가 다른 지역보다 덜 짜고 양념 첨가 등으로 강경젓갈만의 독특한 맛을 갖고 있다”며 “그 덕에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강경은 “면적 6.93㎢, 인구 1만20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젓갈만큼은 전국 젓갈 생산·유통량의 63%를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전국 제일의 젓갈도시”라고 말했다. 매년 11월 김장철이면 전국 각지에서 200~300대의 관광버스가 태평리 젓갈시장 골목골목을 가득 채운다. 하루 관광객이 2만 명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근·현대의 공존, 전국 유일 관광·젓갈도시 번창”

 

강경의 부활 프로그램은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논산시는 젓갈산업과 근대 건축물 관광을 곁들여 미래에 대한 승부수를 띄웠다. 강경역사문화연구원 김무길 연구실장<사진>은 “강경은 한일은행 강경지점, 강경노동조합, 남일당한약방, 금성다방 등 1920~40년대 건축물 20여 동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어 근대 건축물의 보고로 통한다. 2003년부터 강경고도복원사업이 추진되면서 차츰 강경포구도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강경의 자랑인 근대 건축물도 개보수를 마쳤거나 보수 작업에 들어간 지 오래”라며 “강경은 발전의 호재도 마련됐다. 정부가 강경을 발효젓갈산업특구로 지정돼 오는 2016년까지 544억여 원을 쏟아 붓는다. 젓갈 테마공원이나 외항 및 근대문화거리를 조성해 번창했던 강경포구의 옛 모습을 재현하는 사업으로 젓갈과 근대 건축물, 근·현대가 공존하는 전국 유일의 관광·젓갈도시로 만들어 확실한 부활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에 부푼 기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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