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오운마을, 기와집과 어우러지는 토석담·돌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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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오운마을, 기와집과 어우러지는 토석담·돌담 길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한지윤·이정아 기자
  • 승인 2019.08.2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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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돌담길의 재발견<11>
경남 의령의 오운마을 옛 돌담은 막돌과 진흙을 섞어 쌓거나 돌과 돌 사이에 강회를 발라 빗물이 스미지 않도록 쌓은 토석담이 주를 이룬다.

수려한 산세와 어우러져 밖에서는 마을이 보이지 않는 요새지형
돌담과 탱자나무울타리 한옥과 오래된 큰 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담 높이 2m, 폭 60cm, 길이 40cm 막돌·진흙을 섞는 전통방식
막돌로 쌓을 경우 돌과 돌 사이 강회 발라서 빗물 스미지 않도록 


경남 의령군 낙서면 오운마을은 낙서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위치해 있다. 낙동강 남쪽자락 오지마을인 오운의 풍경에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마을로 꼽힌다. 마을의 방향은 동남향으로 뒷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전형적인 농촌 풍경과 산촌의 풍경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 수려한 산세와 어우러져 밖에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 요새지형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야 그제야 마을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마을의 이름은 오은마을, 운곡마을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지명 정비 때 오운으로 개명됐다고 한다.

사연은 마을 어귀에 날아온 까마귀 두 마리를 보았는데, 까마귀가 다시 날아가는 것을 보지 못해 까마귀가 숨어들었다고 해서 오은(烏隱)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 낙동강이 흐르고 동네 뒤에는 대덕산이 막아 서 있어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지형이라 구름실, 굼실, 운곡(雲谷)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이후에 다섯 골짜기에 구름이 지나간다고 해 오운(五雲)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나는 까마귀 집에 해당되는 터로 다섯 성받이로 이씨, 전씨, 최씨, 김씨, 박씨가 구름처럼 번창할 지운지세라서 오운으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이 마을에 칠천석이나 하는 부자형제, 칠형제의 이름 항렬자가 구름 운(雲)자라 두 이복형제를 뺀 채 다섯 형제 이름자를 따서 동네이름으로 삼았다는 내력도 전해져 내려온다. 이런 사연 때문인지 시집 올 때, 신반장에 갈 때 넘어 다닌 골짜기가 있으며, 까막곡, 가라곡, 빈둥메, 부무골, 동산미 등 구술로 전해지는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 막돌과 진흙으로 쌓는 전통 축조방식
의령 오운마을에 가면 이제는 보기 어려운 정겨운 옛 담장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돌담이나 토석담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단지 몇몇 곳에서만 남아 있다. 오운마을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오운마을의 옛 담장은 주로 토석담으로 돼 있다. 그밖에 돌담과 탱자나무 울타리도 있다. 이들 담장이 늘어선 좁은 골목길은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래서 더 그리워진 골목길이다.

특히 오운마을에는 기와집과 함께 옛 담장은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밖에 돌담과 탱자나무울타리가 함께 구성돼 있다. 한옥과 오래된 큰 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토석담은 높이 1.5~2m, 폭 40~60cm 정도인데, 길이 20~40cm 방형의 막돌과 진흙을 전통적인 축조방식에 따라 쌓은 것이 특징이다. 돌담은 주로 막돌을 높이 1.5m가량 안팎으로 쌓았는데, 골목과 접하지 않은 옆집과의 경계에 담이나 축대를 만들 때 많이 사용했던 막돌담 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한옥에 둘러친 탱자나무 울타리가 돌로 쌓은 기단 위에 조성돼 있어 더욱 이채롭게 보인다. 담쟁이덩굴과 어우러지는 옛 담장마을은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며 다정다감한 느낌마저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옛 담장 등록문화재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자부심 또한 대단한 것이 의령군 낙서면 오운마을이다.

의령군 낙서면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제35대, 742~765)때 의상현에 속했던 지역이었으며, 강양군(지금의 합천군)의 속현이었다. 낙동강의 서쪽지역이라서 ‘낙서’란 지명을 썼다고 전해진다. 고려 공민왕(1389~1392) 때 의령현에 편입된 이후 전혀 변동이 없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먼저 입향하기는 강씨와 전씨였고, 그 뒤에 벽진이씨가 들어와서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마을을 둘러보면 이제는 보기 어려워진 정겨운 옛 담장을 집집마다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몇 곳에만 남아있는 실정이지만 이들 담장이 늘어선 좁은 골목길은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래서 더 그리워진 골목길이다.

오운마을은 토석담과 돌담이 1000m나 되고 탱자나무 울타리가 200m 정도나 된다고 한다. 지난 2007년 11월, 등록문화재 제365호로 지정돼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옛 담장마을이다. 그림 같은 꽃들과 노거수가 더욱 조화를 이루고 있다.
 

■ 담장과 옛집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모두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들인데, 다름 아닌 담장이 그 역할의 중심에 있다. 이렇듯 문화재로 지정된 곳 이외에 마을에 새집이 들어서도 이웃에 이어진 옛 담장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마을의 초기 구성원리가 잘 남아 있고 동네의 민심도 여전한 것을 볼 수 있다. 더불어 담장과 함께 옛집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어 좋은 연구 자료이기도 하다.

이렇듯 담장은 한옥마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담장의 역할이 경계를 삼기 위함이고, 장식을 통한 행인에 대한 배려이며, 높이를 통한 권세의 과시 등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역할은 동선을 유도하기 위함일 것이라 생각된다. 바람을 막기 위해 담장을 축조한 경우도 많았지만, 특히 담장은 남녀유별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요긴한 장치이기도 했다. 또한 담장 쌓는 재료와 쓰임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토담, 돌담, 판장, 목책, 그리고 바자울이나 탱자나무 등을 심어 만들기도 한다. 막돌로 쌓을 경우에는 돌과 돌 사이에 강회 등을 발라 빗물이 스미지 않도록 정갈하게 쌓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오운마을에서는 벽진이씨 일가와 관련된 역사문화자료가 많다. 100년 된 기와집 역시 그 중 하나이다. 마을에서 유력한 가문이었던 벽진이씨 일가는 약 100년 전 기와집을 함께 지어 올렸다고 한다. 종가의 본채와 그 뒤편 곡선미를 자랑하는 옛 담장이 멋스런 자태를 보여준다. 이우일 고가와 이태오 고가도 옛 자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후 6·25한국전쟁을 거쳐 지금까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집은 몇 채 되지 않는다. 이민수, 이종철, 이우일, 이광수, 이태오, 이헌책의 고가가 그것이다. 지금은 생활상 편리를 위해 곳곳에 개조와 보수 흔적이 있지만, 골격과 서까래는 1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의령은 북쪽에 합천, 서쪽에 산청, 남쪽에 진주, 동쪽에 함안과 창녕이 붙어 있고 남북으로 낙동강, 동서로 남강이 지나간다. 물이 사방으로 흐르고 있는 의령에 오래된 그윽한 마을이 없을 리 없다. 굽이 흐르는 낙동강 강변, 낙서면에 오운(五雲)마을이 있다. 민가와 반가가 섞여 있고 집성촌보다는 여러 성씨가 모여 사는 산성촌(散姓村)에 가깝다. 전씨가 22가구로 제일 많고 이씨가 14가구, 최씨가 4가구, 그리고 강씨, 구씨, 김씨, 50여 가구가 모여 산다고 한다. 여러 성씨가 모여 살다 보니 이웃 간 정이 핏줄보다 더 두텁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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