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을 향한 곱게 핀 연꽃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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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을 향한 곱게 핀 연꽃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홍성고 20회)
  • 승인 2010.07.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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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 유태헌의 전국 100대 명산 산행기 <1> 경기도 가평의 '명지산'

 


홍주신문은 국토의 등뼈를 밟아가는 산꾼 유태헌(홍주신문 서울총괄본부장ㆍ홍동출신ㆍ홍성고 20회ㆍ손전화 010-3764-3344)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격주로 연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2002년 산림청에서 선정한 전국의 100대 명산 산행기를 격주로 연재하기로 했다. 홍주신문 독자들과 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0년 7월 9일
구 간 : 장재울-연인산-아재비고개-명지3봉-명지2봉-명지산-익근리
도상거리 : 15.7km
산행시간 : 7시간 소요


2002년 산의 해에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이다. 100대 명산에는 국립공원(16곳) 도립공원(17곳) 군립공원(11곳) 지역에서 44곳, 백두대간에 인접한 산중에서 34곳 선정되었다. 또 인기 명산 100은 한국의 산하에 접속 횟수에 의한 순위이다. 산세가 수려한 순위보다는 많이 찾는 명산 순위이다. 그러다 보니 산세가 수려함보다 적은 비용으로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대도시 근교의 산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백두대간 종주기를 약 6개월 쓰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관심과 격려와 칭찬을 받았다. 특히 부산에 사는 초, 중, 고등학교 친구인 조낙영은 항상 맨 먼저 격려의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준다. 그런 친구가 있어 고맙다. 그 중 일부에서 100대 명산 산행기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매월 1,3주는 백두대간을 2,4주는 100대 명산에 오르려 한다. 물론 그동안 90여 곳을 올랐지만, 생각 없이 올랐기에 이제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100대 명산에 새롭게 시작한다. 그 첫 번째로 경기도 가평에 있는 명지산을 찾았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익근리 계곡(명지계곡)이 장관이기에 맨 먼저 가보기로 한다.

가평천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명지산(1267m)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과 하면을 경계로 이웃에 있는 화악산(1468m)에 이어 경기도 제2의 고봉이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숨어 있었다. 그동안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비교적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 '지혜를 밝힌다는 뜻을 가진 명지산'을 '이름이 운명을 결정 한다'라는 말처럼 얄팍한 세속의 명성에 연연해 하지 않는 탈속의 지혜에 더 가까운 산이었는지도 모른다. 명지산을 이야기할 때는 늘 따라다니는 말 중 하나는 높고 준수한 산세에도 한북정맥 마루금에서 비켜나 애석하다는 식의 손가락질이다. 애초에 명지산이 거기 있고 싶어서 그렇게 솟아 있는 것은 아닐 터. 이러 저러하게 복잡하게 나누기 좋아하는 산꾼들의 마루금 타기에서 슬쩍 비켜나 있는 것 또한 사상을 초월한 명지산의 고고한 자태와 딱 어울리는 그림이다.

 

 

 

 

 


세상을 피해 숨어 살기나 화전이라도 일궈서 생계를 유지했던 시절 명지산은 이 땅의 민초들에게 이상형인 시절도 있었다. 명지산 북쪽 논남기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마을 사람들이 명지산의 세 가지 덕을 먹고 살았는데, 그 첫째가 송이버섯의 '송덕'이요, 둘째가 억새로 지붕을 얹고 사니 '새 덕'이요, 마지막으로 더덕이 많으니 '더 더덕'이었다. 그러나 이제 명지산 '삼 덕'을 먹고 살던 이들 대부분이 도외지로 나갔고 화전과 집터는 수풀 무성한 자연으로 돌아 간 지 오래다. 명지산행의 백미는 능선을 종주하면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경기 북부 일대 산군의 장관을 조망하는 것과 익근리 계곡을 비롯하여 환경청이 청정구역으로 지정한 가평천 일대를 탑승하는 것이다. 명지산은 동서남북으로 각각 익근리, 상판리, 백둔리, 적목리 쪽에서 오를 수 있다. 그 중 익근리 계곡은 의외로 깊다. 명지 폭포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폭포가 연이어 있고 흰 반석 위로 맑은 계류가 끊임없이 흘러내려 빼어난 경관을 연출한다.

들머리인 상판리 장재울을 가기 위해 청량리 환승 승강장에서 07:50분 버스에 오른다. 예전 같으면 7~8000원 하는 요금이 지하철과 환승하면서 1800원이면 현리까지 갈 수 있다. 청평을 지나 검문소에서 좌측으로 길게 이어진 조종천에 맑은 물이 더욱더 아름답다. 09:40분 현리에 도착해 10:20분 상판리 행 버스를 기다리며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사서 배낭에 넣는다. 10:50분 명지산과 청계산에서 시작되는 조종천에 맑은 물은 산으로 향하는 나를 유혹한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산과 계곡이 더욱 아름답다. 길 따라 웃음꽃을 피우며 산행을 명지산과 가까이 있는 연인산을 함께 오르기 위해 장재울에서 버스를 내린다.

계곡은 넓고 흐르는 물 또한 청정옥수 빛이다. 가슴까지 크게 숨을 들이쉬고 산행을 시작한다. 열심히 비알진 산길을 오르고 흐르는 땀을 달래기 위해 잠시 쉬어간다. 능선 길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땀을 살짝 거두어 주기도 한다. '바람아 고맙다.' 장재울에서 2시간여 만에 드디어 13:00 연인산(1068m)에 오른다.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연인산 가평군이 우목봉으로 불리어 오던 산을 1999년 '연인산'으로 고치고 철쭉제를 시작하면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연인산은 우목봉과 월출산으로 불려 왔으나 가평군이 지명을 공모하여 1999년 3월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이란 뜻에서 이 산을 연인산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연인산 서남쪽의 전패봉은 우정봉, 전패고개는 우정고개, 동남쪽의 879봉은 장수봉으로 고쳤다. 또한, 연인산에서 뻗은 각 능선에 우정, 연인, 장수, 청풍 등의 이름을 붙였다. 북으로 아재비 고개 위로 이 산의 모산인 명지산이 귀목봉과 함께 시야에 와 닿고, 명지산에서 오른쪽으로 백둔봉, 뒤로 화악산, 동으로 장수능선과 노적봉, 남으로 할매봉과 용추구곡, 남쪽으로 운악산이, 서쪽 아래로는 조종천이 흐르는 상판리 건너 청계산 줄기가 성곽처럼 마주 보인다.

13:10 아재비 고개를 향해 북쪽 능선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한다. 길은 생각보다 많이 좁고 풀들이 길을 메워가고 있다. 능선을 따라 길 양쪽으로 나리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특히 녹음과 방초의 화사함과는 영 거리가 먼 질경이들이 뿌리박은 곳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길바닥이다. 채소가 요즘처럼 흔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봄과 여름에는 어린 순을 캐서 나물로 먹고 가을에 말린 씨로 차 전자를 만들어 사용하며, 뿌리를 심어 먹거나 잎의 즙을 내어 먹으면 토사곽란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질경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은 꽃과 잎 모두 화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어머니께서 끓여준 질경이 국을 자주 먹은 내게는 질경이가 들풀이기에 앞서 고마운 채소였기에 예쁘지 않더라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밟고 그냥 지날 수는 없다. 추억에서 다시 돌아와 14:10분 아재비 고개에 내려선다. 그 옛날 아재비 고개의 전설은 무시무시하다. 가난에 찌든 산모가 친정으로 해산하러 고개를 넘던 중 산고 끝에 순산하고 실신하였는데,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커다란 물고기가 앞에 있어 먹고 정신을 차려 아기를 찾아보니 아기가 없자 자기가 먹은 물고기가 아기인 것을 알고 그만 자살했다는 고개가 아재비고개이고 보니 애처롭다.

 

 

 

 

 

 

 


아재비 고개를 뒤로 한 채 14:20분 길을 덮고 있는 키가 큰 이름 모를 야생초들을 헤치고 길을 넓히면서 명지 3봉을 향해 가파른 길을 오른다. 전망이 좋은 바위에 앉아 때늦은 점심을 한다. 장수 막걸리 한잔에 갈증을 풀고, 연인산을 스쳐 지나가는 구름에 모습이 감춰졌다가 드러내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참으로 장관이다. 풀이 덮고 있던 길은 끝이 나고 귀목고개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난다. 그리고 10여 미터 더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인 명지 3봉(1199m)에 15:00경 올라선다. 까탈스러운 바위투성이의 능선 길을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암릉과 무명 봉우리를 로프를 타기도 하며 몇 차례 오르락내리락 하던 끝에 명지 2봉(1250m)을 거쳐 드디어 16:00 명지산(1267m)정상이다. 명지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발아래 가물 가물보이는 적목리 너머 경기 최고봉인 화악산을 비롯하여 북으로 강씨봉과, 귀목봉, 청계산, 남으로 연인산과 매봉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이 펼쳐진다. 또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저 멀리 북한산 백운대가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다. 정상에 머무른 지도 잠시 16:10경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에는 익근리까지 6km 넘게 표기가 되어있다.

익근리에서 18:00시 막차를 타기 위해서 하산을 서두른다. 나무로 덧댄 계단 길과 돌길이 번갈아 나타나는 급한 경사 길을 성큼성큼 내딛는데 무릎에 충격이 약간씩 전해온다. 한참을 내려오니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는 점점 크게 들린다. 엄청난 양의 맑은 물이 우렁차게 쏟아져 내리는 계곡의 절경은 시간 개념을 곧바로 잊어버리게 한다. 옥빛의 큰 물줄기가 바위 타고 떨어져서는 하얀 포말로 부서지고 금세 옥빛으로 되돌아온다. 엊그제 내린 큰비가 준 선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선물은 명지폭포다. 암벽에서 거대한 흰색 물줄기를 쏟아 내리며 떨어지는 폭포수가 장관이다. 검푸른 물빛, 소의 바닥은 보이질 않는다. 명주실 한타레가 다 들어가도 끝이 닿지 않는 다니 그 깊이가 상상이 안된다. 원하는 바를 얻고는 된비알 비탈길을 올라온다. 식었던 땀이 그 사이 다시 솟아나고 숨이 거칠어진다. 하산길을 따라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데 '조종천 생태보전지역' 안내간판이 눈에 거슬린다. 이 같은 간판은 익근리 까지 몇 개 더 설치되어있다. 잘못된 안내 간판이다. 내용인즉 명지산과 청계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 조종천에 살고 있는 동식물들의 생태계를 잘 보존하여 아름다운 자연을 가꾸어 나가자는 것인데, 이 안내 간판들은 산 너머 서쪽에서 현리를 관통하는 조종천으로 흘러드는 장재울 계곡에 설치되어야 할 것이 가평천으로 흘러드는 이곳 익근리 계곡에 잘못 설치된 것이다. 경기도 관광명소를 여러 곳 품고 있는 가평군의 관광행정에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익근리 근처에서 만나는 승천사는 명지산의 유일한 사찰로서 비구니의 도량이다. 오랜만에 찾으니 예전 없던 미륵불이 핑크빛 루즈에 고운 화장을 하고 있다. 승천사가 비구니 도량이어서 그런 것 일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미륵을 향한 곱게 핀 연꽃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드디어 17:50분 날머리인 익근리 주차장에 도착한다. 가게에서 가평 잣 막걸리 한 병을 사서 남은 참외를 안주로 한잔 마시니 시원한 맛에 갈증과 피로가 확 풀린다. 18:10분 버스를 타고 흐르는 가평천 맑은 물에 속세에 찌든 몸도 마음도 흘러 보낸다. 나를 괴롭혀 한숨짓게 하고 복잡한 생각으로 잠 못 들게 하던 모든 것들이 한낱 그림자에 불과 하다는 것을 산은 내 마음에 바로 전해주는 능력이 있다. 나는 어리석어 산을 내려오면 이를 금방 잊어먹고 다시 고해를 떠도는 어린아이가 되지만 마음이 지쳤을 때 다시 산에 갈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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