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헌책방의 대명사 국내 1세대 ‘공씨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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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헌책방의 대명사 국내 1세대 ‘공씨책방’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5.0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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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5〉
서울시가 ‘서울 미래유산’과 관련된 제도들을 보완하는데 계기가 된 ‘공씨책방’

 

헌책방의 존재와 의미도 알리고 서울시 미래유산으로도 지정돼
헌책방이 하나의 문화적 자산이라는 인식을 전환한 계기되기도
헌책방, 마을문화를 이루는 밑바탕이자 지역문화의 실핏줄 같아
공씨책방, 1972년 동대문구 이문동 경희대 앞에 처음 문을 열어



서울시는 헌책을 사고파는 공간을 정기적으로 마련해 화려한 도심 속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헌책방을 살리고, 헌책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또한 오랜 역사를 품은 헌책방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해 문화유산으로서 헌책방의 의미를 되새기고 보존 가치를 높이고 있다. 헌책방과 한 발짝 벗어나 있을 것 같은 젊은 세대도 헌책방 지킴이로 나섰다. 대학생들이 젊은 감각을 반영한 창의적인 방식으로 헌책방 주인과 함께 자생의 움직임도 일고 있다. 서울시가 얼마 남지 않은 헌책방을 시 차원에서 시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헌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헌책을 구매했던 중장년층뿐 아니라 헌책방의 존재를 모르고 컸을 젊은 세대들에게도 헌책방이 살아있음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도서관은 지난 2015년부터 평화시장서점연합회와 함께 ‘청계천 헌책방거리 책 축제’를 열어 북커버 제작, 헌책 판매, 작품 전시 등 헌책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헌책방 거리가 있음을 알리고 헌책 문화를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다. 또 헌책방을 살리기 위한 활동은 청계천 헌책방거리에 한정하지 않는다. 중고헌책방, 시민 등이 내놓은 중고 서적을 싼값에 살 수 있는 ‘한 평 시민 책 시장’도 일정 기간 장소를 달리하며 7년여 째 진행되고 있다. 한강 몽땅 여름축제 하나로 열리는 ‘한강다리 밑 헌책방 축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에는 8월 1일부터 15일까지 펼쳐진 행사에는 서울·경기·전남지역 헌책방 200여 곳의 고서와 단행본, 어린이 도서 등 10만 권을 전시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도 했다.


■ 서울시, 헌책방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

서울시는 또한 청계천 헌책방거리 등 오래된 서울소재 헌책방을 시민생활사적 가치를 인정해 지난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과 감성을 지녔다는 가치를 인정한 셈이다. 서울미래유산 가운데 단일 헌책방으로 유일하게 지정된 곳도 있다. 지난 1972년에 처음 문을 연 국내 1세대 헌책방으로 알려진 ‘공씨책방’이 그곳이다. ‘공씨책방’은 미래세대에 남겨주도록 보존가치가 있음을 인정받아 2013년에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헌책방이 하나의 문화적 자산이라는 인식을 전환한 단적인 예다. 헌책방이 그냥 개인사업자가 아닌 마을 문화를 이루는 밑바탕이자 지역 문화의 실핏줄과 같다는 대목을 인정한 것이다. 서울미래유산은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지만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유산을 보존하자는 취지다. 동네 헌책방이 서울미래유산으로 뽑힐 수 있었던 까닭은 오래된 헌책방의 방대한 중고서적과 수십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운영자의 해박한 지식, 다시 말해 ‘내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1세대 헌책방인 ‘공씨책방’은 1972년 동대문구 이문동의 경희대 앞에 처음 문을 연 이래로 자리를 옮겨 가며 지금까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창업주 공진석 씨의 성을 딴 이 책방을 지금은 처조카 장화민 씨가 남편 왕복균 씨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공씨책방’을 맡아 운영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가족보다 책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공진석씨는 1990년 7월 50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 광화문 교보문고 옆에 ‘헌책방 교보문고’를 꿈꿨던 그는 재개발로 헐리게 될 ‘공씨책방’이 옮겨갈 자리로 빵집자리를 찍어두고 건물주한테 편지를 쓰고 만나는 등 설득했다. 결과는 언감생심, 씨도 먹히지 않았다. 꿈과 현실의 간극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그는 서대문구 문화촌의 대양서점에서 논문집 30여권을 사서 시내버스를 타고 책방으로 돌아오던 중 유진상가 언저리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이러한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하면서 7년 동안 이모부의 책방 일을 도왔던 장 씨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다가 불가피하게(?) 이모부의 뒤를 잇게 됐다는 설명이다. 장 대표는 “이모부한테 말로만 들은 책방 주인들을 만나 이어진 끈을 하나씩 잇고 조각들을 모아 맞춰 완전한 이모부를 재구성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나름대로 눈이 틔어 팔기만 할 때 누려보지 못한 재미도 누리게 됐다. 책이 어디 있다 약속된 것은 아니어도 가면 생각지 않은 책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벌써 16년째, 이젠 이력이 붙어 조목조목 야무진 책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저녁 7시면 이모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동묘 앞으로 갔어요. 거기에는 자전거로 책을 수집해 온 중간상들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분들은 이모부가 도착해야 책을 풀었다고 해요. 이모부는 책을 사서 묶고 마무리하고는 그분들과 소주 한잔을 하곤 했대요.” 장 대표가 이모부인 공진석 공씨책방 창업주에 대한 회상이다.


■ ‘공씨책방’이 오래 남았으면 하는 이유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도무지 헤어나지 못하는 광화문의 개미귀신굴을 아십니까. 책을 사랑하시는 분은 광화문을 지나치실 때 공씨책방을 조심하십시오.” 그곳은 44평 3만권의 책이 빼곡해 책벌레를 잡아끌어 시간을 잊게 만들었다. 또 신림동 289번 버스 종점 옆에 50평 분점을 내 서울대학생들에게 책을 공급하고 그들과 고담준론을 나누기를 바랐다. 이후 광화문의 숭문사란 새 책방 옆에서의 ‘공씨책방’은 재개발로 신촌으로 밀려났다. 몇 년 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던 창천동 건물을 떠나 창천동의 다른 건물 지하(서대문구 신촌역에서 동교동으로 넘어가는 이화여대 사이의 고갯마루 버스정류장 앞, 신촌로 55-2인 창천동 112-5)에 ‘공씨책방; 02-336-3058)’이란 간판을 걸었고, 또 성동구 성수동의 ‘안심상가’(성동구에서 제공하는 낮은 임대료의 상가-건대입구와 한양대역 사이, 광장로 130)IT캐슬 1층으로 분가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분점하나 낸다 생각하고 편하게 마음을 먹었다’고 전한다. 이때 공간 문제로 미처 옮기지 못한 1만 권은 김포에 창고를 빌려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의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공씨책방’이 오래 남아 있었으면 하는 이유는 우리 문화사랑방이자 지식의 숨은 보고이며, 우리나라 헌책방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책방이 문 닫을 위기에 처했을 당시 ‘서울시 해당 부서에 문의도 했지만 개인 간 거래의 문제라며 지원 대책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장화민 대표는 “기존 책방을 지켜내고 보존할 수 있는 세부 정책이 없어서 결국 지금의 자리와 성수동으로 나뉘어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지만, ‘공씨책방’ 문제를 계기로 ‘서울미래유산’과 관련된 제도들이 많이 보완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 이전한 저희 책방의 경우도 기업 후원으로 1년 7개월 정도 임대료를 지원 받게 됐구요. 매년 문화정책비가 많이 책정되는데, 일회성 축제를 주최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사라져가는 헌책방들을 좀 살려주는 방향으로 장기적 지원을 해줘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촌에서 책방을 지키는 장화민 공씨책방 대표와 함께 성수동 공씨책방 분점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남편 왕복균 씨는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100년 지나도 지키고 보존해야 할 책이 있다. 도서관, 박물관, 문학관에 있어야 할 책이 헌책방에 있기 때문”이라며 오래된 헌책방의 보존 필요성을 강조했다. 왕 씨는 또 “지자체에서 관심과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헌책방을 살릴 수 있다”며 “헌책방을 모두 다 살리자는 게 아니다. 오래된 헌책방을 선별해 활성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으며 헌책방을 살리는 일은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미래유산인 ‘공씨책방’마저 높은 임대료에 밀려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만 했던 헌책방이 얼마나 우리의 곁에서 문화사랑방으로 지식의 보고로써 언제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절판되고 오래된 책을 찾을 수 있을지…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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