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동래부의 행정중심지를 둘러쌓던 동래읍성
상태바
조선시대 동래부의 행정중심지를 둘러쌓던 동래읍성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9.23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문화 콘텐츠가 미래의 답이다<13>
부산 동래읍성 전경.

동래부사 송상현 “싸워서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
1592년 임진왜란 일어나자 일본군의 1차 공격목표가 된 최대격전지
동래읍성,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 두루 갖춘 대한민국의 대표적 읍성
우리 민족의 정신을 본받아 매년 10월에 ‘동래읍성역사축제’가 열려


우리들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임진왜란의 흔적은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건만 그 때의 아픔과 상처는 아직도 그대로인가. 동래읍성은 당시 왜구의 첫 번째 목표물이 돼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던 곳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부산의 역사를 선명히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곳을 찾고 있다고 해설사는 설명한다. 동래읍성은 충렬사 뒷산부터 시작해 동래구의 중심을 감싸는 총 1.9km 둘레의 성곽이다. 동서남북으로 모두 네 개의 문이 있고 그 위에는 루와 장대 등을 설치해 적의 공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원래 동래읍성은 임진왜란 이전에는 큰 존재감이 없다가 임진왜란 이후 군사적 요충지로 거듭나면서 성내와 성곽의 모습이 크게 변화하는 등 규모를 자랑하게 됐다. 특히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동래읍성 앞에서 길을 비켜달라고 요구했을 때 동래부사 송상현은 “싸워서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며 끝까지 싸움을 계속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동래읍성의 뜨거움이 와 닿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동래읍성은 단순한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는데 그치지 않고 동래구에 해당하는 지역뿐만 아니라 멀리 양산이나 해운대, 금정산 등의 지역까지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만약 탁 트인 부산의 지역 경관을 한 눈에 보고 싶다면 한 번 찾아오는 것도 좋다는 설명이다. 만약 동래읍성을 꼼꼼히 보고 싶다면 동래향교부터 시작해 서장대, 북문, 북장대, 마안산공원, 인생문터까지 이어진 ‘역사의 산책로’라는 코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만약 충분한 시간이 할애되지 않는다면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에서 오솔길을 따라 산길을 올라가며 마안산공원, 북장대, 북문을 거쳐 다시 박물관으로 내려오는 코스도 좋다는 것이 해설사의 설명이다.

■ 동래읍성, 왜적 방어의 제1관문

작은 사진은 동래읍성역사축제 포스터.

동래읍성은 조선시대 동래부의 행정중심지를 둘러싸고 있었던 읍성이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됐다.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의 동래시가지 중심지역인 평탄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세에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쌓았다.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읍성으로 꼽힌다.

삼한시대부터 동래에는 거칠산국, 내산국, 장산국, 독로국 등으로 불린 작은 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동래성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에 보이는 1021년(현종 12)에 동래군의 성을 수리한 것이 처음이다. 조선시대에 동래부는 대일 외교상으로 중시돼 관아의 규모도 크고, 격식도 높았으며 정3품의 부사가 재임하는 왜적 방어의 제1관문이었다.

우왕 13년(1387) 박위가 왜구를 막기 위해 동래성을 크게 고쳐 쌓아 석성의 둘레가 1090자, 높이 13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조 7년(1731)에 다시 증축된 이 성의 규모는 성곽의 둘레가 1729자였고, 네 곳에 문이 있어 동문을 지희루(志喜樓), 서문을 심성루(心成樓), 남문을 무우루 (無憂樓), 암문을 은일루(隱一樓)라고 했고, 남문에는 익성을 두고 나머지 3문에도 옹성을 부설해 적이 성문을 쉽게 공격할 수 없게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산진성과 함께 일본군의 1차 공격목표가 돼 동래부사 송상현을 위시한 군·관·민의 장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최대 격전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이후 부분 보수됐던 성을 1731년에 동래부사 정언섭이 나라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해 그 규모를 훨씬 크게 고쳐 쌓았다고 한다. 이 때의 성이 지금 흔적으로 남아 있는 읍성의 기원이다. 증축된 성의 규모는 성곽의 둘레가 약 3.8㎞였다. 읍성에는 동·서·남·북문과 인생문, 암문이 있었고, 각 문에는 문루가 있었다. 동문에는 지희루, 서문에는 심성루, 남문에는 무우루, 암문에는 은일루가 각각 있었다. 중요한 문루였던 남문에는 익성을 뒀는데, 앞쪽의 세 병문과 뒤쪽의 주조문을 둔 이중 구조로 돼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정비계획 등으로 평지의 성은 철거됐고, 산지에만 성곽의 모습이 남았다. 성내에는 북문·인생문·동장대·서장대·북장대가 복원됐고, 성벽도 부분적으로 복원·보수 중에 있다.

동래읍성은 조선시대 동래부의 행정 중심지를 둘러싸고 있었던 읍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읍성으로 꼽힌다. 임진왜란 때는 부산진성과 함께 일본군의 1차 공격 목표가 돼 장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최대 격전지이기도 하다. 현재 성내에는 북문, 인생문, 동장대, 서장대, 북장대가 복원돼 있다. 전체둘레 1962m, 높이 0.5∼3m.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됐다. ‘고려사’에 의하면 왜구의 침입 때문에 정부는 각지에 많은 성을 수리, 건축하게 했다. 이 때 동래읍성은 석축으로서 둘레가 3090척, 높이 13척으로 우물이 6개나 있었다고 전한다. 이런 기록으로 볼 때 동래읍성은 현재 부산시 동래에 있는 고을의 성이다. 왜냐하면 세종 조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 읍성조에 ‘정통병인년(1446, 세종 28년) 석축둘레가 3090척, 높이 15척’이라고 한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동래읍성 복원과 관련해 “1000년의 역사를 지닌 부산 동래읍성을 역사적 상징장소로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부산발전연구원(BDI) 박상필 연구위원은 동래읍성지역의 재생전략에 대해 “동래읍성 일대를 지역의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문화자원으로 재생할 것”을 제안해 눈길을 끈다. 박 위원은 “동래읍성은 고려 1021년 축조, 부산진성과 함께 임진왜란 격전지로 유명하다”며 “일제강점기 3·1독립운동 때는 동래고보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이 독립만세 궐기를 한 이후 항일학생운동의 상징지역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하면서 “동래읍성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과 부민(府民)의 항전, 일제강점기 주민들의 항일운동 등 호국충절의 장소로 다양한 기록과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는 만큼 동래읍성은 국가유산이자 부산의 정체성을 위한 근원지인 만큼, 주민들의 삶과 연계한 통합적인 재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은 또 “유·무형의 역사자원이 풍부한 동래읍성 일대를 하나의 박물관으로 보는 ‘1000년 박물관의 성(城)’이라는 재생 개념을 도입, 동래읍성 일대를 역사의 혼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 임진왜란, 치열한 격전을 보여준 곳
동래읍성에 서려 있는 우리 민족의 피나는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또한 그날의 역사를 기록으로 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 동래읍성의 임진왜란역사관이다. 특히 이곳은 우리나라 발굴 역사 최초로 철도역사 안에 만들어진 역사박물관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깊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에서 벌인 치열했던 전투를 생생하게 재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테면 동래읍성을 축소해 놓은 모형이나 발굴 유물의 복제품이 다수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뮬레이션 기술을 이용한 무기체험실도 운영돼 교육이나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가족,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는 곳이다.

한편 왜군의 거침없는 진격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우고자 했던 동래부사 송상현과 우리 민족의 정신을 본받아 매년 10월에 열리는 축제가 바로 ‘동래읍성역사축제’다. 지난 1996년부터 이어진 이 축제는 뜻 깊은 정신만큼이나 풍성한 프로그램 구성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실제 동래성 전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실감나는 뮤지컬 상영, 전국에서 유일하게 행해지는 동래 세 가닥 줄다리기 체험, 옛날 동래 주민들이 생활했던 장터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체험들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옛날 신임부사의 부임을 알렸던 행차 행렬인 동래부가 행차 또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실제 동래를 대표할 수 있는 훌륭한 인품의 인물이 동래부사가 돼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동헌에서 출발해 구청 앞 길놀이 행렬과 합류, 명륜오거리 등을 지나 동래문화회관까지 행차하는데 약 2.5km의 거리를 370m에 달하는 행렬이 따른다. 부산 동래구는 다음달 11~13일까지 ‘제25회 동래읍성역사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동래구 관계자는 “제25회 동래읍성역사축제가 구민을 비롯해 관광객들이 다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화합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