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산디마을, 울창한 숲과 돌탑 신앙의 자연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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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디마을, 울창한 숲과 돌탑 신앙의 자연성지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한지윤 기자·신우택 인
  • 승인 2019.08.3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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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시대 공동체의 삶과 생명의 공간이다<17>
대전 장동 산디마을 느티나무 노거수 옆의 돌탑(할머니 탑).

계족산 산디마을 쭉쭉 뻗은 소나무 사이로 온갖 잡목 우거져
산디마을 돌탑, 1998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5호로 지정돼
과거에는 마을 입구에 울창한 숲 조성, 풍수비보림 기능을 해
주변 수림지와 자연경관까지도 보호되는 자연성지로서의 특성


산디마을은 계족산 동북쪽에 웅크린 작은 마을이다. 산디라는 이름은 마을이 계족산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는 데서 유래한다. 좁고 기다란 계족산 북쪽 골짜기는 장동에서 시작해 금강변 용호동 하용호까지 4㎞가량 이어지는데, 마을이 열두 골짜기에 자리 잡았다는데서 열두 산디로도 불린다. 징골·욕골·새골·터골·새뜸·산디 등 여섯 개 자연마을이 장동에 몰려있는데, 산디마을은 그중 계족산 정상 가까이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 깃들어 있는 마을이다.

산디마을의 전통가옥은 계족산 하단의 경사면을 따라 계단식으로 올라가며 형성돼 있다. 이러한 모습이 벌집을 닮아 마을은 ‘벌 터’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여전히 땔감을 구해다 아궁이를 지피는 가옥이 있을 정도로 옛 모습이 잘 보존된 마을이다. 주민들은 본래 농업을 생업으로 알고 살아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산림욕장과 계족산 둘레길 등을 찾는 외지인들과 등산객의 증가로 마을에 요식업소도 한 곳, 두 곳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한다.

여름철의 계족산과 산디마을은 신록으로 덮여있어 특정 숲을 마을의 대표 숲으로 부르기란 난망한 일이다. 계족산에는 쭉쭉 뻗은 소나무 사이로 온갖 잡목이 우거진 모습이다.

그러나 산디마을 서쪽 입구 탑 거리를 그늘로 덮은 느티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림만큼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청량한 물소리와 어우러져 계족산의 여느 숲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 대전 장동의 산디마을은 자연성지
자연성지는 ‘성지(Sacred sites)’의 일종으로 자연적인 지역뿐만 아니라 인공적이거나 기념물적인 지역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그 범위는 나무 한 그루에서부터 한 지역 전체까지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곳 대전 장동의 산디마을은 자연성지다.

이 마을은 자연성지가 지니는 생물다양성뿐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미적 가치를 아우르는 통합적 개념을 안고 있으며, 유·무형적 유산에 해당하는 돌탑 등이 민간신앙과 결합해 해당 지역주민들에게 신성시되면서, 오늘날까지 자연성지로서의 모습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일부 자연문화재(천연기념물, 명승) 등이나 신앙의 대상으로서 행해지는 제례나 굿, 돌탑 등의 향토유적, 무형문화재 등의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당산목이나 당산 숲 등을 중심으로 입지적 특성, 생물다양성, 식생현황 등 생물학적, 민속학적 측면에서 볼 때 당산제의 경우 대부분이 나무 앞에서 제를 모시기 때문에 노거수나 신당수 등 수목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입석이나 돌탑은 당산제와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는 경향을 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데 당산이 나무, 입석, 돌탑 등 여러 형태의 신체를 가질 수 있고 실제 마을의 돌탑 중 57%정도가 제례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통계로 볼 때 돌탑을 신앙의 대상으로 봐야 할 당위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돌탑은 노거수나 산, 폭포 등 기존 자연물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민간신앙과 달리 돌이 지닌 반영구적 특성에 기인한 신앙적 대상이자 주민들이 정성을 들여 쌓아올린 원초적, 인공적 산물이라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대전 장동의 산디마을 돌탑은 탑제와 함께 1998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지속적인 보호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전국의 돌탑 신앙 가운데 가장 원형적인 모습을 간직 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산디마을의 돌탑신앙 또한 산디마을 주민들의 보호의식과 관련지을 수 있다. 과거로부터 신성시돼 오던 돌탑은 1970년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행해졌던 미신타파운동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제관으로 선정된 주민은 탑제를 앞두고 엄격한 금기와 재계를 수행하는 등 탑제를 경건한 의식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탑이 무너질 경우 주민들의 자구적인 보수가 이뤄지기도 한다.
 

할머니 탑 건너 길가의 원추형 돌탑인 할아버지 탑.

■ 울창한 숲 조성 풍수비보림의 기능
한편 금강 하류지역으로 갈수록 돌탑신앙이 점차 희소해지고, 서해를 끼고 있는 홍성·보령·서산·태안 등의 내포지역에서는 전승되는 사례를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크다는 평가다. 대전 장동 산디마을의 돌탑은 마을 입구 계곡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2개의 탑으로 할아버지 탑, 할머니 탑으로 불리고 있다. 돌탑의 형태는 잡석을 쌓아올린 원추형으로 국내 돌탑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유형에 해당한다. 할아버지 탑은 산비탈의 경사에 기대어 축조돼 있으며, 작은 머릿돌을 올려두었다. 할머니 탑 또한 원추형 돌탑으로 두 그루의 노거수에 기대어 있으며, 뾰족한 형태의 머릿돌이 세워져 있다. 또한 돌탑 주변에는 느티나무 고목과 함께 나무가 우거져 있고 물이 흐르고 있다. 산디마을은 예로부터 벌집 또는 장군 형국으로 마을입구가 마을을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좁을수록 마을이 풍요로워 진다고 여겼다. 과거에는 마을 입구에 울창한 숲이 조성돼 풍수비보림의 기능을 했다. 1938년에 세워진 조림불망비(造林不忘碑)에 의하면 골짜기에 부는 강한 바람을 막고자 하는 방풍림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돌탑은 이 수림지의 경계에 위치해 마을의 입구를 상징하는 장승이자, 외부로부터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서낭신으로 인식돼 왔다.

따라서 매년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탑제를 지내고 있다. 탑제는 지난 1998년 7월 21일 대전시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오늘날 자연성지는 외부의 위협요소가 산재해 있다. 자연성지가 제도권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 지속적인 보호관리 뿐만 아니라 자연성지로서의 인정 자체도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 자연성지의 위협 요인으로는 개발사업에 따른 자연성지의 침범과 현대화에 따른 신앙체계의 전환 등을 들 수 있다. 산디마을 일대는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마을로 진입하는 소로는 과거 우마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하지만 1959년 미군부대가 장동 일대로 들어오면서 확장됐으며,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대덕구청에서 진입도로를 확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2015년 산디마을 진입로 주변에 오토캠핑장이 조성되면서 마을의 수림지와 면적이 상당 부분 축소됐으며, 2012년 실시한 하천정비공사는 할아버지 탑과 할머니 탑 사이의 시냇물 주변에 콘크리트 제방과 데크, 징검다리를 설치하면서 과거의 경관이 변화됐다고 전한다. 현대화에 따른 신앙체계의 전환은 마을 내부적으로 탑제의 전승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마을 주민들의 노령화와 젊은 층의 이주로 인한 공동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며, 외부로부터 이주해온 주민들은 마을 행사에 불참하면서 탑제의 준비와 시행이 필요한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일례로 탑제 이후 실시하는 풍물놀이 또한 마을 주민들로 충당하기 어려워 대전시와 대덕문화원에서 풍물놀이패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갹출하는 금줄의 양도 상당부분 감소해 외부의 인력을 들여 탑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산디마을 돌탑은 오랜 기간 동안 산디마을 주민들에게 서낭신, 액막이, 풍수적 비보 장치로서 신성시돼 왔으며, 자구적인 보수가 이뤄지는 등 지역공동체의 보호의식이 보존요인으로 작용해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 주변의 수림지와 자연경관까지도 보호되는 등 자연성지로서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도로확장이나 하천정비 등의 개발 사업에 의해 자연성지의 파편화가 이뤄졌으며, 현대화에 따른 탑제 수행 인력의 부족과 전통 신앙에 대한 무관심 등이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데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옥천전씨(沃川全氏) 세거지(世居地), 산디마을의 푸르른 숲과 자연경관, 마을공동체의 신앙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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