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가한 백담사, ‘님의 침묵’ 집필한 마음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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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가한 백담사, ‘님의 침묵’ 집필한 마음의 고향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8.2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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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만해 열반 75주년 기획<20>
만해 한용운이 첫 출가한 백담사에는 만해동상과 만해당, 만해기념관 등 만해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다.

대청봉에서 절까지 계곡의 웅덩이가 100개나 있다고 해서 백담사
만해 ‘님의 침묵’과 ‘불교 유신론’ 집필하며 독립정신 깨달은 장소
1996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 만들고 1999년부터 ‘만해축전’ 개최
만해마을, 만해정신 되새기는 만해 한용운의 ‘성지(聖地)’로 거듭나


강원도 인제의 백담사는 피안(彼岸)의 사찰이다. 오르는 계곡은 피안의 세상을 여는 아늑한 통로다. 백담사는 또한 만해(卍海) 한용운 선사의 절이기도 하다. 깊은 인연 때문이다. 20세 때 처음 백담사를 찾은 만해 스님은 25세 때 다시 백담사에 들어와 이듬해 이곳서 출가했다.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 ~1944)의 유적지는 크게 세 곳을 꼽을 수 있다. 출생지인 충남 홍성과 처음으로 출가한 백담사, 그리고 만년을 보낸 서울 성북동의 거처 심우장(尋牛莊)이 그곳이다. 이 가운데 문인으로, 독립운동가로서 만해의 정체성이 확립된 곳이 백담사이다. 청년기의 방황 속에서 출가의 결심을 굳힌 만해는 스무 살 때 처음 백담사에 들렀고, 5년 후엔 다시 백담사를 찾아 스님이 됐다. 백담사와 오세암 등에서 ‘기신론’과 ‘화엄경’을 비롯해 ‘원각경’ 등 불교경전을 공부하며 승려로서 기본소양을 닦았다. 이곳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젊은 날의 기억 때문인지 만해는 백담사를 특히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1독립운동으로 3년 동안의 옥고를 치른 후에는 백담사에 칩거해 시집 ‘님의 침묵’과 ‘조선불교유신론’ 등 명저를 집필하기도 했다. 만해의 몸이 도시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도 백담사는 ‘마음의 고향’ 역할을 했던 곳이다.

■ 조선 정조 때 백담사란 이름을 얻어
설악산 자락의 깊숙한 품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백담사는 신라 제 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세운 절이다. 처음에는 한계사라 불렸으나 이후, 대청봉에서 절에 이르기까지 계곡의 웅덩이가 100개나 있다고 해서 백담사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백담사의 백담은 흰 물웅덩이가 아니라 일백 백의 물웅덩이를 말한다고 한다. 10여 차례 소실됐다가 6·25한국전쟁 이후 1957년에 재건된 백담사는 민족의 질곡과 역사를 반영하듯 긴 세월 동안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며 총 아홉 번의 환골탈태를 거쳐 오늘날의 백담사에 이르렀다는 것이 백담사를 지키고 있는 스님의 설명이다. 사찰명도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축사 등 여러 이름을 거쳤고, 조선 정조 때 비로소 백담사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백담사 입구에는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맑고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백담계곡이 흐르고 많은 방문객들이 저마다의 발원을 담아 쌓아올린 돌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한여름 장마철이라 계곡물이 불어나 쌓아놓은 돌탑들은 거의 대부분 휩쓸렸지만 말이다.

이 돌탑들은 백담사가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수심교(修心橋) 주변 계곡에 펼쳐진 돌탑들은 백담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쌓은 것과, 관광객들이 쌓은 돌탑이 어울리고 합해져 신비로운 풍광을 연출한다는 설명이다. 얼핏 보면 마이산 탑사의 축소판 같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백담사 수심교 주변 계곡에는 어떤 이는 근심을 덜기 위해, 어떤 이는 취업을 소망하며 한 층 한 층 켜켜이 정성껏 쌓아 올린 돌들이 작은 탑이 된다는 것이다. 돌탑 중 일부는 계곡을 휘돌아 부는 바람에 무너지거나 한여름 폭우에 휩쓸리기도 한다. 백담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수심교를 지나면 백담사 전각들이 위용을 드러낸다. 경내로 들어서 삼층석탑을 지나면 정면으로 보이는 중심법당 극락보전에는 보물로 지정된 목조아미타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또한 이를 비롯해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요사채, 부속암자로는 봉정암, 오세암, 원명암 등이 있다.
 

■ 백담사, 만해의 세계관·정신의 산실
백담사 경내 한쪽에 마련된 만해기념관에서는 만해 한용운의 발자취를 한눈에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만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과 ‘불교대전’ 등의 저서를 비롯해 ‘님의 침묵’ 초간본 등 100여 종의 판본이 전시돼 있다. 만해 한용운이 ‘님의 침묵’과 ‘불교 유신론’ 등을 집필하며 독립정신을 깨달은 장소인 백담사 이곳저곳에는 만해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만해 한용운은 근대사 격량의 회오리 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었다. 갑오 동학농민혁명, 청일전쟁, 노일전쟁을 치르면서 조선의 민중들이 무참히 쓰러져 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용운은 지금은 한가롭게 책이나 읽을 때가 아니라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하여 생각할 때라고 판단하고서 그의 나이 19세에 강원도의 이름난 도사를 찾아 출가한다. 그리해 몇 날 며칠을 걸어 당도한 곳이 내설악 백담사였다. 백담사에 만해 한용운이 도착한 때는 1904년, 일제의 검은 손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던 시절이었다. 만해는 새로운 질서와 철학을 찾아 이 깊고 깊은 산중까지 왔던 것이다. 내설악의 영봉과 물소리가 마음을 씻는 백담사에 발길을 멈추고 1905년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수도에 정진한다. 한용운은 설악의 심장부에 있어서 인연 있는 중생이 아니면 발길이 닿지 못하는 백담사에서 이렇듯 철저한 수련과 정진으로 1910년에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한다. 만해는 1915년 백담사가 화재를 만난 이후에는 오세암에서 주로 정진하게 된다. 오세암은 백담사에서 산길을 따라 30리를 오르면 설악의 영봉을 병풍처럼 두룬 연꽃의 형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부속암이다.

이렇듯 백담사는 만해의 세계관이 수립되고, 만해의 철학이 잉태되고 성장한, 만해 정신의 산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만해’하면 백담사이고 ‘백담사’ 하면 곧 만해를 떠올릴 만큼 깊은 관계가 맺어진 장소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만해의 문향(文香)과 정신도 조금씩 탈색돼 가는 것을 뜻있는 사람들은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백담사는 만해가 세상을 떠난 이후 만해의 자취가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설악산의 조용한 산사(山寺)로만 알려졌던 백담사가 다시 한 번 ‘만해의 절’로 거듭나게 된 것은 지난 1977년 외설악에 있는 신흥사의 주지를 맡았던 오현 스님 때문이었다고 한다. 원로 승려이자 저명한 시조시인이기도 한 오현 스님은 불교계와 문단의 대선배인 만해의 정신을 되살리는 데 힘을 쏟았다. 백담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극락보전이 보이고 좌우로 화엄실과 법화실이 보인다. 일주문에서 오른쪽을 보면  ‘ㄱ’ 자형의 전통 한옥을 만나게 되는데 이 건물이 ‘만해기념관’이다. 그리고 만해 한용운의 ‘나룻배와 行人’의 시비를 세우고, 이어 1997년 ‘만해상’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99년부터는 백담사에서 조선일보의 후원을 얻어 해마다 여름이면 ‘만해축전’을 개최하면서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일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이른다. 설악에서 만해의 자취와 흔적이 점점 지워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오현 스님은 지난 1996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만들고 1999년부터 백담사에서 ‘만해축전’을 개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어 2003년에는 백담사 계곡 입구의 1만7450㎡의 부지에 ‘백담사 만해마을’을 만들기도 했다. ‘만해문학박물관’과 ‘만해사(寺)’를 비롯해 ‘만해학교’와 ‘님의 침묵 광장’과 만해 동상 등이 들어선 ‘만해마을’은 언제든지 만해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명실상부한 ‘만해 한용운의 성지(聖地)’로 거듭났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만해축전‘이 백담사 만해마을 일원에서 펼쳐지고 있다.

올해에도 지난 8월 11~14일까지 강원도 만해마을과 인제군 일원에서 ‘2019만해축전’이 ‘자유·평화’란 주제로 열렸다. 이번 제23회 만해대상에는 만해평화대상에 와다 하루키(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만해실천대상에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센터(정기현 원장, 문성우 센터장), 만해문예대상에 김우창(고려대 교수), 임영웅(국단 산울림 대표)가 각각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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