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점에서 한계를 극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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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점에서 한계를 극복하다
  • 장나현 기자
  • 승인 2016.06.17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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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이다>홍성의 인맥-홍성출향인을 찾아서 <8>

철인3종경기 강인규 선수(극동종합상사 대표)

홍성 학계리 고향, 조용하고 평범했던 유년
사업 부도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시작하다
전국 트라이애슬론대회 총 40회 완주 전력
자신의 본모습 마주할 수 있는 대회가 매력

▲ 철인3종경기 강인규 선수.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눈앞의 승부가 아닌 끈기와 인내심을 요하며 앞서거나 뒷서는 사람이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동반자이며 결국 결승선까지 자기 자신과의 승부를 하기 때문이다. 철인3종경기라고도 불리는 트라이애슬론 대회는 수영, 사이클, 마라톤 3종목을 완주해야 하는 경기로 완주를 향해 긴 시간을 자신을 독려하며 달린다. 극종종합상사의 강인규 대표는 위기의 순간에서 트라이애슬론을 만나 인생의 한 페이지를 다시 써내려가고 있다.

“평범하고 순탄하게 별다른 굴곡 없이 50초반을 살아왔었습니다. 5년 전, 20년을 넘게 해오던 사업이 위기에 닥치고 회사는 부도를 맞았었죠. 눈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 고향인 홍성에서 트라이애슬론 대회를 한다는 것을 알고 무작정 신청을 했어요. 당시 사업으로 너무나 힘들었기에 자신을 시험해보고자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강 대표는 홍성읍 학계리2구가 고향으로 조용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학계리에서 학교까지 4km를 걸어 다녔으나 체력장에서 오래달리기는 늘 꼴찌로 들어올 정도로 운동에 흥미가 없었으며 힘들어했다. 어린시절, 동네 형들과 마을 일대를 쏘다니며 개울가에서 개헤엄을 치며 놀았던 기억이 전부일 정도로 수영을 따로 배우지도 않았다.

일정하게 흐르는 강물을 타고 물살의 흐름대로 살던 강 대표는 외환위기 때도 별탈 없이 넘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어음이 몇 달간 미뤄지면서 사업이 부도를 맞게 됐다. 20대부터 안전모, 안정장갑, 안전표지판 등 산업안전용품점에서 일 해왔던 강 대표는 30대에 자신의 사업장을 차리고 산업안전용품 유통을 해왔던 터였다.

▲ 2014 여주그레이트맨 대회에 출전한 강인규 선수가 수영하고 나오는 모습.

강 대표는 그때까지 큰 어려움이 없었기때문에 처음 겪는 위기를 마주하기에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20대부터 객지생활을 하던 강 대표가 어렵다고 익히 들어왔던 트라이애슬론에 눈길이 간 이유는 ‘홍성’이라는 글자가 왠지 모르게 끌렸기 때문이다. ‘이번 딱 한번만 도전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강 대표는 제일 싼 수트와 저가의 사이클을 구매해 서부면 포구에서 열리는 제2회 김좌진 장군배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참여했다.

“오직 완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질 않더군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주변이 온통 산인지 바다인지 사람들인지 보이질 않았죠. 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너무 힘드니까 결승선 들어오자마자 다시는 않는다며 욕을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다시 이곳을 찾는 것을 보면 그만큼 매력이 넘치는 대회이기 때문이지요.”

남들이 보기에는 극한으로 치닫는 운동처럼 보이는데 강 대표는 트라이애슬론이 생활체육이라고 강조했다. 평소에 꾸준히 해놓지 않으면 대회 때 갑자기 잘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수영을 한 시간 하고 매주 화요일 퇴근 후 동호인들과 10km 달리기를 하며 기초체력을 유지한다. 주말에는 격주로 마라톤을 가고 사이클을 타며 대회에 대비한다.

▲ 설악그라폰다대회에 출전한 강인규 선수.

강 대표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6회 정도 대회에 참여해 왔는데 작년에 몸에 무리가 왔다. 평소처럼 연습을 하고 나면 감기몸살처럼 앓아 대상포진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당분간 쉬라고 했지만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었던 강 대표는 4월에 듀애슬론 대회에 나가고나서 숨을 쉬기 어려워서 병원을 찾고 폐에 물이 찬 늑막염 진단을 받았다. 물을 빼내고 폐결핵까지 와서 작년 한해는 대회를 나가지 못 했기에 올해 나가는 대회는 처음 대회에 나갈 때처럼 감회가 새롭다고 한다.

▲ 2016 설악그라폰다 대회에 출전한 강인규 선수.

강 대표의 가족들은 강 대표에게 무한의 애정을 보였다. 그의 아내는 처음 경기당시 몇 년 동안 함께 하며 몇시간의 대회를 끝마칠 때까지 현장에서 응원을 보냈다. 지금은 목동철인클럽의 동호인들이 그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대회를 완주하면 은색의 완주메달이 주어지는데 대회에 참가횟수가 많아질도록 메달도 쌓여갔다.

“딸 아이 학교 다닐 때 상장을 많이 타왔는데 휴지로도 못 쓰는걸 가져왔다고 농담으로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딸의 마음에 깊이 남았었나봐요. 제 메달이 쌓여가는 것을 보더니 20대 중반인 딸이 제게 ‘아빠, 엿으로도 못 바꾸는 걸 뭣하러 가져왔대요’라고 하더군요. 제가 한 방 먹었네요. 하하”

아들과 함께 수영장에 가고나서 20대 아들은 놀랐다고 한다. 아들은 수영장 트랙을 몇 바퀴를 돌고 지쳐서 쉬고 있는데 아버지는 1시간을 쉬지 않고 도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정말 대단해 보이고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트라이애슬론대회는 코스의 길이에 따라 스프린트코스, 올림픽코스. O2코스, 킹코스 등으로 나뉜다. 그중 가장 어렸다는 킹코스는 수영 3.8㎞, 사이클 180㎞, 마라톤 42.195㎞를 17시간 안에 완주해야 하는 극한의 레이스다. 강 대표는 킹코스에 참여하면 15시간 정도를 자신을 마주하며 뛴다.

▲ 2015 송도 듀애슬론대회에 참가한 강인규 선수.

“킹코스에 참여해 뛰다보면 오직 자신 밖에 보이질 않아요. 나와의 길고 긴 싸움이니까요. 그런데 몸이 불편한데도 대회에 참여하시는 분들을 간혹 볼 때가 있어요.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은 분이 두 다리로 수영을 하며 뛰는 모습을 볼 때면 절로 박수가 나오고 그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집니다.”

서울에서 터전을 잡고 있는 강 대표는 귀촌할 생각을 하고 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으로 구제척인 계획은 잡히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고향에 돌아가야겠다는 귀소본능이 있다고 한다. 강 대표는 고향에 내려오면 고향사람들과 함께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목표를 향해 기록을 쫓은 적도 있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대회를 즐길 수 있게 되었네요. 특별한 성취감을 느끼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홍성사람은 언제든 제게 연락바랍니다.”

▲ 2013 양구하프대회에 출전한 강인규 선수가 수영 후 사이클을 타러 이동 중인 모습.

강인규 대표…
강인규 대표는 홍성읍 학계리 2구에서 태어나 홍남초, 홍성중, 홍성고(33회)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안전보호구 유통업계에 일해왔으며 1994년 극동종합상사를 개업해 운영하고 있다. 2011년 부도 위기를 맞아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참가해 제2회 김좌진장군배 전국 트라이애슬론대회 완주를 시작으로 2012년 이충무공배 아산전국트라이애슬론대회(올림픽) 완주, 제3회 백야김좌진장군배 전국 트라이애슬론 대회(올림픽) 완주, 남한강 여주 트라이애슬론대회(올림픽) 완주, ITU통영 트라이애슬론월드컵(올림픽) 완주, 제1회 해양경찰청장배 전국 트라이앵슬론선수권대회(올림픽) 완주했다. 2013년 ‘목동 철인’에 가입 후 제8회 국토정중앙 강원양구전국 철인3종 경기대회(하프)완주, 제2회 해양 경찰청장배 트라이애슬론 대회(올림픽) 완주, ITU통영 트라이애슬론월드컴 (올림픽) 완주했으며 2014년 제9회 강원양구철인3종경기대회(하프) 완주, 금강백제 철인3종 경기(킹코스)를 완주했다. 2015년 전국 듀애슬론대회 완주, 2016년 전국 듀애슬론대회 완주, 자이언트 설악그란폰도 완주, 제7회 김좌진장군배 전국 트라이애슬론대회를 완주했으며 지금까지 총 40회 경기에 참여했다. 

글=장나현 기자/ 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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