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지명 되찾기 주민여론·자치단체장의 의지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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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지명 되찾기 주민여론·자치단체장의 의지가 관건
  • <특별취재팀>
  • 승인 2015.12.0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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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⑮

1995년 일본총독부로 사용한 중앙청 첨탑제거, 지명개명의 시초
지명은 정신적 매개체, 나라와 민족 정체성·역사문화유산 상징
홍성지역주민 70% 이상 “홍주라는 옛 고유지명 되찾아야 한다”
홍주지명역사 천년과 맞물려 지명되찾기범군민운동본부 출범해

 

▲ 옛 홍주지도, 홍주성 안의 옛 건물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민족정신과 정체성을 없애기 위해 강제로 성(姓)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을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지명(산·봉우리·마을 등)을 일본식으로 바꾼 것이 ‘창지개명(創地改名)’이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 지명을 되찾기 위한 시도는 최근 서거한 김영삼 대통령시절,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 일본 총독부로 사용됐던 중앙청의 첨탑을 제거하는 등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한 각종 사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바뀐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지명을 개명한 것이 시초가 됐다.

사람에게 이름이 중요하듯, 지명은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의 유산을 상징하고, 사회 구성원의 얼이자 정신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 년 이어온 지명은 단순한 표기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표현이자 흔적이다. 우리나라는 섬세하고 정확한 대동여지도와 산경표 등을 비롯한 지리인식에서 독특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뒤틀린 지명이 등장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일본식으로 표기되어 불리고 있다.

국가의 지명을 변경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자료와 근거, 그리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지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지자체 별로 모두 다르고, 중앙정부마저 지명의 종류에 따라 국토해양부, 행정안전부, 국방부 등 부처가 나뉘어져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한 요인이다. 현재 지도와 지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중앙지명위원회에서 승인한 지명을 고시하는 역할만 하고 있을 뿐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빼앗긴 지명 변경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관심이 없는 실정이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는 지명변경 이외에도 행정구역체제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나라 행정체제는 1914년 일제가 편리한 통치와 자원수탈을 위해 진행한 행정체제 강제 개편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때의 개편은 백두대간 산줄기와 물줄기를 통해 형성된 자연스런 마을 생활권과 문화권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행정구역 체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당시에 강제로 개편된 일본에 의해 왜곡되고 뒤틀린 행정구역 체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지역주민의 생활권을 고려하지 않은 체계이기 때문에 큰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하나의 ‘군’을 만들어 산줄기가 ‘면’과 ‘면’의 장벽을 형성해 생활의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환경 분쟁이 발생하고, 생활권과 문화권이 불편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정에서 많은 국토의 변화가 있었다. 도로, 댐 등 대형 토건사업을 통해 원래 지형의 모습이 사라져 일제강점기 이전의 행정구역 체제 등으로 변경 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적인 장벽이다. 하지만 적어도 개발하기 이전의 그 지역에 관한 인문지리, 자연지리적인 조사가 필요하며 그 내용을 남기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동네 이름을 비롯한 지명에는 전설과 설화가 얽혀 있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그 지역의 이야기와 주민들의 삶이 녹아 있다. 홍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천년 홍주라고 부르는 연유는 ‘홍주(洪州)’라는 홍성의 옛 고유지명이 생긴지 1000년이 됐다는 증거다. 인문지리나 자연지리 등의 학술적인 의미와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옛 고유지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전국의 목사고을 중 유일한데도 사실상 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나 단체장은 관심이 없는 것이 홍성의 형국이다. 수도권의 많은 사람들이 ‘충청도 홍성’이라고 하면 ‘강원도 횡성’이나 ‘강원도 홍천이냐’고 반문하는 실정인데도 말이다. 최근에는 중앙의 일간신문에서도 ‘강원도 홍성’이라고 쓰는 현실이 됐으니, 실상 ‘홍성’이란 이름의 수명도 가치를 잃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90%에 이르는 홍성군민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홍주라는 고유지명을 빼앗긴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하고 있으며, 지역주민들 70% 이상이 “홍주라는 옛 고유지명을 되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홍주’라는 고유지명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충남도청내포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외지의 인구가 유입되고 사실 그들에게 ‘홍주’라는 고유지명을 되찾는 일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충남 홍성을 강원도 횡성이나 홍천이냐고 반문하는 것과 같이 지명과 관련한 웃음거리도 많다. 지역을 상징하거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전설은 좋지만 발음이나 의미가 이상한 지명은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멸치축제로 유명한 부산광역시 기장군의 ‘대변항’은 아름다운 어촌  중 한 곳이다. ‘대변(大邊)’은 해변이 크다는 뜻이지만, 사람들은 자꾸만 ‘대변’을 연상한다는 것. 또 경남 양산시 웅상읍 소주리, 충북 제천시 수산면 계란리, 경북 군위군 의흥면 파전리, 전남 완도군 생일면 봉선리, 전남 여천군 돌산읍 평사리의 굴전마을, 경남 김해시 진영읍 우동리, 경기 양평군 양서면 국수리, 충남 청양군 대치면 주정리, 대구 달성군 화원읍 구라리, 전북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 전북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 경기 용인시 처인구 유방동,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 충북 음성군 생극면 생리,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월경리,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방구리, 전남 영광군에는 백수읍이나 전남 고흥군 포두면 상대리 백수마을, 경남 진주시 지수면 압사리, 경기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경기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전북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하품리 등등. 이밖에도 수많은 지명이 웃음거리나 이상한 의미로 해석되는 지명들이 많다. 주위에서는 이 같은 유형의 이름으로 충북 충주지역의 금가면, 살미면, 소태면, 동량면, 산척면, 신니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지명은 △금가면에서는 집을 잘 지어도 금이 간다 △‘살’ 자가 한자 ‘殺’자를 연상시킨다(살미면) △매우 쓰거나 짠 음식을 연상시킨다(소태면)는 소리와 함께 종종 주위의 놀림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결국 지명 변경을 둘러싼 갈등은 여러 곳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대략 지명 변경을 추진하는 쪽은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등의 논리를 펴는 반면, 반대하는 쪽은 “역사성”등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일제 때 붙여진 이름이라면 마땅히 우리 역사성을 띤 이름으로 고쳐야 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사용된 지명이라면 개명에 신중을 기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어감이 나쁘거나 일제 식 행정명칭의 경우 모두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정구역 명칭이 그 지역 첫 이미지를 결정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식 명칭도 아니고 부르기에 나쁘지 않다면 사정이 다르다. 하지만 행정구역의 명칭 변경은 신중해야 한다. 사람 이름을 바꿀 때는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명을 바꿀 때는 해당 자치단체에서 지역 내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모아 구성한 위원회의 회의를 거쳐 통과해야 한다. 그 전에 당연히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 명칭변경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편하게 불리는 지명 사용이 바람직하다. 해당 지역과 연관성이 뚜렷하고 지역 실정에 부합되는 명칭이 좋다.

문화재명이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명, 시설의 자취나 근거명, 주요 공공기관이나 시설명 등을 기준으로 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항상 지명과 관련된 개명 논의엔 의견이 양분되게 마련이어서 여론분열이라는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기존의 관행을 다시 한 번 성찰하면서 지역발전 방안 등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이다. 자치단체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자치단체와 단체장이 앞장서 반목과 갈등을 해소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작은 갈등이 계속되면 큰 갈등이 될 수도 있다. 주민들 사이에선 명칭 변경 찬반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다 보면 알게 모르게 반목이 형성돼 의견충돌과 논란이 있기 마련이다.

홍성에서도 ‘홍주’라는 고유 지명(地名)을 되찾기 위해 범군민운동본부(본부장 오석범 전 홍성군의원)가 발족한 것은 고무적이다. 오석범 본부장은 “충남도청이 80여 년 만에 내포로 이전한지도 3년이 지나고 있으나 내포를 품고 있는 홍성지역은 원도심 공동화 등 숱한 문제점이 늘어가고 있다”며 “1000년의 역사를 가진 홍주의 지명을 되찾아 성삼문과 최영, 김좌진, 한용운, 한성준 등 수많은 위인들의 뜻을 이어가고 홍성지역의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우선 지명을 찾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히고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자칫하면 홍성에서 내포를 분리하고 내포만의 단독 도시가 탄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상태”라고 지적하고 “충남도청시대를 맞아 ‘홍주’라는 옛 고유지명을 되찾아 1000년을 이어온 찬란한 역사의 고장 홍성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동참하여 앞으로 군민들과 함께 ‘홍주(洪州)지명 되찾기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                        

<이 기사는 지역공동체캠페인사업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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