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관, 컨테이너박스, 지역학습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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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관, 컨테이너박스, 지역학습공동체
  • 손규성(한겨레신문 편집부국장)
  • 승인 2010.02.0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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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짬도서관'이라는 곳이 있다. 어린이도서관이며 마을도서관이다. 대전시 중구 석교동에 있다. 지난 2005년 젊은 아줌마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사설 도서관이다. 석교동 자활후견기관 2층에 있는 알짬 마을어린이도서관은 66㎡(20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5개의 방에 주민들이 후원한 책 5000여 권이 빼곡하다.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제1의 원칙은 정숙(靜肅)이다.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 책넘기는 소리만을 들리는 곳이 일반적인 도서관의 풍경이다. 책을 읽는 남에게 방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자료를 찾다가 휴대폰의 소리가 크게 울렸다면 그 자리에 있는 다른 도서관 이용자로부터 '정적 파괴자'라는 야멸찬 눈초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알짬 마을어린이도서관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 떠들어도, 뛰어 놀아도, 책을 큰 소리내 읽어도 좋다. 이곳에 온 어린이들은 실제 그렇게 한다. 운영자들인 젊은 아줌마들이 그렇게 운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떠들고 장난하는 게 당연한데도 공공도서관에서는 "공부하는 이들에게 방해된다"고 혼나고, 서점에 가면 유해 도서들 속에서 책을 골라 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단다.


책과 함께 마음껏 뛰어노는 공간을 만들자

알짬은 '여럿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을 뜻하는 우리말로, 어린이와 주민들이 책을 빌리는 도서관에서 벗어나 책을 읽어주고 책과 함께 마음껏 뛰어노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애초 취지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놀이방이 될까봐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들은 책 읽고 싶으면 옆에서 말 타기를 하건, 누가 노래를 부르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면 따라서 같이 놀고, 책보면 따라서 책을 읽고 그런다는 것이다. 주부들 사이에 자유로운 마을 어린이도서관의 필요성이 얘기되면서 스스로 추진위원이 돼 하나하나 일을 배워가고 대전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으며 도서관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결과 알짬도서관은 어린이, 가정, 동네주민을 하나로 엮어 공동체 문화를 이루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도봉구엔 '초록마을 도서관'이 있다. 기존에 시립 도봉도서관과 구립 도봉문화정보센터가 있으나 인구 38만 명인 도봉구 주민의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2004년 늦여름, 지역운동단체인 도봉시민회에서 독서모임과 아이들을 위한 품앗이 수업을 하던 주부 15명이 뜻을 모았다. 방범초소 명목으로 도봉 1동 한가운데를 차지한 컨테이너 박스를 모임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였다. 그곳은 한 달에 한 번 동네 주민들이 방범 문제와 관련한 회의를 할 때 말고는 버려진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어렵잖게 주민들의 동의를 얻었고, 때마침 도봉초등학교가 도서관 리모델링 공사를 하려고 버린 책 1500권도 기증받았다. 컨테이너 박스가 '마을 도서관'이 된 것이다. 그렇게 '초록마을 도서관'이 탄생했다.

이들은 입소문을 타면서 회원도 늘고 드나드는 아이들도 많아지자 욕심이 생겼다. 2006년 3월, 이들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으로 나온 무용학원 자리를 얻었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 보증금을 해결했다. 초록마을 도서관은 96㎡(29평)으로 덩치를 키웠고, 장서도 8000여권으로 늘어났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책만 읽는 게 아니다. 장애인 단체를 찾아가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저소득층․한부모 가정 어린이들에게 책을 배달해주기도 한다. 주부들끼리는 요리, 비폭력 대화, 애니어그램 등 각자 가진 재능과 특기를 살려 '지식 나눔'을 한다. 도봉 1동의 사랑방이 된 것이다.

어린이도서관 건립은 자녀교육에서 촉발
 

홍성에서도 공공도서관이 건립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계 최고의 도서관인, 󰡐사라진 책들의 천국󰡑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집트 소재)의 건립이 B.C. 306년경 이었으니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공공도서관이 건립되기 시작했으니 위에서 사례를 든 마을 어린이도서관을 추진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알짬도서관 추진에서 보듯 어린이도서관 건립은 자녀교육에서 촉발된 󰡐지역과제󰡑였던 것이다. 여기에 서민층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맞벌이 가정이 다수인데 비해, 어린이들이 방과 후, 갈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다. 이러한 문제를 가까운 일부 학부모들과 공유하고 논의하다보니 대부분의 학부모들도 공감하는 지역적 문제임을 확인하게 된다. 학부모라는 동질적 집단과 공동의 관심사로 만나니 주민참여를 통한 주체적 해결을 위한 연대가 이뤄진다. 그리고 공동의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도서관 건립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하나씩 배워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어린이도서관의 건립은 아이들에게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배우는 즐거움을 주며, 체험을 통한 삶의 방법을 축적하게 만든다. 학부모와 주민들에게는 지역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체험과 환경을 제공해주기 위한 배움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게 한다. 결국 마을 어린이도서관 건립은 주민들이 함께 모여 지역에 대해 학습하는 것, 지역의 아이들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 살기 좋은 지역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일이며, 그것은 주민성장과 지역학습공동체 형성의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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