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최초의 참선수업·첫사랑 시작된 곳, 금강산 건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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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최초의 참선수업·첫사랑 시작된 곳, 금강산 건봉사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9.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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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만해 열반 75주년 기획<24>
만해 한용운은 건봉사에서 참선수업으로 금강산시대를 개막한다.

사명대사 승병훈련, 공양할 쌀 씻은 물 개천 따라 10리 넘게 흘러
‘화엄경’과 반야부 제경의 이력 채우고, 법명도 봉완에서 용운으로
만해 1907년 건봉사에서 첫사랑인 서여연화 보살과의 사랑 시작돼
조선불교유신론, 승려 결혼주장 만해와 서여연화의 관계 반영 평가


금강산 건봉사(乾鳳寺)는 강원도 진부령과 거진읍 중간에 위치한 천년 고찰이다.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고 있다.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사찰이었던 건봉사는 법흥왕 7년(520년)에 신라의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사실 법흥왕 7년이면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이고 아도화상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승려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시켰는데, 그들이 공양할 쌀을 씻은 물은 개천을 따라 10리를 넘게 흘러갔다고 전해진다. 1878년 큰불이 나면서 당시 건봉사의 건물 중 3000여 칸이 소실됐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전 폐허가 됐고, 지금은 단지 절 입구의 불이문만 남아 있다. 건봉사 불이문은 독특하게도 기둥이 4개다. 1920년에 세워졌으며 해강 김규진이 글씨를 썼다. 건봉사 옛 절터와 대웅전 사이 좁은 계곡에는 무지개 모양의 ‘능파교’라는 돌다리가 놓여 있다. 이 돌다리는 건봉사의 수많은 건물터 중 그나마 형상이 제대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돌다리로 꼽힌다.

■ 만해 선당생활 금강산시대 개막
1907년 만해 한용운은 건봉사 선당생활로 본격적인 금강산 시대를 개막한다. 여기서 서월화에게 배우다 만 ‘화엄경’과 반야부 제경의 이력을 채운다. 법명도 봉완에서 용운으로 바뀐다.  1908년 봄 한용운은 금강산 유점사로 옮기고, 4월 하순에 부산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만해는 일본의 조동종대학에서 관장 비서가 지정한 상대역인 불교학자 아사다오 노야마의 영접을 받았다. 한용운과 그는 주로 한문 필담으로 의사를 나누기도 했으나 아사다오가 알고 있는 약간의 한국어로 기본회화는 가능했던 것이다. 한용운의 일본 여행은 3·1독립운동의 계기가 되는 최린과의 만남을 빼놓을 수 없다. 최린은 한용운을 만나자 전격적으로 의례를 내버리고 친밀해졌다. 함께 목욕을 하고 함께 술을 마셨다. 그들은 승, 속의 사이가 아니라 고향의 친구이며 고국의 동포였던 것이다. 서로 다른 종교 따위가 그들을 방해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이유다. 이렇듯 만해의 일본 여행은 시베리아 여행보다 훨씬 얻은 바가 많았던 것이다. 

6·25한국전쟁 이전만 해도 건봉사는 백담사와 설악동 신흥사 등 인근의 절집들을 거느린 큰 절이었다고 한다. 절집에 전해지는 만해 한용운의 흔적은 일주문 밖에 선 만해의 ‘시비’와 기념관뿐이다. 건봉사에서 만난 만해는 ‘사랑하는 까닭’을 말한다. ‘당신이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이고,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이며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이라는 것이다.

만해는 건봉사에 있으면서 ‘가끔 동해 바닷가인 간성읍에 내려가 술에 취해 사람들의 멱살을 잡기도 했다’고 한다. 도대체 만해는 무엇을 사랑하고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것일까?

건봉사의 시비 ‘사랑하는 까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만해의 ‘님의 침묵’이나 ‘알 수 없어요’라든가 ‘나룻배와 행인’이나 ‘사랑하는 까닭’ 등의 만해의 시가 교과서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대부분의 만해 시에는 ‘님’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그러면 만해의 여러 시에 나오는 ‘님’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만해를 독립운동가로 본다면, ‘님’은 빼앗긴 조국인가? 만해를 승려이자 불교사상가로 본다면, ‘님’은 불타(佛陀)인가? 혹은 중생(衆生)인가? 또한 만해를 한 사람의 남자로 본다면, ‘님’은 사랑하는 여인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일 수도 있고, 또 이들 중 어느 것도 아닐 수 있는가? 많은 논자들의 의견대로 ‘님’의 정체와 관련해 민족·조국·민중·불타·중생·불교의 진리 등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건봉사에 있는 만해시비 물이문 앞.


■ 만해 건봉사에서 최초로 안거 수행
그런데, 만해가 승려 생활을 하면서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서여연화(徐如蓮花)라는 여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만해는 1907년 금강산 건봉사에서 만해의 첫사랑인 서여연화와의 사랑이 시작된다. 만해는 1896년 19세에 속리사로 가출해 여러 곳을 다니다 1907년 4월 15일 금강산 건봉사에서 최초로 안거 수행에 들어간다.

서여연화는 독실한 불자였는데, 부유한 선주(船主)였던 남편이 요절하는 바람에 졸지에 청상이 됐다. 미모의 젊은 망부는 그러한 슬픔을 달래고 남편의 영가가 극락왕생의 가피(加被)를 입기를 바라는 뜻에서 기일(忌日)때마다 대규모 법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때 만난 인연으로 서여연화 보살은 만해 선사를 사랑하게 된다. 만해 한용운을 사랑한 미모의 청상 서여연화 보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청담은 한용운의 일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만해당은 강원도 속초에 있을 때 찾아온 여인을 인정사정없이 큰 소리로 쫓아낸 일이 있소. 아무리 인정농후도심소(人情濃厚道心疎)라 하지만…. 바로 그 여인 서여연화(徐如蓮花) 보살은 한용운으로서는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여연화는 건봉사를 비롯해서 설악산에서도 잘 알려진 아름다운 보살계 수계 신도였다. 선주였던 남편이 해난 사고의 충격으로 요절한 뒤 남겨진 부유하고 젊은 미망인이었던 것이다.

1910년 8월 29일의 국치는 나라의 주권을 탈취했다. 이로써 만해 한용운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 된 셈이다. 며칠 뒤에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만해 한용운은 광태를 보였다고 한다. 표훈사 문수당 큰방의 저녁식사 공양 때 죽비를 치고 오계를 읊은 뒤 밥 첫 숟가락을 입에 넣으려는 찰나, 조실 선덕과 주지 도감 등의 당대 고승과 중견 승 그리고 수좌와 학인 90여 인에게 만해는 난데없이 큰 소리로 “이 산중 중놈들아, 나라를 빼앗겼는데 무슨 밥숟가락이 주둥이로 들어간단 말이냐. 이 벌레 놈들아, 이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들아!”라고 발맹의 밥과 국, 반찬을 통째로 바닥에 내던져 수라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순간 방안은 웅성거렸다. 다음 날 그길로 만해는 금강산을 떠나서 석왕사로 갔다. 한 군데 앉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박한영을 만난 것이다.

“한용운은 꼭 폭탄 같았소. 머리도 작고 목이 없는 형편에 그분의 짤막한 체상은 꼭 세워둔 폭탄 같았소. 그런 체상인지라 폭탄같이 날아가서 상대방을 뚫어버리는 담력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경허와 만공의 법대를 이은 한 수덕사 비구 덕산은 만해 한용운의 승태를 확인해주고 있다.

만해는 다시 내설악의 백담사로 간다. 만해에게 있어 백담사야말로 만해가 이런 것을 쓰기에 적합했고 그에게 퍼부어지는 비판으로부터 자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해는 백담사 무루실에서 집필에 전념했다. 그 무렵에 만해의 유일한 상좌가 될 이춘성(李春城)이 결혼 생활을 박차고 백담사에 입산했다. 젊은 행자였으나 선골이 비범하게 보였다. 한용운은 마침내 제자 춘성의 은사가 됐고 ‘조선불교유신론’도 전격적으로 완성했다.

만해 한용운은 1911년 겨울 일본에서 돌아와서 속초로 갔다. 오랜만에 만해는 서여연화를 만났다. 만해와 서여연화의 회정은 깊었다. 한용운으로서는 서여연화가 원효의 요석이요, 의상의 선묘였던 것이다. 이런 만해의 마음을 단번에 뒤흔든 ‘연꽃 같은(如蓮花)’ 여인이었던 것이다.
‘님의 침묵’의 님은 화자를 여성화시켜서 사랑의 간절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만해는 서여연화를 그 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서여연화의 사랑을 발전시켜서 겨레와 여래의 우주 공간을 낳은 것이다. ‘조선불교유신론’의 승려 결혼 주장 역시 이러한 만해와 서여연화 사이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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