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에서 발원, 남한강에 몸을 섞는 지류엔 수많은 절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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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에서 발원, 남한강에 몸을 섞는 지류엔 수많은 절경이 있다
  • 유태헌 (서울본부장)
  • 승인 2010.12.2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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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22구간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홍성고 20회․손전화 010-3764-3344)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해 산행기를 연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0년 12월 18일~19일
구 간 : 생달리 - 작은차갓재 - 황장산- 폐백이재 - 벌재 - 문복대-옥녀봉 - 저수령 도상거리 : 14.14km
산행시간 : 9시간 30분 소요 

 

 

 

 


백두대간 남한구간의 중간지점인 차갓재에서 용트림하는 대간의 줄기는 힘차게 솟구치어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아 산하를 호령하는 표상이다. 첩첩 산중인 한국의 산줄기가 그렇게도 도도하게 흐르는 모습이 어찌나 좋은지 역시 대한민국은 금수강산이다! 고산자김정호의 대동(大東)여지도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그분의 발길 따라 일천육백여리를 따라가 보자. 이곳 차갓재가 대간 길 중간에 자리한 지점이다. 새벽 02시10분 생달리에 도착하니 하얀 눈이 제법 많이 쌓였다. 생달리는 산다리, 새터, 안산다리, 약사정, 차갓재, 안생달 등 의 자연마을로 이뤄졌다. 산다리는 산과 달만을 볼 수 있는 두메산골 이라는 설과, 마을 어귀 다리에서 사람이 떨어졌는데도 살았다하여 '산다'라고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오미자를 원료로 한백주를 제조하는 양조장은 세월 따라 이층 양옥집으로 바뀌었고 한가로운 마을의 전경은 어느새 다른 시골처럼 변해가고 있다.

달빛에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눈길을 따라 02시30분 출발한다. 안생달 이정표가 시작하는 지점에서 개울을 건너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작은 차갓재에 이르고 이정표에는 대미산 2시간30분, 우측은 안생달 50분, 직진은 황장산 1시간을 알려준다. 헬기장을 지나 바위 구간인 무명봉을 두어 번 지나고 험난한 밧줄구간을 힘겹게 오르면 황장산(黃腸山.1077.3m) 정상에 05시경 도착한다. 바위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정상은 사방으로 전망이 아주 뛰어나다. 북으로는 단양팔경중 여러 명소를 거느린 도락산(964.4m)이고, 동북으론 첩첩 산줄기 너머로 소백산(1439.5m)의 장쾌한 능선이 아득하다. 그러나 정상에서는 하얀 눈 만 보이니 아쉬움이 크다. 󰡐황장(黃腸)󰡑이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산은 조선시대 질 좋은 소나무의 대명사인 황장목(黃腸木)이 많이 자라고 있어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었다. 흔히 춘향목이라 불리는 황장목은 나이테가 누렇게 황금빛을 띤다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나무의 뒤틀림이나 갈라짐이 없어 궁궐의 목재나 왕실의 관이나 배를 만드는데 주로 썼다. 황장산의 또 다른 이름은 작성산(鵲城山)이라고도 한다. 황장산 동북쪽을 흐르는 문안골엔 고구려 성으로 추정되는 작성(鵲城)흔적이 남아 있다. 국립지리원의 지형도에 나오는 '황정산(皇庭山)' 이란 지명은 '임금이 거니는 정원' 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이는 일본이 천황이 거니는 뜰 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임의로 지어낸 것으로 해석한다.

 

 

 

 



황장산 암릉을 지나 감투봉의 바위 위용이 대단하고 가파르게 고도는 떨어지는데 다행이 밧줄이 있어 힘은 들지만 안전하게 내려서면 황장재(985m)에 이르고, 헬기장을 지나 내려온 만큼 가파르게 올라가면 1004봉이 유난히 높아 보이고 주위의 산줄기를 바라보면 대간 길은 쉬운 곳이 하나도 없음을 다시 한 번 상기 하게 된다. 다시 가파르게 내려서면 치마바위를 지나고, 나무에 매달린 이정표에 돌산악회에서 힘내세요! 폐백이재를 알려준다. 곱게 차려입은 새색시가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리는 광경을 떠올려 붙여진 이름이다. 다시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928봉에 오르고 헬기장을 지나 가파르게 내려서면 문경시 동로면과 단양군 대강면을 잇는 벌재(620m)에 도착한다. 적성이의 적자가 '붉을적(赤)'이어서 '붉은재'가 된 것을 이 고장 말로 '벌재' 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975지방도로가 지난다.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옛 도로에서 문복대 등산 안내도를 보고 가파르게 등로를 치고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823봉을 지나 돌목재에 이른다. 들목재는 순 우리나라 말로써 󰡐들고 나는󰡑 것을 의미한다. 바람과 구름이 들고 나고 사람이 들고 난다는 아주 운치 있는 이름이다. 이번 대간중 가장 힘든 문봉재(1.020m)까지 가파른 능선 길은 자신과 싸우는 인내의 한계를 극복하는 잣대가 된다. 1000고지를 계속 이어가면서 두어개봉으로 보이는 곳에서 마지막 제일 높은 문복대(門福臺.1074m)에 이르니 문경 산들모임 산악회에서 세워둔 돌비석에 백두대간 해발 1074m 라고 새겨져 있다. 문복대의 또 다른 이름은 󰡐운장산󰡑 이라 불리었으며,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문봉재, 운봉산 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백두대간 산줄기기가 소백산을 거쳐 예천군을 지나 문경 땅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지켜 서서 󰡐복을 불러 오는 문󰡑 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복대에서 마지막으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옥녀봉(1077m)이자 용두산이지만 표지석은 없다. 옥녀봉에서 가파르게 내려서면 장구재(860m)에 이르고 이곳부터 저수령까지는 20분이라고 적은 빼크라이트로 푯말을 세워둔 장구재를 마지막으로 가파르게 몇개의 봉우리를 내려오면 임도비에 용두산 등산로 2.7km라고 슨 푯말이 있고 커다란 돌비석에 저수령(850m.저수재)의 유래가 적혀 있는 저수령에 도착한다(12:00) 

큰 길이 나기 전 오솔길이 된 비알이 심하여 지나는 사람들의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低-낮을저 首-머리수)하여 붙여졌다는 설도 있고, 이곳에서 은풍곡까지 피난길로 이용되어 왔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후미가 도착하여 송년 산행 뒤풀이 장소인 단양으로 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눈 덮인 아름다운 산하에 취하다보니 사르르 잠이 든다. 이른 아침마다 물안개 자욱이 피어오르는 남한강과 석회암이 어우러져 빚어 낸 절경으로 널리 알려진 단양고을, 단양이 자랑하는 여덟 가지의 빼어난 경관인 단양팔경은 영동지방의 절경인 관동팔경과 쌍벽을 이루는 경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남한강을 막아서 생긴 충주호 상류엔 유서 깊고 경관도 빼어난 장회나루가 있다. 나루 근처의 장회여울은 정선 동강의 황새여울 못지않게 물살이 심한 곳이라 옛날 마포나루까지 뗏목을 나르던 뱃사공들이 애를 먹던 곳이지만, 댐이 생기고 호수가 되는 바람에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강가에 솟은 깎아지른듯한 바위봉우리는 거북을 닮아 구봉(龜峰)이고, 물속에 있는 바위는 거북무늬를 띠고 있어 구담(龜潭)이라 불리니 합해서 구담봉(龜潭峰)은 희고 푸른 바위가 비온 후의 죽순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이렇게 아름다운 자태로 단양팔경의 3경과 4경 자리를 차지한 구담. 옥순 두 봉우리가 비치는 강에서 벌이는 뱃놀이는 오래 전부터 천하제일의 흥취로 꼽혀 왔다. 병풍 그림으로나 보던 그 경치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김홍도도 이곳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겼다. 옥순봉은 단양팔경에 속하긴 해도 사실은 제천시 청풍면에 속해 있다. 당시 청풍에 속해 있던 옥순봉이 단양팔경의 하나로 선택된 데는 조선 최고의 도학자인 퇴계(退溪)이황(李滉.1501-1570)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때는 퇴계가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는 고을 마다 명승을 찾아 줄기며 이름도 짓는 취미가 있었던 퇴계, 그는 당시 단양의 여덟 가지 절경을 정하게 되는데 일곱 가지는 찾았으나 마지막 명소를 찾지 못했다. 그런 그가 눈독을 들인 게 바로 옥순봉이었다. 그러나 옥순봉은 단양이 아닌 청풍에 속해 있었다. 이에 퇴계는 평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청풍 수령 이지번(?-1575)에게 청을 넣었지만 거절당했다. 퇴계는 고심 끝에 옥순봉 석벽에 단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듯으로 '丹邱洞門(단구동문)' 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이후로 단양팔경의 하나로 인정받은 옥순봉은 단양의 관문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허나 퇴계의 글씨는 충주호가 생기면서 물에 잠겼고, 갈수기에만 살짝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한편, 그 당시 퇴계와 단양 출신의 명기 두향(杜香)이 이곳을 배경으로 나눈 사랑 이야기는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퇴계가 48세가 되던 해에 단양 사또로 부임할 때 단양 에서 활동하던 관기였던 두향은 가무는 물론 시서에 능했고, 지조도 높은 여인이었다. 퇴계의 학문과 인품에 반한 두향은 퇴계의 수청 기생을 자청했다. 당시 퇴계는 둘째 부인과 사별 후 이태가 지났고, 단양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둘째 아들마저 잃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였다. 우여곡절 끝에 좋아 하던 매화를 매개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남한강변의 산수를 줄기며 정을 쌓아 갔다. 그러나 퇴계가 단양에 온지 10개월 만에 풍기군수로 발령이 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끝나고 말았다. 퇴계가 단양을 떠나자 두향은 구담봉 앞 강선대가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에 초막을 짓고 은둔 생활을 했고, 나중에 퇴계가 안동에서 타계하자 두향은 강선대에 올라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 후 자결했다고 한다. 그때 두향이 스물여섯의 꽃다운 나이였다. 전 하는 말에 의하면 퇴계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물을 주라고 말한 매화는 당시 두향이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100여명이 앉아서 놀 수 있었던 강선대 바위는 충주호에 수몰되고, 퇴계의 후손이 관리해 왔다는 두향의 묘는 강선대 위쪽으로 옮겨졌다.

단양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지류는 많다. 백두대간에서 발원해 남한강에 몸을 섞는 지류엔 수많은 절경이 널려 있다. 우선 퇴계가 만든 보(洑)가 있었다는 단양천 물줄기의 하선암(下仙巖), 중선암(中仙巖), 상선암(上仙巖)은 모두 단양팔경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단양천에서 신선들을 만난 뒤 설치재를 넘으면 우뚝 솟은 사인암(舍人巖)이 눈길을 끈다. 단양 팔경에 속하는 사인암은 월사천과 남조천의 맑은 계류와 깎아지른 바위, 그리고 푸른 소나무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찬탄하게 되는 경관을 자랑한다. 단양팔경 중에서도 그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맑고 푸른 남한강 가운데 떠 있는 세 개의 바위 봉우리, 곧 도담삼봉(嶋潭三峰)이다. 한 가운데 높이 6m의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북쪽 봉우리를 처봉이라 하고, 남쪽 봉우리를 첩봉이라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본처의 모습이라 한다. 단양팔경의 으뜸답게 경관이 빼어나 얽힌 얘기도 많다. 그중 하나가 '정선 소유설'이다 원래 삼봉은 강원도 정선에 있던 삼봉산이 어느 해 장마때 이곳까지 떠내려 온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왔다. 그후 단양에서는 매년 정선에 세금을 내고 있었다. 이때 조선의 개국 공신인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1337-1398)은 단양 매포읍 사람으로서 공부하던 어린 시절 도담삼봉을 자주 찾았는데, 그는 이곳을 너무 사랑하여 자신의호도 삼봉이라 하였다. 그런데 단양에서 정선에 세금을 내는 것을 보고, 정도전 소년은 정선 관리에게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고,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일갈했다. 그 뒤부터는 더 이상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물 위에 떠 있는 도담삼봉을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는 전설일 뿐이다. 지질학자들은 삼봉이 원래부터 이곳에 뿌리를 박고 있던 암봉이라 밝히고 있다. 도담삼봉에 반한 퇴계는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 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어우러지더라"하고 노래했다. 그러나 저녁놀과 별빛, 달빛뿐이겠는가, 도담삼봉은 암봉 사이로 솟는 아침 일출의 경관도 빼어나 사진작가들이 새벽마다 진을 치고 있는 촬영장소로 사랑 받고 있다. 다 왔다는 안내 방송에 눈 을 뜨니 도담삼봉이 보이는 남한강 강가다. 식당에는 뒤풀이를 겸한 송년회 준비로 분주하다. 눈길을 걷느라 평소보다 배 이상 체력소모를 하다 보니 힘들고 지친 몸을 뜨거운 온천에 피로를 풀고, 따끈한 민물매운탕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은 천하에 부러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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