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홍주’라는 고유지명 버리고, 이제 왜 ‘내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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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홍주’라는 고유지명 버리고, 이제 왜 ‘내포’인가?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1.06.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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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지명역사 1000년 기념사업 필요…홍성의 정체성 찾는 첫 단추



내포(內浦), 바다에서 내륙 깊숙이 들어온 만(灣)의 포구
“정확한 사용연대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 사용은 확실”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은 이름 홍주(洪州)와 우리가 살고 있는 홍성(洪城)의 의미와 명칭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최근 홍성군은 축제명칭을 비롯해 각종 사업이나 용역 등의 명칭에 ‘내포(內浦)’붙이기 열풍이 불고 있는 느낌이다. 자신의 이름이 있는데도 자꾸 남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 대입해 사용하는 격이다. 특히 충남도청신도시의 명칭이 ‘내포신도시’로 결정되면서 그 열풍이 더하고 있다. 하지만 ‘내포신도시’는 단순히 ‘충남도청이전신도시’의 명칭일 뿐이다. 행정구역의 명칭도 아니며 지명도 아니다. 특히 ‘내포’는 지금의 ‘홍성’이나 옛 ‘홍주’의 고유명칭도 아니다. 그런데 홍성지역에서는 무분별할 정도로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내포’란 명칭을 ‘충남도청이전신도시 명칭’으로 선점하기 위해 노력한 곳은 오히려 예산에서 앞장섰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실상 홍성은 ‘좋은 게 좋다’고 ‘명칭제정’을 둘러싼 여론조사 등에서도 형식적 이었고, 예산 쪽의 의견을 따라가는 형국이었다는 지적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지 않았다는 여론이며, 비판이지만 여기저기에서 ‘내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일에는 반사적으로 적극적인 셈이다.

‘내포(內浦)’는 충남 서북부 가야산 주변을 통칭하는 지역으로 중국으로부터 선진불교가 전래된 지역과 천주교의 성지이고, 서민문화의 전승지이며 서해안 천혜의 자연경관을 보유한 지역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여리쯤에 가야산이 있다.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동쪽은 큰 들판이고 남쪽은 오서산에 가려져 있는데 가야산에서부터 이어져 온 맥으로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고을을 내포’라 한다” 고 언급하고 있다. 가야산 앞뒤의 10고을은 홍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덕산, 예산, 신창, 면천, 당진 등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는 내포지역을 홍주목(지금의 홍성)이 관할하던 충남 서천에서 경기도 평택까지의 20여 고을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런 기록들에 의하면 내포지역은 충청도 지역 중에서 서해안을 끼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독 ‘홍성’지역에서는 ‘내포의 중심’이니 하면서 여기저기에 ‘내포’를 끼워 넣느라 정신이 없다. 정서적으로나 정체성에 있어서 과연 ‘홍성’과 어떻게 결합되는 것일까.

‘내포(內浦)’란 우리말로 ‘안 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바다에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만(灣)에 들어선 포구를 뜻하는 말이다. 충남 서북부지역은 바로 이와 같은 안 개가 다수 발달한 곳이다. 우선 아산만으로 들어가는 삽교천, 무한천, 곡교천에 여러 포구가 발달했다. 삽교천 입구에는 선장포구가 있었고, 그 안쪽으로 구만포(하구로부터 25킬로미터), 내포 등의 포구가 있었다.

또 석문방조제와 대호방조제가 들어선 지역도 여러 포구들이 발달했으며, 특히 당진군 대호지면 일대와 서산 성연면의 명천포구는 유명했다고 한다. 가로림만 일대에는 아직도 많은 포구들이 있다. 또 천수만 일대에도 모산만과 보령방조제 안쪽의 해만에는 광천 독배와 같은 유명한 포구가 발달했다. 이처럼 해만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수많은 포구를 만드는 지형은 한반도의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 왜 이 지역에 이와 같은 ‘안 개’가 발달했을까. 충남대 박찬승 교수는 이 지역의 산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지역은 흔히 ‘비산비야(非山非野)’라 하여 높은 산이 별로 없는 가운데 낮은 구릉들이 발달했다.

이러한 구릉들 사이로 작은 천(川)이 발달해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또 바닷물이 그러한 작은 천들로 밀려들어오는 지형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조수가 밀려들어오면 작은 천들은 만(灣)이 되고, 바닷물이 빠지면 천변은 갯벌과 갈대가 무성한 해택지(海澤地, 바다연못)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지역에 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산경표山經表>에 의하면 ‘금북정맥(錦北正脈)’은 경기도 안성의 청룡산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내려와 연기 의랑치, 천안 차령, 온양 송악을 거쳐 청양의 사자산, 구봉산, 백월산을 거쳐 오서산으로 이어지고, 결성의 보개산, 월산, 수덕산, 가야산, 서산의 성국산, 팔봉산, 태안의 지령산, 안흥진으로 맥이 이어진다고 한다. 또 백월산은 남으로 보령의 성주산, 남포의 옥마산으로 이어진다.

금북정맥은 북쪽과 서쪽의 내포문화권과, 남쪽과 동쪽의 금강문화권을 구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서북쪽으로 치고 올라간 금북정맥의 잔 줄기들은 서산, 태안 일대에 비산비야의 작은 구릉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동쪽의 삽교천과 무한천 일대에는 이렇다 할 산이 없는 가운데 충남 제일의 내포평야가 만들어진 것이다. 내포는 북쪽과 동쪽의 아산만, 서쪽의 서해바다 등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수많은 작은 천들이 내륙 깊숙이 들어가면서 ‘안 개’를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수운이 발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호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은 반드시 태안반도를 거쳐야 했는데, 태안반도의 안흥은 조수가 급하고 암초가 많아 조운선이 좌초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태안반도 북쪽과 아산만 일대에서부터 한양까지는 뱃길이 수월하였기 때문에 내포와 한양 간의 수운은 일찍부터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내포’라는 말이 정확히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고려시대에 사용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조선 초기에 발간된 <고려사>에는 이미 내포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 내용은 주로 ‘왜구가 내포지역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였다’는 내용들이었다고 한다.

최근 홍성지역에서는 ‘내포’라는 명칭이 ‘충남도청신도시’ 등의 명칭으로 여기저기 등장하면서 차라리 옛 지명 ‘홍주’를 잘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홍주’라는 지명의 탄생역사가 오는 2012년이면 ‘1000년’ 이라는 의미와 기념사업의 필요성 등을 본지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홍주군은 <결성현(結城縣, 지금의 결성면)>의 11개 면을 병합하면서 홍주군의 <홍(洪)>자와 결성현의 <성(城)>자를 따서 <홍성군(洪城郡)>이란 새 이름을 갖게 된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결국 <홍성(洪城)>이란 지명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명된 이름인 것이다. 충청도에서 충청도 4목·4부(홍주, 공주, 충주, 청주)중에서 충남의 공주, 충북의 충주와 청주라는 지명은 그대로 살아있으나 유일하게 <홍주>라는 이름만 잃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런 연유로 <홍주>라는 본래의 이름을 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이유다. 뿐만 아니라 도청신도시 명칭제정 및 행정구역 통합과 관련해서라도 명칭회복 운동을 반드시 펼쳐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홍성에는 <홍주>라는 지명의 흔적이 살아서 숨 쉬고 있다. 홍주성, 홍주아문을 비롯하여 홍주초등학교, 홍주중·고등학교, 홍주문화회관, 홍주체육문화센터, 홍주종합경기장 등 각종 기관단체의 명칭뿐만 아니라 상호, 간판 등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삶 속에서 <홍성>이란 일제가 강제로 만들어준 지명 속에서도 오롯이 <홍주>라는 토종 지명이 살아 사용되고 있다.


아울러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명확한 규명도 중요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역사적 사실근거가 명확하다면 결론은 “이러한 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만들며 지역발전과 지역을 알리는 홍보의 계기로 적절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의 문제다. ‘홍주지명역사 1000년’도 상당히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 ‘1000년’이라는 숫자가 ‘2012년 충남도청 홍성이전’이라는 절호의 기회와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1012(현종 3년)년에 시작된 ‘홍주지명 역사 1000년’과 ‘2012년 충남도청 홍성이전’이라는 명분에서 ‘1000년’이 일치하면서 이런 점을 최대한 활용해 ‘홍성’을 알리고 홍보하는 기회로 삼는 일도 ‘천년에 한 두 번일 것’이라는 주장에 방점이 찍히는 이유다.

전국적으로 지명역사 기념사업을 살펴보더라도 ‘홍주지명역사 1000년’에 버금가는 곳도 드물다. 대략 지명이 탄생한지 600~700년 정도인 것이 현실이다. 경남 창원(昌原)의 경우 지난 2008년 8월 13일 지명 탄생 600주년 기념사업을 했으며, 전남 순천의 경우 지난 2007년부터 준비해 2010년 ‘순천(順天)지명 700년’ 기념사업을 했다.
또한 인천시는 오는 2013년 인천지명 역사 600 주년을 앞두고 인천시사와 ‘사진으로 보는 인천체육사’ 발간 등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해로 1000년을 맞는 팔만대장경 기념사업 지원과 죽산 조봉암 선생 재조명 및 기념사업도 추진된다.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 판각 기념사업을 위해 오는 8월 팔만대장경 학술 심포지엄, 대장경 경판 이운식과 대장경 전시사업도 병행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경기도 용인시는 오는 2014년이면 ‘용인’이란 지명이 탄생한지 600년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2013년부터 용인의 역사정체성을 알리기 위한 5개 분야 40여개 기념사업의 추진한다는 것. 이를 위해 올해 ‘용인 지명 600주년 기념사업’ 기본계획을 수립,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조직과 제도 기반을 구축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점을 홍성도 발 빠르게 인식하고 활용하는 것도 결국은 ‘홍주1000년’의 지명역사가 지역의 정체성 찾기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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