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성인은 1805년 충남 홍주 다래골지 출신, 최양업 신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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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성인은 1805년 충남 홍주 다래골지 출신, 최양업 신부 아버지
  •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 홍성고 20회)
  • 승인 2010.12.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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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 유태헌의 전국 100대 명산 산행기 경기도 수리산

 

수리산


수리산은 경기도 군포, 안양, 안산에 걸쳐 있으며, 인근의 의왕, 시흥, 과천, 인천, 서울 등에서 쉽게 접근 할 수 있어 인기 명산 45위에 올라 있을 정도다. 2009년에 경기도립공원으로 지정 되었지만 아직 도립공원의 면모는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수리산은 속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한 한남금북정맥이 안성의 칠장산에서 북서쪽으로 한남정맥을 일구워 수원의 광교산, 안양의 수리산, 인천의 계양산, 강화의 문수산을 거쳐 보구곶리까지 이어지는 178.8km 의 한남정맥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산이다. 수리산은 태을봉(489m), 슬기봉(451m), 관모봉(462m),수암봉(395m) 등의 영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능선을 따라 여러 산행 코스가 있다.

 

 

수리산 성지

 

 


독수리가 하늘을 치솟는 형상이라 하여 수리산으로 불리며, 옛날 왕손인 운상대사가 수리사(修理寺) 에서 기도를 하고 부처님을 친견 하였다하여 견불산(見佛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왕손이 수도를 하였다하여 '수이(李)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리산의 숲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활엽수림45%, 혼효림29%, 침엽수림26%로 구성 되어 있으며, 속달동에는 경기도 유림 327ha가 있어 경기도 산림연구소에서 각종 수목에 대한 연구, 조사를 하고 있다. 속달동 구룡터 당숲은 지금도 음력 10월 1일 이면 이틀간 동제(洞祭)가 치러지는 아름다운 마을 숲이다. 약 100년에서 300년가량 된 고목들이 우겨져 있는 이 숲은 조선중기의 문신인 정재륜(1648-1723)과 그의 부인 숙정(淑靜)공주의 무덤 부근에 조성한 숲이라는 역사적 배경 말고도 민속학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 주의를 끌고 있다.

 

 

 

교우촌, 한국가톨릭교회의 공소
숲의 가장 깊숙한 곳에 당집이 자리 잡고 있고, 이곳은 중부지방 서해안 일대에 발달된터줏가리당이 있으며 , 2002년 에는 생명의 숲 및 산림청에서 주최한[제3회 아름다운 숲]전국 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할 정도의 아름다운 숲이다. 1994년 2월 23일 개장된 수리산 산림욕장은 군포시청 녹지과에서 관리하며, 총면적은 159만4000㎡로서, 국유림이 28만㎡, 시유림이 131만4000㎡이다. 용진사 입구부터 수리약수터 입구까지 자리 잡은 산림욕장은 오르막 내리막, 평탄 길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산자락에 입구가 7개나 있다. 태을봉과 관모봉 정상까지 연결되는 10.33km 길의 순환 산림 육로와 함께 숲속 다람쥐 교실, 우리들 꽃길, 피크니장, 건강발 지압장, 황토 맨발 길 등 18개소의 주제별 공간이 마련 돼 있다. 또 산속에는 노랑 바위계곡 등 3개의 계곡이 있으며, 연중 무료 개방되어 시민들과 가족단위 휴식 장소로도 인기가 있다. 특히 북쪽 골짜기 병목안에는 한국가톨릭교회의 공소(公所)인 교우촌(敎友村)이 있다.

수리산 능선 곳곳에 아름다운 암봉이 있으며, 그중 태을봉에서 관모봉으로 이어지는 칼바위능선과 병풍바위 사이에 진달래가 필때는 북한산의 진달래 능선보다 더욱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명학역, 산본역, 수리산역, 대야미역, 안양역에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교통이 매우 편리한 산이다. 홍성의 금당초등학교 산악회 12월 산행지가 수리산으로 결정되어, 12월 12일 일요일 아침 수리산역에 한사람, 두 사람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수리산에 대한 간단한 개요를 들은 후 10시 20여분 경 삼삼오오 짝을 지어 능선길을 따라 출발한다. 일기예보에 올겨울 제일 추운 날씨라고 해 걱정을 했는데, 산행하기에는 최고 좋은 날씨다. 쑥고개 쉼터 까지는 낮은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길 이어서 힘을 별로 안들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할 수 있다. 쉼터가 있는 임도에서 직진하면 슬기봉이고 좌측 임도를 따라 직진하면 수리사(修理寺) 가는 길이다.

수리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신라 진흥왕(540-576)때 창건하였는데 자세한 창건경우는 알수없다. 다만 불심을 닦는 성스러운 절이라 하여 수리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왕손인 운상대사가 이절에서 기도 하던 중 부처를 친견하였다고 하여 산 이름을 견불산 이라고도 했다가, 1940년대에 절 이름을 따서 수리산으로 바뀌었다. 전성기에는 대웅전 외 36동의 건물과 12개의 부속 암자가 있는 거찰 이었다. 임진왜란때 절이 파괴되자 곽재우(1552~1617)가 입산하여 재건하고 말년에 이곳에서 수도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산신각, 나한전, 요사채등이 있다. 특이하게도 대웅전은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아 소박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 중수기를 거쳐 수리산 유일의 고찰로 이어져왔다. 6.25전쟁 때 불탄 뒤 1955년에 청운이 중건하였으며 1988년 10월 25일 전통사찰 제86호로 지정 되었다. 현재 산에서는 주춧돌, 불족석판, 석수각, 기왓조각 등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슬기봉으로 올라가는 급경사 길로 접어들었다. 숨을 헉헉 거리며 올라가다보니 예전에 없던 전망대와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르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 삶에 희열을 느끼고 있으니, 어느새 산꾼이 다 된 느낌이 든다. 슬기봉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바로 옆 봉우리에 슬기봉 정상석이 서있다.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정상에 있는 흉물스러운 군부대가 언제쯤 철거 될까 기다렸는데, 최근 연평도 사건을 보면서 환경보다도 국가의 안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슬기봉 정상에 서면 멀리 군자 앞바다와 시화호, 소래 포구 및 인천, 수원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과일과 간단한 안주로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태을봉과 관모봉을 거쳐 병목안으로 하산하려 했으나 전날에 온 눈이 북쪽으로는 녹지 않아 미끄럽고, 교우촌도 살필 겸 임도로 하산한다. 슬기봉 정상 군부대를 우회하는 나무계단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땀방울을 식혀주고 숨을 돌리며 사방을 둘러보면, 태을봉과 수암봉이 좌청룡 우백호처럼 버티고 서 있다. 계곡을 장식 하고 있는 노란 낙엽송이 아름답게 보인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병목 안 못 미쳐 교우촌을 만난다.

훌륭한 인물 많이 배출한 홍주, 금북정맥 정기 때문
1801년 '신해박해' 이후 그 이전에는 신자가 없었던 지역까지 천주교 신자들의 이주가 진행되었고, 산골로 숨어 들어가 모든 삶을 천주교 신앙에 맞춰 사는 '산골교우촌'이 형성 되었다. 1830년대 경기도 지역에서도 서울을 중심으로 각지에 교우촌이 형성 되었는데, 경기남부 지역이나 서울 인근 지역에 교세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서울에 가까운 지역, 특히 산골에 신자들이 이주 했던 이유는 교회의 중심지인 서울과 교류가 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울 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1830년대 말 조선에 입국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직접 교우촌을 방문하여 공소(公所)를 세우고 회장(會長)을 임명하였다.

 

 

성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최경환(崔京煥) 성인이 회장으로 있던 수리산공소 역시 서울 인근 산골교우촌 중 하나로 인근 지역에 신앙을 전파하는 신앙 중심지 역할을 했다. 최경환은 모범적이고 열성적인 회장이자 뛰어난 강론가로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유명했다. 수리산공소가 위치한 안양 후미동(병목안)은 수리산 안쪽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시흥, 안산, 광주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동시에 수리산을 중심으로 인천, 부평 지역과 안양, 용인 지역이 산등성이[한남정맥]로 연결되어 있어 신자들이 이동 할 때나 선교사가 방문할 때 산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최경환 회장을 중심으로 활성화된 수리산 공동체가 공동체 안팎으로 선행을 베풀고 좋은 평판을 얻게 됨으로써 수리산 인근 지역에 교우촌이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최경환 성인의 모범적 신앙과 덕행이 개인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신앙공동체 전체로 승화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천주교회와 신자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최경환 성인 고택

 

 


한편 최경환 성인은 본관은 경주 최 씨이며, 1805년 충청남도 홍주 다래골지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이다. 한국인으로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의 아버지이다. 그의 집안은 조부인 최한일(崔漢馹)때부터 천주교를 믿었으며, 그 영향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다. 천주교 탄압을 피하여 안양의 수리산 아래에 정착, 교우촌을 건설하고, 1839년 수리산공소 초대회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던 중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 서울로 끌려가 아들 유학을 보내어 신학공부를 시킨다는 죄가 추가되어 남달리 혹독한 고통과 형벌을 받고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李存昌)의 후손인 이성례(李聖禮)를 아내로 맞았으며, 부인 또한 1840년 1월 31일 서울 당고개에서 참수형에 처해져 순교 하였다. 최경환의 유해는 1930년 명동성당 지하 묘역에 안장 되었다가 1967년 절두산순교기념관 지하 묘역으로 이장하여 안장돼 있다. 1984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위(聖人位)에 올랐다. 우리고장 홍주(홍성)는 최경환 성인 같이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지만 한남정맥과 나란히 하는 금북정맥의 정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산행을 마치면 으레 즐거운 뒤풀이가 벌어진다. 오리전골에 소주와 막걸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니, 그 맛 을 어디에 비교 할까. 특급 호텔에 간들 이런 맛은 없을 것이다. 수리산 산행을 통해 잊혀진 역사도 뒤돌아보고, 동문 상호간에 친목도 다지며, 고향 자랑에 긍지를 느끼는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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