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예술촌, 쇠퇴한 철강단지에서 예술인들의 아지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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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예술촌, 쇠퇴한 철강단지에서 예술인들의 아지트로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1.09.2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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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도시브랜드, ‘문화·예술이 답이다’ 〈2〉

이제는 문화예술이 곧 경쟁력인 시대다. 특히 문화는 주민들에게는 창조의 에너지와 기업에게는 신 성장 동력을 제공하며 브랜드 향상의 기회로 작용한다. 홍성에도 유·무형의 경쟁력 있는 문화적 자산들이 많다. 홍주 1000년의 역사 속에 묻혀 있는 홍성의 역사, 문화, 예술, 인물 등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 한 단계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해야 한다. 본 기획취재는 홍성의 도시브랜드 구축이란 명제에 대한 해답을 ‘문화·예술에서 기인한 내발적 발전’으로 두고, 재개발의 위기에서 역사문화마을로 재탄생한 인천의 배다리마을, 쇠퇴한 철강단지에서 예술인들의 아지트로 새롭게 탈바꿈한 문래동 철강단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된 일본의 카나자와시 등의 사례를 통해 이상적인 문화·예술도시의 형성과정과 기준을 제시하고, 홍성의 미래비전은 문화와 예술이 핵심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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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인천 배다리 마을, 재개발의 위기에서 역사문화마을로 재탄생
② 문래동 철강단지, 예술인들의 새로운 아지트 
③ 일본 가나자와, 방직공장을 시민예술촌으로
④ 일본 가나자와, 과거와 현대의 조화로운 공존
⑤ 홍성의 도시정체성 찾기
‘전통과 창조가 조화된 문화예술의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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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지하철 2호선 문래역 인근, 기자가 한낮의 철강단지를 방문했을 무렵, 즐비하게 늘어 선 철공소에서는 한창 철공작업이 한창이었다. 지금은 많이 쇠락했다지만 여전히 문래동은 낮은 기계소리로 가득했다. 그러나 고되지만 값진 철공소의 하루 작업이 끝나는 오후 3시 무렵이 되면서 공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문래동의 얼굴은 또 한 번 바뀐다. 예술가들의 고요한 천국, ‘문래동예술촌’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철강단지는 70년대 후반, 우리나라 산업의 기반을 다지던 시기에 산업사회의 전초 역할을 했다. 문래동 철강단지는 당시 군수송본부 자리에 조성됐다. 60년대 말, 을지로와 원효로 일대에서 시작된 철재산업의 수요가 전체 산업구조의 변화, 건설 붐 등과 맞물려 폭발적으로 늘어난데 따른 조치였다.

철강단지 조성 이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문래동은 철재산업의 메카로서 전국에 그 위상을 떨쳤다. 25년간 문래동을 지켜온 광창특수강의 박인권(51세) 사장은 “새벽 5~6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저녁 10가 되도록 공장이 돌아갔어요. 주문이 밀려서 주말도 없이 2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쉬어야 했습니다. 대전, 충주의 물량까지도 문래동에서 소화했으니까요”라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90년대에 들어 문래동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철재산업의 터전도 시흥을 시작으로 김포, 검단, 시화, 반월 등 수도권 공단지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오밀조밀 모여 철재산업을 이끌어가던 문래동 철강단지는 공장이 하나 둘 이전하면서 밀도가 낮아졌다. 여기에 IMF한파까지 덮쳐오면서 문래동은 침체를 피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산업에서 제조업의 입지도 점점 좁아져갔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원래 중간 유통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실이나, 노동자를 대상으로 영업해온 위락시설이 있던 철재상가 2~3층은 시간이 갈수록 비어만 갔다. 그리고 그 틈새는 2002~2003년 무렵부터 예술인들의 작업실로 메워지기 시작했다. 대형 쇼핑몰과 고층 주상복합아파트 사이에 회색빛 철공단지가 음악과 그림으로 ‘색(色)’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 가게들이 셔터를 내리면 곳곳에서 그림이 나타난다.

 

 


가난한 아티스트, 철강단지 주민 되다 
7~8년전부터 문래3가 철공단지에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가난한 아티스트들이다. 드문드문 남아있던 철공소가 전부였던 동네에 새로운 입주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요란한 기계소리와 용접 불빛만이 번쩍이던 철공단지 골목길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2011년 9월 현재 문래3가에는 70여개의 작업실에서 150여개의 아티스트 그룹들이 터전을 잡고 생활하고 있다. 썩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예술과 쇳가루의 사이좋은 동거. 철공소의 에너지와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열기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는 곳이 바로 ‘문래동예술촌’이다.

철재상가 2~3층에 주로 포진해 있던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최근에는 58번지 일대로 확산되는 추세다. ‘예술가 주민’이 많아지면서 철재상가 거리의 표정도 살아나고 있다. 복잡한 철공소 골목 여기저기에 예술가의 손길이 닿고 있다.

 

 

 

 

 

 

 

 

 

 

△ 예술가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담벼락

 


문래동 예술공단은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철재상가가 있는 문래동 54번지와 작은 길을 끼고 마주해 있는 58번지는 다양한 재료를 가공해 금속구조물을 만드는 단층 ‘마치코바(영세 소공장)’가 주를 이룬다.

어스름한 거리 곳곳에는 예술가의 손길이 묻어 있다. 새한철강상사의 철대문은 쇠 작업을 하는 노동자를 재미있게 묘사한 김윤환 작가의 벽화 작품이다. 실제 새한철강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새한철강 3층에는 문래동 입주 작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LAB39’가 있다. 이 건물 옥상에 설치된 로봇정원은 LAB39의 옥상 미술관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폐가전과 컴퓨터, 철자재로 만들어진 이 로봇은 몸체 부분에서 식물이 자랄 수 있으며, 다리는 주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벤치 역할을 한다. 이소주, 박진휘, 카트린 바움게르트너 등 3명의 작가가 참여한 작품이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작가들은 2007년 6월에 거리축제인 ‘경계 없는 예술프로젝트#3@문래동’을 열었고, 10월에는 연합축제인 ‘물레아트페스티벌’을 개최해 시민들에게 자신들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싼 임차료이다. 철강 산업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2,3층에 있던 중개 사무소들도 경기도 외곽지역으로 속속 떠났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6명이 만든 디자인그룹 ‘노네임노샵’의 김건태(34) 작가는 “유흥가가 장악한 홍익대 앞에 비해 오랫동안 시간과 땀이 축적된 공장 지대는 창작의 훌륭한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뉴욕의 소호, 중국의 다산쯔를 꿈꾸다 
젊은 예술가들 덕분에 침체 일로를 걷던 이 지역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철공소 종사자들은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하기도 하고, 행사 후에는 예술가들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대문이나 옥상에 그림을 그려 달라는 사람들도 있다. 예술가들은 철재 등의 재료를 공짜로 제공받곤 한다.

하지만 ‘문래동창작촌’의 미래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지난해 시내 준공업지역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서울시 조례가 개정됐고, 인근 주민들과 개발업자들이 재개발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랩39’의 공동디렉터이자 ‘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윤환 대표는 “문래동은 군수공장에서 집단 예술촌으로 변신한 중국 베이징의 다산쯔(大山子)처럼 서울의 새로운 문화명소가 될 수 있다”며,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곳을 창조산업단지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동북쪽에 있는 군수공장지대였던 이 지역은 1990년대부터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공장 철거가 시작됐다. 그중 708번지 일대의 일부 공장을 아주 싼 가격에 예술가들에게 임대했고 2002년께엔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곳에 들어왔다. 지금은 베이징 시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중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상업예술 지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술가들은 문래동이 중국의 다산쯔 외에도 상하이의 M50, 뉴욕의 소호거리로 진화하길 기대하고 있다. 현재는 위의 지역들 모두 수많은 상업 갤러리와 쇼핑센터, 카페들로 가득하지만 이들 모두 이렇게 이름이 알려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기 전까지는 도시 외곽의 공장지대거나 비교적 낮은 땅값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공간을 이루던 고요한 문화공간이었다.

문래동 철재상가는 이제 사진 동호회 사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야외촬영 명소로 꼽힌다. 주말이면 오래된 철공소와 예술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예술공단의 유명세는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다. 많은 해외 작가들이 한국 예술의 최전선을 보기 위해 문래동을 찾는다. 최근에는 유명한 미국의 행동주의 미술가 수전 레이시가 예술공단을 다녀갔다. 지난 2월 말에는 한 달간 문래동에 거주하며 작업 활동을 한 영국 작가 레아 로베트의 작품전도 열렸다.

문래동 작가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축제도 볼품없는 공장지대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지난 6월에는 거리극 축제인 ‘경계 없는 예술 프로젝트’ 행사가 철재상가 주변과 인근 문래공원에서 열렸다.
문래동 입주 작가들이 자신의 스튜디오를 공개해 일반인들이 평소 접하기 힘든 예술 창작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오픈스튜디오’, 국내외 실험적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물레아트페스티벌(10월)’ 등도 인기가 높다. 이 밖에 각종 초대전, 밤샘영화제 같은 행사들이 수시로 열리고 있다.

서울시도시정책과 문래동 
문래동의 예술가들은 문래동을 둘러싼 과도한 관심과 서울시의 엇갈리는 정책들로 예술촌이 깊이 있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먼저 서울시 도시계획국이 내세운 ‘서남권 르네상스 계획’과 ‘준공업지역 종합발전계획’은 서로 다른 미래상을 그렸다. 준공업 지역에 묶여 낙후·침체돼 있던 영등포, 구로, 강서 등 7개구의 서남권 지역을 지식·창조·문화산업을 선도하는 서울의 ‘신경제 거점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유휴공장 등을 활용한 창작공간과 같은 시설을 지속적으로 유치해, 문래동을 문화밀집지역으로 성장시킨다는 세부 개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2009년 ‘준공업지역 종합발전계획’이 이전 계획과는 상반되는 내용으로 발표됐다. 계획에 따르면 문래동 철강단지 안에 도시환경정비의 일환으로 전시장, 일반 업무시설, 아파트형 공장 등 일반 산업용도의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한편 서울시 문화국의 개발정책인 문래예술공장도 문래동 보존을 목적으로 들어왔지만 현재 문래동 예술촌과의 불명확한 관계설정을 보이고 있었다.

문래예술공장 측은 “문래예술공장은 문래동 예술촌을 포함한 국내외 다양한 예술가들을 위해 건립된 창작공간”이라며, “예술가와 시민과의 만남을 주제로 지난해 10월 MEET이라는 축제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도시개발의 가능성을 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도시개발은 지우개로 지우듯 도시에 켜켜이 쌓인 문화와 역사를 쉽게 갈아엎는 방식이었다. 뉴타운 등 ‘낙후된 곳’이라 명명된 곳을 ‘개발’이나 ‘주거환경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파괴하고 철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문래동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도시개발의 대안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유휴시설의 문화적 활용, 문화적 창의성에 기반한 도시재생이다. 예술인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문래동과 같은 창작 공간은 예술인들에게 가뭄에 내린 단비와도 같았다.

예술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대중 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문래동 예술가들은 예술 활동을 통해 작가와 주민, 삶과 공간의 소통을 꿈꾼다. 현재 문래동 예술촌의 작가들은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프로젝트를 하며, 버려진 고양이를 키우는 영등포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고양이 놀이터를 직접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최대도시와 지방 군소도시의 사례를 비교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예술이 도시재생의 또 다른 방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좋은 사례가 됐다. 홍성이 지닌 문화적 잠재역량은 남다르다. 만해 한용운, 고암 이응로, 한성준 등의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했고, 현재는 한국예총산하 9개 지부가 모두 활동하고 있을 만큼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활동도 어느 지역보다 활발하다. 문래동 예술촌이 도시개발의 역풍 속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했고 그로 인해 문래동이 서울 강북권 문화·예술의 역점지로 주목받고 있는 부분에서 홍성군도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예술단체를 끌어 모아 일종의 문화·예술촌이나 단지를 조성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예술인들의 활발한 공공미술과 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자연스레 군정의 참여와 지원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홍성군의 경우 문화·예술의 역량과 기반이 어느 정도 닦아져 있고, 오는 11월에는 이응로 기념관도 개관하는 만큼 홍성군이 정책적으로 문화·예술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여론이다.

 

 

 

 

 

 

 

 

 

△ 프로젝트 스페이스 LAB39 공방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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